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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정보

고 최진영 편지, 사랑하는 누나 최진실에게

by 피앙새 201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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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지 1년 5개월만에 최진영이 누나 곁으로 떠났습니다. 연예계 '국민남매'라 불릴 정도로 우애가 남달랐던 오누이의 죽음은 팬들에게는 두 번의 충격과 슬픔 그 자체였습니다. 국민배우 최진실이 죽은 후 그녀가 남겨놓은 세상의 모든 짐은 동생 최진영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진영이 그 짐을 떠맡기에는 힘에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고 최진실이 남겨놓은 두 자녀를 맡는 것 조차도 '양육권' 문제로 쉽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의 유골함까지 도난 당하는 등 최진영은 잇따라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가장으로서 어깨에 드리워진 짐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래도 어린 조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아버지같던 누나의 빈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커보였습니다.

그는 어제(3월 29일) 유서 한 장 남겨놓지 않은 채 홀연히 누나곁으로 갔습니다. 그가 이승을 떠나면서 누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편지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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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누나에게!

누나! 힘들어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살려고 했지만 요즘은 유난히 누나 생각이 많이 나네요.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아버지와 헤어진 후 단칸 지하 셋 방에서 지낼 때가 생각나요. 그 때 엄마가 매일 만들어준 수제비가 싫어서 흰 쌀밥 한 번 싫컷 먹었으면 하고 소원처럼 말하곤 했는데, 누나가 먼저 CF스타로 뜬 후 집도 사고, 먹고 싶은 쌀밥도 싫컷 먹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지낼때도 있었지요. 그때 누나는 내가 연예계에 진출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나는 누나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최진영이 아니라 '최진실 동생'으로 활동했었습니다. 누나의 그늘 아래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저는 너무 좋았답니다. 자랑스런 누나 최진실 동생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저는 기뻤으니까요.

그런데 그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어요. 누나가 이혼 후에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좀 더 누나에게 다가갔어야 하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힘든 누나곁을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누나가 떠난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으니 저는 바보같은 동생이었어요.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누나가 곧 아버지였고, 누나의 죽음은 아버지의 죽음만큼이나 태산이 무너지는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 슬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누나! 누나가 떠난지도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세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누나가 세상에 살아 있을 때 가장 사랑했던 환희, 준희도 잘 지내고 있어요. 가끔 아이들이 누나의 빈 자리를 느낄 때마다 저도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누나는 우리 집의 가장이었잖아요. 누나가 훌쩍 떠나버린 후 제가 그 역할을 대신했지만 저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누나의 죽은 후 환희와 준희의 양육권 문제 때문에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누나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조카들은 어떻게 해서든 제가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누나의 분신이었으니까요. 세상 사람들이 환희와 준희의 양육권을 두고 아버지에게 있다는 등 뭐라고 해도 저는 누나가 성까지 바꿔가며 아이들을 지키려 했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누나가 어떻게 해서 지킨 아이들인데, 보낼 수가 있겠어요. 다행히 아이들은 누나가 없는 빈 자리속에서도 구김살 없이 잘 자라 주었습니다. 환희와 준희를 지키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누나가 늘 말했었죠.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꼭 대학에 가라구요. 그래서 지난해 대학 연극학부에 입학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해서 학점도 우수하게 받았고 장학금도 탔습니다. 누나의 자랑스런 동생 최진영이 되기 위해 힘은 들어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저를 또 힘들게 했어요. 지난해 누나의 유골함을 도난 당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다고 해도 어떻게 누나의 유골함까지 가져갈 수 있나요? 죽어서도 누나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환희와 준희 볼 면목도 없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눈물을 보는 것은 죽는 것만큼 싫었습니다. 다행히 누나 유골함을 다시 찾았지만 누나에 대한 죄책감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했어요.


요즘 들어서 사는게 참 만만치 않다고 생각됐습니다. 힘들 때면 가끔 미니홈피에 들어가 이것 저것 적어놓으며 누나에게 하소연도 합니다. 누나가 떠난 후 제가 하소연을 했지요. '지친다. 사람이란 것에 지치고, 살아온 것들에 지치고, 이런 나 때문에 지친다' 누나 저 많이 약해졌어요. 그리고 요즘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누나에게 달려가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동안 누나 대신 가장으로서, 환희와 준희의 아빠로서, 엄마의 장남으로서 사는 것이 힘에 부쳤습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 하고 밝은 척을 해도 마음 한 구석에 늘 채워지지 않던 누나의 빈자리가 요즘들어 부쩍 커보였습니다.

누나, 나 드라마 컴백하려구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누나 대신 연기를 통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환희와 준희를 위해서 자랑스런 삼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누나의 그림자가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이미 하늘 나라로 떠나버린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치고 힘든 일이었고, 그런 것들을 이겨내지 못하는 제 자신에게도 힘들었습니다.

누나가 세상을 떠난 후 가끔씩 누나곁으로 가면 얼마나 편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얼마나 철 없고 바보같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도리질을 하며 잊어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삶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환희와 준희보다 누나 얼굴이 더 아른거렸습니다. 저도 낼 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누나 앞에서는 환희와 준희하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도 때로는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제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누나 뿐이었습니다.


어제(3월 29일)는 갑자기 누나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난해서 단칸 지하 셋 방에 살 때 누냐와 지겹게 먹던 수제비도 생각나고, 누나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CF로 스타 반열에 올랐을 때 가족들이 모여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불과 1년 5개월 전에 누나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함께 했기에 행복했습니다. 누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제 삶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나 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환희와 준희를 두고 떠나게 되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더 이상 삶을 지탱할 힘이 없습니다. 환희와 준희는 제가 돌보지 않아도 이제 다 컸어요. 철이 들었어요. 누나! 끝까지 조카들을 돌보지 못하고 누나 곁으로 가는 못난 동생을 용서하고 받아주세요.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자랑스런 누나 최진실의 동생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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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진영은 뭐가 그리 급하다고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났나요?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누나곁으로 갔을까요? 삼가 고 최진영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 누나와 함께 영면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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