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가정보

전업주부가 직장생활 1년을 되돌아 보니

by 피앙새 2010. 1. 1.
반응형
경인년 첫 날이 밝았네요. 60년만에 한번 오는 백호의 해라는데 모두 좋은 꿈, 부자되는 꿈 꾸셨나요? 필자는 전업주부에서 지난해 새해부터 워킹맘이 됐는데, 이제 딱 1년됐습니다.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로 나와보니 마치 좁은 어항속에서 놀다가 넓은 바다로 나온 물고기 같았습니다. 결혼 전에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과 동시에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 평범하게 살다가 20여년만에 다시 직장을 나가니 처음엔 무척 힘들었습니다. 남편의 반대가 심했지만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고 해서 직장맘이 됐는데, 첫 달은 그야말로 후회 막급이었습니다. 지난해 1월 2일 첫 출근을 할 때만 해도 위풍당당 그녀가 되어 출근했는데, 1주도 안돼 '왜 내가 이 고생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퇴근후에는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회식이라도 하는 날은 안절부절입니다. 남자들은 회식이나 일이 늦게 끝나도 부담이 없지만 직장맘들의 마음은 콩밭(집)에 가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두 딸들 역시 며칠 다니다가 그만 두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딸들도 모두 반대를 해서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왕 나온 거 딱 한달만 버텨보자고 마음 먹고 출근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작은 출판사입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데, 정규직도 아닌 비정규직이라 일하는 시간만큼 보수를 주는 곳입니다. 뭐 그래도 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달을 잘 버텨냈습니다. 첫 월급은 제 손으로 20여년 만에 번 돈이라 쉽게 쓸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첫 월급타면 가족들 선물을 사다준다고 하는데, 필자는 너무 힘들게 번 돈이라 그런지 단 10원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적금을 들었습니다. 1년 만기 적금을 부었는데 어느새 이번 달이 만기네요. 막상 꽤 큰 돈을 목돈으로 쥐니 살짝 떨리기도 합니다. 이 돈은 다시 적금으로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드라마 '워킹맘'에서 주인공 염정아는 가사일과 직장일로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남편과 두 딸이 일주일 버티면 잘 하는 거라고 했는데, 어느새 1년이 되었습니다. 사실 필자는 직장맘이 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고3딸 때문에 뒷바라지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데, 용감하게 사회로 뛰어나간 것입니다.
고3 딸은 불량엄마라고 놀려댔습니다. 그러나 '공부는 자기가 하는 거지, 엄마가 하는게 아니다'는 생각, 딸이 밤 12시가 넘어야 집으로 오기 때문에 직장생활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 주말이면 14시간까지 자는 날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잠은 잘 수록 느는 것 같습니다. 하루 4~5시간의 수면으로도 버틸 수 있었으니까요. 솔직히 하루 24시간이 부족해 하루에 딱 2시간만 더 보태 하루가 28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바쁘고 힘들고 정신없이 보내온 지난 1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전업주부가 직장맘이 되어 1년을 지내보니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가사입니다. 결혼전에는 가사 부담이 없어서 직장생활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는데, 결혼후 다시 직장에 나가보니 직장맘들은 그야말로 슈퍼우먼이 돼야 했습니다. 수면시간도 부족하지만 직장일 마치고 와서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와 청소하고 빨래하고 저녁 준비하고, 고3 딸 뒷바라지 하고... 그야말로 잠들때까지 노동시간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지난해 하루 19~20시간을 근무하며 살았습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원하는 일이었고, 제 자존심도 있어서 그런지 한달 정도 지나니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재취업을 한 뒤 저도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남편에게 "이제부터 가사일을 같이 해주면 안돼나요?"라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더니 남편은 청소기도 돌려주고 나름대로 가사일을 도와주려 애쓰더군요. 요즘 신세대들은 맞벌이부부가 많기 때문에 가사일도 분담해서 한다는데, 남편도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퇴근후 저녁에는 블로거뉴스를 쓰기 위해 매일 2시간 정도 투자를 했습니다. 블로그는 개인적인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난해는 참 열심히 썼습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블로그 포스팅하는데 20~30분이면 충분하겠지 하고 덤볐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새벽까지 포스팅하다가 꾸벅 꾸벅 졸기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저녁에 하루에 1개씩은 꼭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거로 생활한지 1년 6개월이 되었는데, 좋은 일도 많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쉽게 생각하고 덤볐지만 쓰면 쓸 수록 어렵다는 것, 그리고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게 글을 계속 써온 것은 미미하지만 수익이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해피 워킹맘' 축제때 지치고 힘든 워킹맘들이 희망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저는 전업주부로 직장맘이 되고도 또 다른 일로 '쓰리잡'을 한 셈입니다. 이렇게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바쁘게 1년을 지내다 보니 남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어졌습니다. 주말마다 서울 근교 산이란 산은 다 헤집고 다니며 4계절 자연을 만끽했는데, 지난 1년간 이런 소중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잃는 것도 있나봅니다. 주말에 남편은 혼자 산에 다니고 저는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게 전부였습니다. 남편은 어제 제야의 종 타종식을 보면서 올해부터 직장을 그만 두거나 블로그를 중단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필자는 어느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가요?

직장생활 1년이 되니 이제 안정이 되고 올해부터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고생한 보람을 이제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만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로그 포스팅도 이제 조금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지금 그만두면 다시 블로그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글이라는게 매일 쓰다가 어느 순간에 쉬게 되면 다시는 쓰기 싫거든요. 그래서 남편에게 '딱 1년만 더 하구요'라고 얘기했습니다.

지난해 딱 한달만 하던 것이 이제 '딱 1년만 더'로 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시작은 멋 모르고 했지만 그 시작이 참으로 좋았고 용기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재취업을 해서 직장맘 생활 1년을 해보니 그리 녹녹치 않은 생활이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조금 힘들더라도 힘 닿는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며칠 다니다가 그만두겠지?' 했던 두 딸들에게는 자랑스런 엄마가 되고, 남편에게는 힘이 되는 아내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새해 첫 날에 기원해 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