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교수의 마지막 방송이자 10주년 특집이기 때문에 토론 전에 지난 10년에 대한 회고 영상이 방송됐습니다. 이 영상은 손교수가 진행해온 '백토'의 기록이자 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대한민국 대표 논객이 되려면 반드시 '백토'를 거쳐할 정도로 권위있는 토론의 장 '백토'의 주인공은 역시 손석희였습니다. 최장 토론 시간이 6시간 7분을 기록할 정도로 '끝장토론'을 벌이는 등 지난 10년간 논쟁의 중심에 섰던 '백토'는 우리 사회 갈등을 줄이고 토론의 공론화장으로 거듭났고, 그 중심에 손석희교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우리 사회가 힘든만큼 '백토'는 더욱 더 뜨거웠습니다.
어제 방송된 '백토'는 여야 정치인 패널들이 손교수의 마지막 방송이라 그런지 토론 중간 중간에 웃음소리도 터져나오는 등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요. 그러나 중간에 자당의 이익만을 쫓는 설전을 벌여 그 토론 내용을 되내이고 싶진 않습니다. 대신에 손교수의 '백토' 8년을 한번 되돌아보겠습니다.
지난 8년간 '백토'의 가운데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던 손교수는 아직 ‘백토’의 마이크를 놓을 때가 아니다 싶은데 스스로 물러나는 형식으로 어제 하차를 하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이야 어디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적 외압설이 한참 나돌던 지난 10월 22일, 손교수는 ‘백토’ 시청자 게시판에 '시청자 여러분, 손석희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올려 자진하차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MBC에서 그를 하차시킨 표면적인 이유는 고액출연료였지요. 그는 ‘백토’에 출연하면서 회당 출연료가 200만원이었는데, 연예인들이 예능과 드라마에 출연할 때 받는 회당 출연료와 비교해 보면 비교적 적은 금액인데, 고액출연료를 빌미로 하차시킨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외압설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외압설이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손교수는 스스로 외압설을 차단시키고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1992년 언론노조 파업시 주동자로 몰릴만큼 불의에 격렬히 항거하던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외압설을 차단시키고 스스로 물러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손교수는 "제가 상황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회사 측도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들었다. 저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서 공식 발표된 것은 없으나 이미 저의 퇴진 문제가 공론화된 마당에 모두에게 부담만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 한다"고 밝혔습니다. 손교수는 자신의 퇴진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논란이 이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죠. 그의 바람대로 어제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손교수는 아름답고 떳떳하게 ‘백토’를 떠났습니다. 이제 '백토'에서 손교수를 보지 못하게 된 거지요.
손교수가 아름답게 하차한 이상 더 이상 정치적인 외압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손교수가 ‘백토’를 떠날 때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주는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손교수의 <100분 토론>을 한번 되짚어 보려 합니다. <100분 토론>은 1999년 10월 ‘무엇이 언론개혁인가’를 주제로 첫 방송된 이후 올해로 10년을 맞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그 10년을 되돌아보는 특집, 즉 ‘100분 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을 주제로 방송이 됐는데, 손교수는 감회가 남달라 보였습니다. 패널로는 이미 ‘백토’에 여러번 출연했던 사람들이 나왔는데요. 나경원(한나라당 국회의원, 특집 단골 패널), 노회찬(진보신당 대표), 박형준(청와대 정무수석), 송영길(민주당 최고의원), 유시민(전 보건복지부장관) 등이 눈치 코치 안보고 정말 열심히 토론했습니다. 특히 노회찬대표는 23회 출연으로 '백토' 최다 출연 정치인 기록을 갖고 있다고 소개됐습니다. 그러나 패널에 참여한 사람들중 정치적으로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지난 400회 특집때 깜짝 출연했던 김제동이 다시 한번 출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100분 토론>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특집은 지난 연말에 방송된 400회 특집입니다. 이때는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김제동, 신해철이 패널로 출연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김제동을 패널로 초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시청자들이"토론을 가장 잘 할 것 같은 연예인 1위"로 김제동이 뽑혔기 때문인데, 사실은 손교수가 간청해서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김제동은 토론에서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나경원 그리고 유시민전의원, 진중권전중앙대교수 등과는 다른 그의 인간미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100분 토론>은 지난 1999년10월 "무엇이 언론개혁인가!" 라는 주제로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광우병파동과 촛불 정국", "대선 토론"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과 현안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숱한 화제를 뿌렸습니다. 어제까지 443회를 진행해오는 동안 시청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는 "쇠고기 파동과 촛불정국"을 꼽았습니다. 이러한 화제의 중심에는 날카로운 질문과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민의를 대변해왔던 손석희교수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과 현안을 공론의 장에 올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대담하고 젊은 토론을 지향해왔던 <100분 토론>은 손교수를 빼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교수의 하차 뉴스를 듣고 안타까워한 것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토론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것은 물론, 늘 약자편에 시선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 사람, 학식이 높은 패널들이 출연하더라도 손교수는 한번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요. 시사토론 진행자중에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출연자가 나올 경우 식은 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교수는 시청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의견 하나도 소중하게 여기며 '백토'를 명품 시사토론 방송으로 만들었습니다.
손석희의 공식 직함은 대학교수입니다. 1984년 MBC에 입사할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아나운서와 기자를 겸직할 정도로 실력 있는 방송인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엄기영 사장처럼 뉴스 프로그램 앵커로 얼굴을 알리며 MBC에서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는데, 1992년 MBC 노조파업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되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은 꼭 한다’는 꼿꼿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노조파업 주동자로 몰려 수의를 입고도 당당하게 미소를 지어보이던 손교수의 사진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후배들에게 방송인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뒤 지난 2006년 프리를 선언한 뒤 MBC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100분 토론> 마지막 방송이 끝나면 손교수는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책도 보고, 극장도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00분 토론>의 시청자가 되겠다고 했지요. 그는 비록 <100분 토론>의 ‘백토’를 떠났지만 시청자들의 가슴 속에는 손석희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지난 8년 동안 '백토'를 지켜온 손교수는 시청자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 계속 만날 것입니다. 이제 라디오를 통해서라도 우리 사회의 어떤 민감한 현안도 비켜가지 말고, 정의의 편에서 공명정대한 방송을 계속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요?
마지막 '백토'방송이 끝난후 손교수는 방척객쪽으로 가서 거수경례를 하네요. 권력과 재력이 있는 패널들보다 시민들에게 머리숙일 줄 아는 그는 이 시대 진정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지난 8년간 '백토'를 지켜온 손석희교수에게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머리숙여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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