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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무도’ 복서 특집, 진정한 챔피언은 쓰바사

by 피앙새 2010.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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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텔레비전이 처음 보급됐을 때 마을에는 TV가 있는 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권투와 축구중계가 있는 날이면 동네잔치가 벌어진 양 TV 있는 집으로 모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 여러나라 선수들과 싸울 때는 마치 내 가족이 싸우는 것처럼 목청 높게 응원을 했습니다. 특히 어느 경기든 한일전 응원은 남달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만큼은 이겨야 한다’는 해묵은 한일감정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한일 권투경기를 할 때는 보는 사람마저 주먹을 불끈 주게 만들었습니다.

<무한도전> 최현미선수 특집은 탈북가족으로 어렵게 권투선수 생활을 하는 최현미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마련된 특집이었습니다. 경기전부터 '무도' 맴버들은 <게릴라콘서트>처럼 트럭을 개조한 차를 타고 수원과 서울 등지를 다니며 관중동원에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수원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관중들 역시 일방적으로 최현미선수를 응원했습니다. 쓰바사선수를 잘 모르는 관객들은 당연히 최현미선수를 소리 높여 응원했고, 최현미선수가 이기길 바랬습니다. ‘무도’ 복서 특집 방송 후 포털 다음(Daum) 모금청원방에는 최현미선수를 돕기위한 모금방이 개설돼 수백만원의 성금이 모아졌습니다.


그러나 어제 TV로 <무한도전>을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들은 최현미선수를 응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쓰바사선수도 응원했습니다. 최현미선수는 멋진 경기를 펼쳐 일본의 쓰바사선수를 판정승으로 이겼습니다. 무한도전 노홍철이 응원단장이 되어 최현미선수를 응원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불리함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준 쓰바사선수는 비록 패했지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친 진정한 승자, 챔피언이었습니다. <무한도전> 리뷰를 쓰려고 할 때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방어전을 훌륭하게 치룬 최현미선수의 인간승리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쓰바사선수에게 더 끌렸습니다.

어제 경기가 끝난 후 ‘무도’ 제작진은 경기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지난 경기였기 때문에 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측면은 최현미선수와 쓰바사선수 모두 승리자였고, 챔피언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중에서 글쓴이가 일본 쓰바사선수에게 더 애정이 갔던 이유는 뭘까요? 어느 경기라도 그렇듯이 적지에서 펼쳐진 경기는 불리하지만 쓰바사선수는 주늑들지 않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4천여명이 모인 체육관에서 쓰바사선수를 응원하는 관객은 어머니와 동행한 일본인,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습니다. 사각의 링 위에서 딸의 경기를 지켜보는 쓰바사 어머니는 딸이 주먹을 허용할 때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쓰바사 어머니는 차라리 대신 링에 올라가 싸우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쓰바사선수는 16전 13승 3패 6KO 전적으로 한 번도 링 위에서 다운된 적이 없습니다. 챔피언 최현미선수는 3전2승1무로 전적에서는 쓰바사선수가 한 수 위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경기 한 달을 남겨두고 정준하, 정형돈이 일본까지 날아가서 쓰바사선수와 사전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쓰바사는 한국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비록 적지였지만 홈그라운드처럼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방심한 때문일까요? 2회 최현미선수의 강력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맞고 코너에 다운되고 말았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치명적인 강타를 허용했기 때문에 경기는 쉽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쓰바사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최현미선수가 강하게 밀어 붙일수록 쓰바사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어머니, 그리고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를 위해 쓰바다는 주저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쓰바사는 프로권투로 입문해서 첫 경기를 하기 이틀 전에 아버지가 입원을 했는데, 경기 후 이틀 만에 아버지는 딸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습니다. 말 없이 쓰바사를 응원해주던 아버지 생각에 쓰바다는 한국에 입국하던 날 정형돈이 아버지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정형돈은 본의 아니게 쓰바사의 아픈 곳을 건드려서 그런지 경기 후 쓰바사 라커룸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2회 생애 첫 다운을 당한 후 쓰바사는 힘이 빠져 두 차례 슬립 다운을 당하는 등 최현미의 불도저같은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힘이 빠질대로 빠졌습니다. 라운드가 진행될 수록 쓰바사는 링 위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최현미선수에게 맞은 눈은 시퍼렇게 부어올라 앞이 안보여 거리감이 없어졌습니다. 최현미선수가 주먹을 쉴새없이 뻗으며 쓰바사의 얼굴과 몸통을 가격합니다. 쓰바사는 그냥 주저앉고 싶습니다. 그러나 링 밖 관중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응원하는 어머니, 사진으로 딸의 경기를 지켜보는 아버지 때문에 링 위에서 죽더라도 쓰바다는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2분 10라운드 경기가 끝나자, 쓰바사는 당장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경기 결과야 2회 다운을 한번 당한 것 외에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패배를 인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 예상대로 쓰바사는 지난해 11월 21일 판정패해서 세계 패더급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는 최현미선수의 승리가 당연하지만 그 뒤에서 패배의 눈물을 애써 참으며 눈물을 보이지 않고 웃음을 보여준 쓰바사선수가 진정한 챔피언이었습니다. 경기후 쓰바다선수의 라커룸을 찾은 최현미와 쓰바다는 뜨겁게 포옹을 했습니다. 최현미가 쓰바다선수의 시퍼런 눈을 만지며 미안한 표정을 짓자, 쓰바다는 최선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세계챔피언'임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참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무도’ 제작진이 최현미선수를 돕고 쇠퇴한 한국 프로복싱의 중흥을 위해 복서특집을 마련했지만 최초 기획의도와는 달리 쓰바사선수의 인간적인 내면을 보고, 최현미선수만큼 쓰바사선수를 조명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 후 ‘무도’ 네티즌 수사대는 일본선수지만 쓰바사선수가 운동하는 체육관사이트까지 찾아내면서 쓰바사선수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습니다. 방송과는 달리 쓰바사선수 소개에는 어느새 경기 전적이 17전 13승 4패로 1패가 늘었습니다. 그 1패가 바로 최현미선수에게 패한 경기입니다. 그러나 최선수와 잘 싸웠기 때문에 랭킹은 패더급 1위로 나타나 있습니다.


쓰바사선수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케케묵은 한일감정을 눈 녹듯이 풀리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경기 후 쓰바사 라커룸을 찾은 정형돈과 길은 애써 눈물을 참는 쓰바다 선수를 보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눈물은 쓰바사선수에 대한 격려의 눈물이지만,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한일감정을 풀리게 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정형돈이 말했듯이 쓰바사선수는 언제 어디에서 경기하더라고 꼭 응원하고 싶은 멋진 선수였습니다. 만약 제작진이 경기전 쓰바사선수를 소개하지 않았더라면 쓰바사선수는 일방적인 최선수 응원분위기속에서 한일감정의 희생양이 됐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편파방송이 될뻔 했는데, 최현미와 쓰바사 두 선수 모두 승리자로 만든 김태호PD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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