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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미실은 진정한 여왕이었다

by 피앙새 200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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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주 미실이 죽었습니다. 예고된 대로 미실의 죽음을 지켜보고 난후 한동안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사는게 힘들어 감정이 메말라 눈물도 마른 줄 알았는데, 미실의 생에에 대한 연민에 눈물이 흐르네요. 그동안 신라 황실의 악녀로 그녀를 봐왔지만 어제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고 나니 덕만의 말대로 그녀는 ‘진정한 여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야심이 불가능해지자 그녀는 예고대로 찬란히 부서졌습니다. 그 부서짐, 그 죽음마저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왜 일까요? 미실의 죽음을 보여준 <선덕여왕> 50부는 정말 명장면들이 많았어요. 아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방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많은 장면들을 다 리뷰하기는 어렵고, 오늘은 미실의 죽음, 그리고 그녀가 왜 진정한 신라의 여왕이었는지에 대해 쓰려합니다. 미실의 죽음은 한동안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감동과 눈물이 있는 장면들이 많아 글이 다소 길어질 것 같습니다. 차분히 신라의 '진정한 여왕'이었던 미실의 죽음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누구나 죽음 앞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인지 모릅니다. 가진 것도 없고 희망도 없는 입장이라면 죽음 앞에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겠지만 40년 이상 신라를 좌지우지 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오던 미실은 죽음을 앞에 두고 쉽게 이승의 발걸음을 띄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구나 핏덩이 채 버렸던 아들 비담이 장성한 채로 나타나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쉽게 목숨을 버리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미실은 그녀가 말한 대로 찬란히 부서졌습니다. 덕만이 제의한 합종을 거부하고 죽음마저도 미실은 당당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킬 정도로 이승의 미련을 비담에게 남겨둔 채 사랑하는 아들 곁에서 황후의 꿈도, 여왕의 꿈도 다 내려놓고 편안히 떠났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미실은 초연했습니다. 설원랑과 함께 화랑시절 부르던 노래 "지킬 수 없는 날에 후퇴하면 되고 후퇴할 수 없는 날엔 항복하면 되고, 항복 할 수 없는 날, 그날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구절을 되뇌이며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신의 몸에 누구의 손도 허락하지 않은 채 도도하고 자존심 강하던 평상시 모습 그대로 미실은 꼿꼿이 죽음을 맞이했어요. 이 죽음은 마치 성철스님 등 큰 스님들이 열반하실 때 앉아서 돌아가시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죽음마저도 삶의 또 다른 연장으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노무현전대통령의 유서가 생각나네요.

호사가들은 미실을 탕녀, 마녀, 독재자라 손가락질 했을지 몰라도 미실은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운명을 거슬러 신라의 주인이 되려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미실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미실은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 사람을 관리하고, 뛰어난 지략을 보이며 남자들도 꼼짝 못할 정도의 카리스마와 냉철함을 잃지 않으며 신라를 이끌어 온 지도자였습니다. 그녀가 탐했던 권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욕심낼 수 있는 무지개와 같았지만 그 권력 싸움에서 미실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싸웠기에 황실의 주인 노릇을 해온 것이죠.


권력의 남용이라는 멍에를 씌워 미실을 폄하해도 미실은 왕을 대신해 신라를 통치하며 신라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 해왔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제 대야성이 덕만의 군사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백제 경계를 지키던 속함성 병력 2만여명이 미실을 지키기 위해 대야성을 향할 때 미실은 회군을 명했습니다. 덕만과의 싸움보다 신국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미실을 보고 정말 큰 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라를 진정으로 걱정한 사람은 미실이었습니다 .속함성 병력이 회군하는 것을 듣고,  덕만이 이렇게 말했죠. “미실에게서 왕을 봤어! 진정한 왕을” 덕만은 미실에게 이겼다고 했지만, 미실을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미실은 덕만이 여왕으로 신라를 통치하는 동안 영원한 스승이었는지 모릅니다.

평생을 황후라는 꿈을 꾸며 살아왔지만 미실은 신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공을 세웠습니다. 신라의 남북, 동서 경계에는 미실의 피가 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화랑, 낭도, 병사들의 혼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래요. 미실은 진흥제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신라를 지켜온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미실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견제뿐이었습니다. 경국지색의 미모보다 뛰어난 지혜를 더 사랑했던 진흥왕은 미실의 야심을 눈치 채고 설원랑을 통해 죽이라고 했죠. 미실은 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면서 독하게 살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살얼음판을 40년간 이어온 것이죠.


처음부터 미실이 독한 여자는 아니었어요. 그저 평범한 아녀자로 아이 낳고 키우며 지아비 섬기는 현모양처로 살아가려고 했지만 세상이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죠. 미실은 정면으로 신라와 부딪혔습니다. 진흥제 칙서를 감추고, 유훈을 위조하면서까지 미실은 황후가 되고 싶어했어요. 미실이 황후의 꿈을 꾸었던 것은 최고의 자리 황후에 올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권력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진흥제는 물론 진지왕마저 미실을 두려워해 황후로 두지 않자, 미실은 화랑들을 이끌고 낭장결의까지 하며 진지왕을 폐위시키는 모험을 합니다. 이렇게 미실이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진골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여자라는 신분 때문에 차별받는 황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어느새 미실은 신라 최고 권력자 위치에 올라섰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죠. ‘어출쌍생’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천명과 덕만 자매 중 천명은 계획한 대로 독화살로 죽였지만 덕만은 끈질겼습니다. 덕만과 싸움이 계속될수록 미실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어요. 궁지에 몰리면서도 미실은 겉으로는 강해보였을지 몰라도 그 내면은 여느 여인처럼 한 없이 약한 여자였습니다. 어제 마지막 촬영을 마친 고현정씨가 미실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아마 어제 방송된 미실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했네요.

“제 생각에 미실은 참 많이 외롭고 고독한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존의 문제, 여기에 더해 권력의 파워 게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한편으로는 강해보이지만 그 미실의 속은 그런 바깥 환경에 늘 긴장하고 두려움을 가진 여린 여자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기록되기 때문에 여왕이 된 덕만은 한 없이 어진 왕으로 묘사되고, 권력싸움에서 패한 미실은 천하의 요부, 탕녀, 독재자로 기록됐을지 모르죠. 만약 극중의 미실같은 인물이 신라를 지배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기록됐을까요? 물론 미실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정치력, 지도력, 사람관리 능력으로 봐서는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달리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만 뺀다면)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실은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강한 척 하며 40년을 살아왔는데, 어제 비담 앞에서 강하기만 하던 그 얼굴이 무너지고 말았어요. 40년을 억누른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미실의 모습은 한 시대의 권력자로서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저 비담의 어머니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찬란히 부서지는 미실 앞에서 비담도 울고, 시청자들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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