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눈물 쏟게 만든 DJ의 낡은 양말 한 켤레

by 피앙새 2009. 8. 23.
반응형
인동초 김대중전대통령이 오늘 영결식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납니다. 어제 빈소가 마련된 국회에서 김대중전대통령이 평소 사용하시던 유품이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중절모, 안경, 빗, 만년필, 손때 묻은 시계, 연설문 초고 등 소박하고 검소한 평소 생활과 국정에는 꼼꼼하고 빈틈없는 모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소중한 유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개된 유품중 목이 축 늘어진 양말을 신고 다녀야 하는 사연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고무밴드가 없는 양말은 검소함을 상징하는 양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무밴드가 빠져 목이 축 늘어진 양말은 김전대통령의 고난한 정치역정을 그대로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양말을 다리가 자꾸 붓고 고관절 때문에 사면 바로 밴드를 뺐어요. 조이지 않게, 느슨한 상태일 수 밖에 없어요." (장옥주, 김대중평화센터 공보국장 뉴스 인터뷰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전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 유세 당시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기 때문에 그 이후 고관절로 고생하셨습니다. 다리가 너무 불편해 양말을 당신 혼자 신지도 못합니다. 오래 서 있거나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퉁퉁 붓기 때문에 양말이 다리를 조이지 않기 위해 고무밴드를 뺀  양말만 신을 수 있습니다. 김전대통령은 고무밴드가 조이는 힘마저 힘들 정도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살아왔습니다.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평생 목발을 짚고 다니시고 목이 축 늘어진 양말을 신어야했던 사건을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1971년 4월 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박정희전대통령과 겨뤄 패했지만 김전대통령은 무려 46%의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불과 94만표 차이로 석패했습니다. 박정희전대통령은 위기감을 느끼고 조직적인 ‘김대중 죽이기’에 나섭니다. 대선 직후 열린 8대 총선 과정에서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14톤 트럭이 돌진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김대중을 죽이기 위한 음모로 세 번째 죽을 고비였습니다. 이때 다친 다리가 평생 목발을 짚고 다니게 만들었습니다. 김전대통령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죽음의 벼랑 끝에 섰던 일이 무려 다섯 번이었으나 시대의 어둠을 넘어 모든 탄압과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셨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엊그제 공개된 김전대통령의 친필일기를 보면 그때 다친 다리로 인해 38년 동안 고통을 당하시고 서거하시기전까지도 다리 때문에 아픔을 느낀 대목이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투석치료. 혈액검사, X레이검사 결과 모두 양호. 신장을 안전하게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 다리 힘이 약해져 조금 먼 거리도 걷기 힘들다. (2009년 3월 18일)

걷기가 다시 힘들다. 집안에서조차 휠체어를 탈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아내가 건강하게 옆에 있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들이 성심성의 애쓰고 있다. (2009년 5월 20일)

1971년 국회의원 선거시 박정권의 살해 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2009년 6월 2일)

김전대통령이 남긴 친필일기의 마지막 부분은 아픈 다리 얘기로 끝맺음 했습니다.  "박정권의 살해 음모로 트럭에 치여 다친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하시다는 일기를 끝으로 더 이상 잇지 못하셨습니다. (6월 2일) 이승을 떠나면서 평생을 따라다니던 정치적 핍박의 아픔이 못내 마음에 걸리신듯 합니다.

이희호여사는 병실에서 투병하는 김전대통령의 손발이 시릴 것을 염려해 벙어리장갑과 양말을 손수 뜨개질을 해서 만들어주었는데, 뜨개질한 양말(위 사진)에는 버선처럼 목이 없었습니다. 발목이 저려 고무밴드조차 빼버린 양말을 신어야 하는 남편을 배려했기 때문입니다. 성한 양말조차 신지 못하셨던 대통령이셨습니다. 비서관들도 김전대통령의 양말은 고무밴드를 일일이 다 빼드렸다니 그 약한 고무밴드 힘마저 견디지 못하는 다리로 대통령까지 하시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김전대통령은 서거하시기 전에 자신의 인생역정을 되돌아보며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수십 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 속에서 살았다. 그 사이에 수많은 치욕과 고통도 있었고, 수많은 유혹도 있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다"며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고,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신념 때문에 결국 다리까지 다친 것이고 서거하시기 전까지 목이 축 늘어진 양말을 신어야 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김전대통령은 이름 뿐만 아니라 목이 축 늘어진 양말 한 결레를 남겼습니다. 그 양말 한 켤레는 바로 그 분의 정치 역정과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큰 어른이자 기둥이셨던 김전대통령이 떠나시는 것도 슬픈데, 어제 공개된 양말을 보니 더욱 슬펐습니다. 고문으로 인해 양말조차 제대로 신지 못하시면서도 가난하고 약한 민초들 걱정에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리시던 이 시대 진정한 어른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서는 고무밴드를 빼지 않은 양말을 신으시고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