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초 김대중전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감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정치적 핍박을 받을 때 대통령 곁에서 힘이 되준 사람은 역시 영부인 이희호여사입니다. 이여사 없는 김대중전대통령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희호여사를 만나기 전에 청년 김대중이 한 눈에 반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차용애여사입니다. 목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결혼후 14년간 살면서 홍일, 홍업씨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한창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첫 번째 부인 차용애여사는 1959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습니다. 김대중전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이희호여사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함께 한 반려자로 투영되고 있지만 그 전에 차용애여사가 있었습니다.

청년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차용애여사가 인동초의 씨앗을 뿌렸다면 이희호여사는 그 씨앗을 잘 가꾸어 꽃을 피운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전대통령은 그제 방송된 MBC <TV 김대중 평전>에서 차용애여사와 사별후 가끔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어려울 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함께하지는 못해도 차씨는 이희호여사만큼 김전대통령에게는 평생의 반려자였습니다. 그래서 김전대통령이 하늘나라에서 만날 차용애여사의 생을 한번 되짚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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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전대통령이 한 눈에 반해버린 첫번째 부인 차용애여사와 장남 홍일, 차남 홍업씨)

사람은 누구나 첫 사랑이 있게 마련입니다. 김대중전대통령의 첫 사람은 바로 목포상고 동기이자 친구의 동생인 차용애여사였습니다. 1945년 해방 무렵 차용애여사는 목포에서 큰 인쇄소를 경영하는 차보륜씨의 딸로 일본 이나(伊那)여학교에서 공부하던 재원이었습니다. 일본의 항복이 가까워질 무렵 미국이 무차별로 일본을 폭격하자, 차여사 아버지는 딸을 일본에서 즉시 귀국시켰습니다. 당시 일본 이나여학교에서 공부하던 차여사의 친구들은 강제로 군수공장에 동원되었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사망했습니다. 아버지의 선견지명 덕분에 차여사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이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친구 동생인 차용애여사를 처음 본 김전대통령은 당시 차여사의 첫 인상을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운명이란 그렇게 놀랍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그녀(차용애)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목격했다. 그 또한 운명이리라. 그녀는 하얀 원피스 차림에 꽃무늬가 있는 양산을 받쳐들고는 마치 잰걸음이라도 세고 가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그냥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한 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단정한 머릿결이며 하얀 피부색이 항구의 어수선하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피어난 백합같다는, 그 느낌 그대로였다.
(출처 : 김대중, '나의 삶, 나의 길' 저서)

청년 김대중을 반하게 한 차여사로 인해 김전대통령은 상사병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하루라도 그녀를 보지 않으면 힘들었습니다. 매일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녀 집을 찾았지만 사실은 차여사 때문이었습니다. 차여사는 오빠를 통해 청년 김대중이 명문 목포상고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얼굴도 잘 생겼기 때문에 호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짧은 기간에 급격히 가까워져 어느새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쉽지 않았습니다. 차여사의 아버지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한 것입니다. 당시 청년 김대중은 징병검사를 마치고 언제 징용될지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징용가서 죽을지도 모르는 청년에게 딸을 줄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차여사의 아버지는 그래서 딸을 위해 점찍어 놓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입장을 들어주고 김대중에 호의적이었습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두 사람은 1945년 4월에 결혼을 하고 목포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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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무렵 차용애여사를 만나던 당시의 청년 김대중과 15대 대통령 당선 당시 김대중전대통령)

청년 김대중은 결혼후 흥국해운 창업(1946), 목포일보 인수(1948) 등으로 사업가의 수완을 발휘합니다. 그러다 1954년 29세의 나이로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정치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정치 초년생 김대중은 민의원선거 패배후 민주당 장면박사 밑에서 본격적인 정치 수업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 재도전하지만 자유당측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1959년 보궐선거와 5대 총선에서도 잇따라 패배의 쓴잔을 마신 청년 김대중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사업가으로 벌어놓은 돈을 모두 날렸습니다.
남편 김대중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차용애여사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지만 아들 둘(홍일, 홍업)을 낳아 현모양처로 청년 김대중을 헌신적으로 내조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적인 사랑 차용애여사와 청년 김대중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결혼 14년만인 1959년,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후 잇따라 선거에 참패하면서 김전대통령이 한창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차용애여사는 두 아들을 남기고 33살의 나이에 홀연히 김전대통령 곁을 떠났습니다. 1년여만에 두 차례나 선거를 치루면서 김전대통령은 깊은 좌절과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묵묵히 내조하며 부정선거에는 목숨을 내걸고 싸우라고 격려하던 차용애여사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거빚과 실의에 빠져 지내다 약물쇼크로 사망한 것입니다. 김전대통령의 절망감은 참으로 깊었습니다.

“집안일은 걱정 말고 후회하지 않도록 싸워달라”고 언제나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가난한 가운데 어떻게든 가계를 꾸려나가고, 어린 장남과 차남을 기르면서 선거운동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주도한 시위의 선두에서 행진하기도 했다.

아내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은 실은 자살이었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려왔다. 너무나 생활이 힘들어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런 소문이 날 정도로 아내가 격은 고통은 큰 것이었다. 그 고생을 남들도 알았고, 그래서 그런 소문이 난 것이다. (출처 : 김대중, '나의 삶, 나의 길' 저서)


인동초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내조한 것은 이희호여사지만 그 인동초 씨앗을 뿌린 사람은 바로 차용애여사였습니다. 청년 김대중이 소설속에서나 나옴직한 러브스토리, 즉 '한 눈에 반한' 차여사는 김전대통령이 이희호여사와 결혼후 그 이름이 대중들에게 잊혀졌을 뿐입니다. 김대중전대통령은 이제 고생만 시켜 평생 미안해하던 차용애여사와 하늘나라에서 만나 이승에서 갚지 못한 빚을 갚을 것입니다.

삼가 고 김대중전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시길 기원드립니다.

Posted by 피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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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분에 대해 알지 못한 사실을 알려줘서 고맙습니다...그리고 김 대중 대통령님 편안히 영면하소서...

  3. 어휴 전라디언들 아주 난리를 치는구나 쩝... 대단하다

  4. 매우 경솔하시고 배려심이 없는분이군요.

    하늘이 무너진듯 슬픔에 빠지신 이희호여사께서 몸도 못가누시고 계시고

    아직 빈소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고..더구나 국장으로 치러질 영결식도

    며칠이나 남았는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사사로운 일을 굳이 글로 올려서

    미망인을 욕되게 하시는건지..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순 없습니까?

    내용이 틀린건 없다고 하지만...그렇다면 그동안 이런글을 올리지 않고

    어떻게 참았다가 하필이면 상중에 이런글을 올립니까?

    당신은 미망인과 그 가족들에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군요.

    아니면 그동안 이희호여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겁니까?

    모든 내조의 공을 이희호여사께서 동네방네 생색이라도 내셨습니까?

    정말이지...

    요즘의 한국사람들의 교양과 수준을 알려주는 글의 내용과 타이밍이라고 느낍니다.

    이런시기에 이런 큰 슬픔을 겪고 있는 미망인에게..

    이렇게 모욕적인 글을 올리는 경우는 보도듣도 못했습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아직도 살아계시고 연로하시고 슬픔에 빠져서

    황망하실 이희호여사님을 위로는 못할 망정..

    사람으로서 이런 글을 올려서 잘난척같은..공평하고 정의로운척을

    하십니까?

    얼굴이 보고싶군요.

    가치관과 도덕과 교양과 예의는 기준을 가르기가 애매하지만..

    예전에 학교도 못다닌 우리 할머니들도 최소한의 총명함과 덕성과

    판단력은 똑바르셨는데...

    많이 배우는 요즘 사람들은 고작 이정도입니까?

    인간으로서 말과 글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했던 내용을 해소했다는 착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면

    생각을 다시 한번 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거망동입니다.

    다른 표현을 굳이 하자면...

    정의롭고 인정많은척 하지만..사실은 잘난척일뿐인 글이라고...

    똑똑하고 옳고그름을 따지기전에

    먼저 덕을 베푸는 사람이 되길 충고합니다.

    중국 고사에...

    임금에게 바른말로 상처주는 충신보다는

    임금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간신이 진짜 충신이라는 걸 본기억이 있습니다.

    • 동감!! 2009.08.20 22:54  수정/삭제 댓글주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주인장님, 보기 불편하니 제목만이라도 수정하시죠..

    • 동감 2009.08.20 23:00  수정/삭제 댓글주소

      정말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도 제목부터 보고 도대체 누가 이런 때 이런 글을 쓰나 싶어 들어와 보았습니다... 참..

    • 뻔뻔하신 거죠. 2009.08.20 23:07  수정/삭제 댓글주소

      이 글을 작성하신 분이 도덕적 기준이 왜 없겠습니까? 단지 블로거 수입에 혹하신 게죠. 간혹 돈에 영혼을 팔았다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하던데 굳이 이런 표현을 제가 씀으로써 어떤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구요. 그냥, 뭐 특종내려는 기자의 무분별한 스캔들 보도와 같은 거겠지요. 언론의 자유라는것이 있듯 블로거님도 주장할게 없는게 아니기에 역시 이건 도덕적인 문제일 뿐일겝니다 허허 말돌려쓰기 무지하게 힘들구만요 허허허허허

    • 어깨동무 2009.08.20 23:57  수정/삭제 댓글주소

      나라의 큰 인물이 운명을 달리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살아 온 행적과 생각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그 분의 뜻을 이어받아 완성할 것인가를 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인의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희호여사님에게 흠을 내는 것도 아니요, 단지 고인 생애의 한 부분으로 사별한 부인이 있었고 그 분 역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것이 뭐가 큰 잘못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제가 글쓰신 분의 의도를 알지는 못하겠으나, 저는 이런 글 자체가 크게 고인이나 이희호여사님을 욕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줄 것같지 않습니다. 그렇게 속이 좁은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그릇입니다. 조금 넓은 마음으로 글을 보심이 어떨지요..

  5. 셰익스피어 2009.08.20 23:2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음... 그런 일도 있었군요.
    정치적 입장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의 미망인 이희호 여사님은 정말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한 사람을 위하며 살 수 있을까. 대단한 분입니다.

  6. 이런 글.. 2009.08.21 00:17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지금 올리기에는 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굳이 상 중에
    이런글 올리셔야 되겠습니까?
    혹시라도
    이희호 여사께서 이 글의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아시게 된다면
    마음이 더 안 좋아지실 텐데요...
    죄송하지만... 글 읽어내려가면서
    글쓴이가 생각이 짧은 분이라고밖에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7. 글쎄요... 2009.08.21 00:2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이 글이 지금 적절치 않다는 분들,
    이희호 여사에게 이런 사실을 보듬어 안을 정도의 도량이, 지난 40여년간 없었다고 생각하시나 보죠? 김대중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이희호 여사에게도 그 만큼의 도량은 있었다고 보는 제게는 따뜻한 사연으로 보입니다만.

  8. 글쓴분 어떤 의도로 올렸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단순히 김대통령을 추모하는 뜻에서 올린걸수도 있지만
    지금 이 시각..슬픔에 빠져있을 영부인을 생각해보세요.
    이런 글은 안 올리는게 좋습니다.
    예의에 어긋나지요.

  9. 위에 글쎄요님.. 2009.08.21 03:0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그래도 이희호 여사님도 여자니까요... 뭐... 이 시점에서 궁금한 분들도 많으시고 할테니 올리는 것은.. 저도 좋은거 같은데... 제목이나 내용에서의 표현이.. 조금 배려심이 없으신듯한 느낌이 드네요... 물론 뭐 그것도 초월하셨을거야 이희호여사님이니까~ 라고 말하면.. 뭐 딱히 제가 극렬히 반박할 말은 없습니다만.. 조금... 마음이 거시기하네요..

  10. 저라도... 2009.08.21 03:4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나쁜의도는 없으셨겠지만... 제가 이희호 여사님이라면... 가족이라면...
    아니 다 떠나서 그냥 일반인으로서.... 기분이 상하는 건 사실이네요....

    차용애 여사와 하늘에서 만나라.....
    땅에 남은 이희호 여사님이 이 글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드실지...
    그래도 한 사람의 아내고... 여자인데
    이런 글은....정말 속상할 것 같아요

  11. ㅋㅋㅋ 2009.08.21 04:0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제목이 자극적이다고 난리군요.
    김대중을 미워하는 사람은 위에 님들의 그런 자세때문입니다.

    김대중을 무슨 신으로 보는 듯한...

    제목 비판하는 분들의 심리상태를 보면
    첫부인 자살설과 내연녀 자살설등 이 김대중의 명예에 누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심리가 보이네요.
    만지면 터질까 깨질까 안절부절...김대중이 신입니까?

    일반적인 생각은 그냥 젊은시절 훈훈한 첫사랑...정도로 인식되고 전혀 자극적인 제목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그를 예수같은 성자의 위치에 올려놓고 보니까 그런거죠.

    예수의 연애이야기 같은건 종교인을 발칵 뒤집어 놓겠죠.

    김대중 그도 그냥 인간입니다.

    호칭없이 김대중...이라고 했다가 사우나에서 짭뽕그릇 날라온 기사를 보는 듯한 반응이네요.

    전혀 누가 될것도 없는 글이구만 호들갑들은...쩝

  12. ㅋㅋㅋ 2009.08.21 04:0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한마디 덧 붙이자면,
    노사모의 지나친 노빠짓이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했죠.
    지나친 숭배는 반작용으로 작용합니다.

  13. 저도 그냥.. 2009.08.21 10:0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여자입장에서 이희호여사님이 불쌍하네요ㅠ
    안그래도 힘드실텐데 이런 옛날일까지......
    그리고 윗분은..훈훈한 첫사랑이 문제가 된다는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명예때문에 그러는게 아니라요-_-
    꼭 그렇게 한쪽으로만 정치적으로만 문제를 보셔야겠는지?
    그냥 평범하고 정상적인 부부의 삶이라고 볼때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본거죠;;
    이희호 여사님도 여자잖아요 사람이구요;;
    제가 볼땐 ㅋㅋㅋ님은 감정은 없으시고 분석만 하시는분 같네요
    사랑을 다른 사람하고 나눠가질 순 없는거잖아요
    근데 이런 글은 이희호여사님께는 그걸 강요하는 것 같아서요
    이미 나이가 드신 분이라고 생각해서 이러시는 것일까요;

  14. 글올리신분께..

    모든 인간세상일은 옳고그름을 논하기전에

    인간의 도리와 예의가 먼저라고 봅니다.

    당신의 논리 대로라면...지금 이명박정부가 법을 남용하여

    마구 휘두르며 법치를 주장하면서 선량한 국민을 구속하고 두드려패고 짓밟는것도

    정당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극보수들이 일부급진주의자들과 일부 386을 비난하는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논리가 정의롭고 옳다면서..

    일부의 과격파들이 무조건 언성높이는 태도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라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겁니다.

    발상의 전환과 함께 또다른 타인을 배려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본받아야할 김대중대통령의 철학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얘기가 옳다고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지는 맙시다..

  15. 한마디 덧 붙이자면..

    저런글을 올리는것이 뭐가 문제냐고 따지면서 반성을 못한다면

    그사람은 인성교육의 기본이 안되있거나 인격미달이며 철부지이며

    정상적인 성인이라고 볼수는 없습니다.

    다시 곰곰히 자기반성을 하시기 바랍니다.

    공부잘한다고 모든것을 용서하자는 말과 같으니까..

  16. 처음 알게된 사실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17. 감사용 2009.08.22 21:3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잘봤습니당

  18. 오사카 2009.08.23 23:4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제목을 좀 바꾸세요.
    현재 계시는 이희호 여사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19. 이쁜여자 2012.08.10 23:0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내가 보기에는 차용애여사님이 제일 예쁘고 상냥했는데...! 이희호여사님은 좀 까다롭고 사감선생님같은 분위기라 좀 그렇네요?

  20. 이쁜여자 2013.04.13 00:1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그래서 차용애여사님의 소생이었던 김홍일씨와 김홍업씨는 친어머니가 있었을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회상을 하더라구요? 그때 친어머니가 중국집에 가서 맛있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이고 외가집에 데려가서 화목하게 잘지냈는데 새어머니 이희호여사님이 들어오고나서는 그런것은 꿈도 못꾸고 대신 영어책이나 보고 지냈어야했다네요?

  21. 저분이 장영자, 장성자, 이순자랑 친척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