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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일밤' 엉터리 태극기, 예견된 굴욕이다

by 피앙새 200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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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이 태극기 그리기를 가르쳐 주고 숙제로 내주어 집에와서 건곤감리를 그리며 왜 이렇게 태극기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본 처럼 그냥 큰 점(?) 하나 푹 찍으면 좋겠는데 하고 어린 마음에 단순하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일본 국기는 거꾸로 드나 바로 드나 상관없고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나 일장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오묘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주와 자연의 생성원리를 나타내는 태극의 빨강은 존귀와 양(陽)을, 파랑은 희망과 음(陰)을 의미하며, 사괘의 건(乾)은 천(天) 춘(春) 동(東) 인(仁), 곤(坤)은 지(地) 하(夏) 서(西) 의(義), 이(離)는 일(日) 추(秋) 남(南) 예(禮), 감(坎)은 월(月) 동(冬) 북(北) 지(智)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태극기가 일요 예능 프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잘못 게양되는 바람에 일밤 제작진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시청자의 제보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일밤 시청자중 잘못된 태극기가 나왔어도 이를 알아본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태극기가 잘못 게양되거나 잘못 나와도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태극기 자체가 어렵게 만들어진 탓도 있지만, 학교에서 태극기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서 입니다. 입시위주, 지식주입 위주의 교육만 시키다 보니 태극기에 음양오행 철학이 담겨 있고, 건곤감리에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정확하게 그리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요? 100명중 10명이나 될까요?


태극기가 잘못 게양되거나 그려져 파문이 일었던 일은 '일밤' 뿐만이 아닙니다. 잊어버릴만 하면 잘못 게양된 태극기가 나왔습니다. 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1995년 한국축구대표팀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열린 미국 LA 홈디포센터에 경기 직전 잘못 그려진 태극기가 게양돼 모처럼 '대~한민국'을 외치러 온 교민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LA갤러시 홈구장인 홈디포센터 전광판 좌측에 성조기와 함께 걸린 태극기는 '4괘'가 '건-곤-감-리' 순이 아닌 '감-건-리-곤' 순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 상단에 있어야 할 '건' 자리에 '감'이 그려져 궤의 순서가 헝클어져 있는 것입니다. 평소 태극기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003년 서울공항에서 거행된 건군 55주년 국군의 날 행사때 대통령이 탄 사열차(무개차)에 잘못 게양된 태극기입니다. 이때도 이 사진이 문제가 되었는데, 대구의 한 지방 신문기자가 연합뉴스 사진보도를 보고 연합뉴스와 국방부에 연락을 해서 알게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무도 몰랐었습니다. 아니 무관심했었다는게 맞을 듯 합니다. 2007년 노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 오를때 아시아나 특별전용기에 게양된 태극기가 또 잘못 게양되었습니다. 순방을 준비하는 수행원들이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것입니다.

2005년 정동영 전통일부 장관이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남북장관급회담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을 맞을 때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달았습니다.(왼쪽). 정 전장관은 다음날에 배지를 바로 달았습니다(오른쪽) 2006년 현충일에 방영된 SBS-TV <진실게임>에서 세트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태극기 중 하나(사진)를 거꾸로 단 채 방영해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7년 반기문 사무총장이 수장으로 있는 UN본부에 이상한 태극기가 걸려 있다는 뉴시스의 보도에 따라 전날까지 걸려 있던 잘못된 태극기를 철거하고 유엔 한국대표부로부터 전달받은 정규 태극기를 게양했습니다.  잘못된 태극기는 사괘가 가늘뿐만 아니라 태극 문양도 훨씬 작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아 한 눈에 봐도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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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에 김연아가 미국 LA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여자 싱글 사상 최초로 200점대를 돌파하며 우승했습니다. 우승 당시 태극기를 보고 눈물 흘릴때 불행히도 태극기는 반대로 게양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공식 프레스센터내 한국 기자단 부스에도 '태극문양'이 반대로 그려진 채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잘못 그려진 이 태극기는 정상회의장에서도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2009년 3월에 WBC를 운영하는 MLB(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 잘못 그려진 태극기와 모자가 게시되기 도 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태극기에 대해 무관심한데, 하물며 외국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노무현대통령이 유럽순방때 잘못된 태극기가 게양된 전용기를 타고 간 일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은 맹렬하게 비난했습니다. 불과 얼마뒤 이명박대통령이 거꾸로된 태극기를 들 일은 예상못했을 겁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기준)이 논평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국민을 대표해서 나선 순방이고 그 상징은 태극기라는 인식이 부족했기에 가능한 일이다.또, 이런 일도 사실대로 밝히지 않는 청와대라면 큰 실수는 얼마나 많이 막아왔을 지 짐작이 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태극기 역게양과 잘못된 대응,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베이징 올림픽때 이명박대통령이 거꾸로 된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사진이 카메라에 포착되었습니다. 불과 1년전 네티즌의 지적에 의해 태극기를 수정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라고 했던 한나라당은 뭐라고 했을까요?

"태극기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현장에 나온 응원단에게 태극기를 빌렸는데, 잘못된 것을 아무도 몰라 곤혹스럽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거꾸로 태극기 해프닝은 MB정부에 큰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2008년 8월 15일 건국절 행사때는 엄숙한 국가 공식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낙서한 태극기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축제의 장도 아닌데 낙서한 태극기 사용은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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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세대들은 유학을 많이 갔다와서 그런지 몰라도 미국 국기에 별이 몇개인지, 또 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극기의 4괘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국가라는 조직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국기는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 태극기가 어렵다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혹시 남북통일이 된다면 바꿀 수 있겠죠. 잘못된 태극기가 치욕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굴욕적인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극기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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