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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6.25전쟁때 썼던 '징발차' 사연 들어보니

by 피앙새 200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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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야산 자락에 흑백영화에나 나올법한 낡고 오래된 차 한 대가 서 있습니다. 도대체 이 차가 왜 여기에 있나요? 차는 차인데 참 요상하게 생긴 자동차입니다. 차량 넘버를 보니 ‘대한민국 1950-625-11’입니다. 요즘 차량 번호와는 다릅니다. 그냥 전시용 자동차인줄 알았는데, 시동을 걸면 ‘부릉~ 부릉~’하고 잘도 굴러갑니다. 이 차는 1938년식으로 미국 포드사가 제조한 차입니다. 소유자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에 사는 이문규(78세) 할아버지입니다. 어제 오후 할아버지를 만나 이 차의 사연을 들어보니 6.25전쟁 후 우리가 힘들게 살아온 사연만큼이나 이 차의 사연이 기구했습니다.

이 차는 6.25전쟁때 전쟁물자로 쓰기 위해 징발됐던 차라고 해서 ‘징발차’라고 부릅니다. 전쟁이 나면 자동차뿐만 아니라 쌀, 약품 등을 징발하는데, 징발된 물품은 전쟁이 끝난후 정부가 보상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징발차는 전쟁 당시 우리 국군장병 아저씨들과 전쟁터를 누비던 차랍니다. 소유자 이문규 할아버니는 이 차를 무려 60년간 소유해오셨습니다. 자동차와 인생을 함께 해오셨네요.

(할아버지와 60년 세월을 함께한 자동차다. 번호판 숫자는 1950.6.25 오전 11시에 징발당했다는 뜻이다)


그럼 이문규 할아버지와 징발차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950년 6월 20일 할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졸업을 하면 곧바로 일을 할 생각에 마치 방학이라 강원도 영월광업소 철도측량 조수로 임시 채용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버지 소유였던 징발차가 광업소의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었던 인연때문에 채용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광업소에서 일을 시작한지 불과 5일만에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일을 마치고 차량과 함께 제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영월경찰서에서 자동차를 징발 당한 것입니다. 당시 재산목록 1호였던 자동차가 징발되자, 할아버지는 자동차 때문에 할 수 없이 학도의용군으로 지원해 6.25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운전병으로 참전한 것이죠.

3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휴전이 되자, 군문제가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당시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던터라 국방부로 다시 차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징발차를 지인에게 맡겨두고 군생활을 했습니다. 1962년 군 제대 후 할아버지는 징발차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의 손에 맡겨두었던 차가 온전할 리 없었습니다. 차체(프레임)와 바퀴, 라이트 뿐인 자동차를 복원하고, 봉급을 다 털어가며 수리 부속품 경비로 썼습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정비를 해서 70년대 중반에는 차를 완전하게 복원시켰습니다. 이제 자동차로서 시동을 켜고 운행할 수 있게된 것입니다.

(차량 수명이 오래되다 보니 눈비가 오면 부식되기 쉬운데, 차고가 없이 비닐 등으로 덮어놓고 있다.)


그러나 워낙 오래된 차라 집 앞에서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도움을 받아 그해 6월 현충원에서 열린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징발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할아버지는 현충일, 6.25전쟁기념행사, 국군의 날 등 1년에 몇 차례 기회가 닿으면 징발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합니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징발차를 타고 도로에 나갈 수 있는 날은 1년에 2~3차례에 불과합니다. 이것도 등록되지 않은 차기 때문에 운행을 하려면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낮은 야산 자락에 세워져 있는 이 차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와서 보고 매우 신기해 한다고 합니다. 요즘 보는 차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아이들뿐만 아니라 저 같은 386세대들에게도 신기해 보입니다. 할아버지는 40년째 도촌동 비닐하우스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이 마흔에 부인과 사별후 하나뿐인 아들도 멀리가서 살고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외로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한달에 정부보조금 25만원을 가지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40년전 아내와 사별후 생활보호 대상자로 비닐하우스에서 강아지 두마리와 어렵게 살고 있다.)

그래서 60년이 넘은 '징발차'를 관리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6월을 맞아 각종 단체 기념식때 차를 가지고 와서 행사를 빛내줄 것을 요청받지만 기름값이 없어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6월 25일도 몇몇 단체에서 기념식을 하면서 차량 전시와 시운전을 요청했는데, 기름값을 달라고 하니 예산이 없다고 해서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차량 수명이 오래돼 고칠 곳도 많지만 부품 구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창고가 없어 눈비를 맞아 차가 하루 하루 부식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이문규할아버지 가 징발차에 대한 소망은 딱 한가지입니다. 오래되고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차량 설계도면이 있는데, 이 설계도면을 보고 똑같이 차를 제작하여 학생들이 마음껏 타고 도로도 주행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6.25전쟁에 대해 젊은 세대들에게 말보다는  '징발차'로 산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뜻입니다. 할아버지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오늘이 6.25전쟁이 발발한지 5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까마득하게 잊혀져가는 전쟁에 대해 이문규할아버지의 ‘징발차’는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되새기는 살아 있는 역사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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