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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관광버스 기사의 숙소가 화물칸이라니

by 피앙새 2009.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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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지방 최고 온도가 연일 섭씨 35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입니다. 밤이 되도 복사열 때문에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 관광버스 화물칸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관광버스 기사분들입니다.

어제 퇴근길에 동네 입구에 세워져 있는 관광버스를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 화물칸을 보니 이불이 깔려 있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화물차 기사님들이 휴게소 등지에서 잠을 자기 위해 운전석 뒤편에 이불이 깔려 있고 이곳에서 잠을 자는등 열악한 근무환경속에서 고생한다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광버스 화물칸에 왠 이불이 깔려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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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 기사 아저씨는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물칸에 왜 이불이 깔려 있느냐고 물으니 "그곳이 제 숙소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아니겠어요? 필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아저씨는 대전에서 서울로 운행을 왔는데, 내일 새벽 5시에 손님을 태우고 부산을 가야하기 때문에 대전을 내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여관에서 잠을 자야하는데 요즘같은 불경기에 한푼이라도 아까기 위해 화물칸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낮고 어두컴컴한 화물칸에서 잠을 자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많은 기사들이 지방을 다니며 화물칸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요즘은 관광비수기라 한달에 10일 일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입도 형편없어 운행중 여관에서 잠을 자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다고 합니다. 봄꽃과 가을 단풍 여행 시즌에는 한달 30일이 모자랄 정도로 매일 운행을 하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별로 손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기사분이 화물칸에서 잠을 자는 것을 보고 자신도 화물칸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적응이 돼서 그런지 아니면 운행 피로 때문인지 누우면 잠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눈시울을 시큰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렇게 화물칸에서 잠을 자도 아내 등 가족들에게는 절대로 화물칸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운행이 끝나고 갈 때는 이불을 가지런히 개서 화물칸 깊숙히 넣어둔다고 합니다. 화물칸에서 자는 것을 아내가 알게되면 아내 역시 밤새도록 한숨도 못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하면서 기사아저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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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아저씨가 관광버스 운전을 하신지는 28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59살이십니다. 처음에는 고속버스 운전기사를 하다가 퇴직금 등을 모아 버스를 한대 구입해서 관광버스 운행을 한지 이제 9년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면 할부로 산 버스값을 갚을 줄 알았는데, 할부금을 붓지 못할 정도로 요즘 힘들다고 합니다. 남은 3,400만원의 할부금을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늦게 결혼을 해서 둘째아들이 대학 4년에 다녔는데, 지난 4월에 군입대를 했습니다. 등록금을 못해줘 일단 아들이 군대 먼저 갔다 온다고 지원 입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사아저씨는 아들이 제대후 다시 학교에 복학할 때 관광버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어제도 아저씨는 관광버스 화물칸에서 주무시고 지금 부산을 향해 경부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부산에 가서도 다시 서울 손님이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면 또 화물칸에서 주무실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잠잘 때 두다리 쭉 뻗고 자지 못하는 관광버스 기사를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28년간 관광버스를 운전하며 인생의 반을 고속도로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힘이 닿는한 계속 운전대를 잡겠다고 합니다. 비좁은 화물칸이 관광버스 기사들의 잠자리라는 것을 알게되니 비록 허름한 집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두 다리 뻗고 잠을 자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아저씨에게 힘든 것은 비좁은 화물칸의 불편함이 아니라 나이들어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가족들을 위해 화물칸에서 주무시는 것조차 말씀 안하시고 묵묵히 희생하시는 관광버스 기사들에게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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