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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MBC 엄기영사장은 '팽' 당하기 시작했다

by 피앙새 2009.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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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MBC뉴스 엄기영이었습니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 롱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특파원 뉴스 엔딩 멘트를 날리던 엄기영사장의 모습은 참 멋있었습니다. 그는 1980년대 암울하던 국내 정치상황과는 달리 자유롭고 예술적 낭만이 가득한 파리 소식을 전하며 방송사 기자로는 드물게 대중적 스타였습니다. 그의 특파원시절 인기는 국내로 돌아와서 거칠 것 없는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방송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9시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아 그 자리를 무려 13년간 진행 했습니다. 그리고 보도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3월 MBC 사장으로 임명됐고, 임기는 2011년 2월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순탄하게 달려왔고 이제 MBC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는데, 청와대 이동관대변인이 'PD수첩 수사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하니 엄사장의 기분이 좋을리 없습니다. 게다가 친 이명박계 초선과 비례대표들이 중심이 된 한나라당 초선의원 40명이 어제 "PD수첩 제작과정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MBC 최고 책임자가 져야 한다"며 엄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동관대변인의 사퇴압력에 대해 엄사장은 직원들에게 "진퇴는 내가 결정한다. 직원들은 동요말라"고 했습니다. 권력의 핵심부에 반발하며 엄사장이 강하게 사장 자리를 두고 저항하는 것이 MBC를 보호하려는 순수한 의도일까요? 지난 4월 엄사장이 밝힌 신경민앵커 교체 사유입니다.

"앵커 교체는 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것처럼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MBC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정하고 균형잡힌 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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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치적 압력 문제'는 엄사장 본인이 부인을 했고, 또 사실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 신경민앵커가 교체되는 것을 보고 그동안 엄사장에 대한 호의적 이미지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경민앵커만한 인물이 현재 MBC내에서는 없습니다.

권력의 핵심부를 향해 날카롭게 날리는 촌철살인 멘트를 듣고 그나마 MBC가 권력의 견제 내지는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엄사장이 9시뉴스 앵커를 볼때만큼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신경민앵커를 교체하는 것에 대해 당시 엄사장은 상당히 고뇌했을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일각에서 제기된 정치적 압력이 없었다 한다면 왜 굳이 신경민앵커를 교체했을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아직도 남습니다. 권력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사장 자리를 걸고 신경민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당시 대다수 국민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시절에도 '클로징멘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민과 소통한다는 이명박정부에서 신경민앵커의 멘트 정도로 교체까지 한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신호탄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엄사장의 '정권굴욕'이란 말까지 나왔습니다. 지나치게 권력의 눈치를 보고 결국 권력의 뜻에 따라 신앵커를 교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엄사장이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동관대변인이 "MBC 경영진 사퇴"를 언급한 것에 대해 엄사장은 "사퇴여부는 내가 결정할 일이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언론사 사장의 퇴진 문제를 언급할 수 있나"며 맞받아친 것입니다. 이렇게 청와대도 무서워하지 않고 반발하는 것을 보면  엄사장 본인 말대로 신경민앵커교체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할 것이 아니란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이것은 엄사장이 이제 토사구팽 당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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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으로부터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던 클로징멘트 앵커 신경민을 교체하는데 엄사장은 이용당했을지 모릅니다. 그는 신경민앵커를 버리고 MBC를 지켜내려고 했지만 최근 불거진 PD수첩 수사결과를 두고 권력의 핵심부에서는 이제 그의 역할이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PD수첩 수사결과'는 MBC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의 신호탄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 개혁은 국민들의 생각과 거리가 있습니다. 엄사장이 말한대로 "(검찰이) PD수첩에 대해 정치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미디어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순"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수순의 첫번째 타켓으로 이미 엄사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엄사장의 임기는 2011년 2월까지지만 그때까지 사장 자리를 온전하게 보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는 8월 MBC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위가 새 이사진을 구성하고 9명의 새로운 이사들이 엄사장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면 엄사장이 자리를 그대로 보존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는 엄사장이 직원들과 함께 싸우자고 합니다. 무려 13년간 9시뉴스 앵커 자리를 지켜온 그가 고작 13개월된 신경민앵커를 교체할 때는 '경쟁력 강화 차원'이라며 반발하는 직원들을 오히려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신경민앵커가 물러나니 이제 다음 타켓으로 엄사장에게 칼끝이 항하는 듯 합니다.

PD수첩 수사결과를 두고 엄사장을 향한 권력의 칼을 보니 '토사구팽'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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