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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향수

둘째딸이라고 왜 사진도 안찍어 주셨나요?

by 피앙새 2008.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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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과 학교에 가고 혼자 있을때의 일입니다. 집안 정리를 대충 해놓고 서재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책꽂이에 꽃힌 낡은 제 앨범을 꺼냈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 맨 첫장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백일사진도, 돌사진도 아닌 그냥 평범하게 찍은 사진 한장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물이 흘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눈물도 많아진듯 합니다. 이 사진만 보면 어린 시절 사진에 관한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오른답니다. '둘째딸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왜 남동생만 사진을 찍어 주고 저는 안 찍어 주나요?' 하면서 어린 마음에 서러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괜히 남동생을 미웠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단하고 가난했던 시절, 사진에 얽힌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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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5살때 처음 찍은 사진

제가 아마 5살 무렵일 겁니다. 제 위로 2살위 언니가 있으니 딸 둘을 낳은 후 할아버지, 할머니의 바램대로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던 날, 대문에 금줄과 숯,고추를 달아 놓고 동네 방네 자랑스러워 하시던 아버지. 그 기쁨에 잔치도 열었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는 잔치는 고사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마저 왜 딸로 태어 났니 하는 원망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습니다.

남동생 태어나기 전까지 단지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는 언제나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습니다.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 일부러 어린 나이에도 방청소도 하고 큰 빗자루로 마당도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진 시키지 않는 일 한다며 큰 소리만 치셨습니다. 제가 부모님이 시키지도 않은 청소까지 하는 것은 남동생이 태어난 후 모든 시선들이 남동생에게 쏠린 것에 대한 처절한 외침이었는지 모릅니다. '나도 좀 예뻐해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외침은 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아니 일부러 못들은 채 했는지 아버지는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혼자 따돌림 당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우울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제 입장을 헤아려 준 유일한 삶의 끈이고 희망이셨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앞에서 남동생들과 사진을 찍어주신 것이 바로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남동생은 태어나서 백일과 돌때 떡과 푸짐한 음식을 준비하여 돌, 생일잔치를 열어 주었고, 또 그때마다 읍내 사진관에 나가 기념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번도 5살 이전에 사진을 찍어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찍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사진 찍는게 뭔지, 나도 한번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속으론 굴뚝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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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두번째로 찍은 중학교 수학여행 사진

남동생이 3살 생일이 되던 해, 그러니까 제가 5살이었을 때 아버니는 남동생에게 새 옷을 입히더니 읍내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어머니, 아버지를 따라 나섰습니다. 남동생이 3살 되어서 생일 기념 사진을 찍으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진관 안에 있는 예쁜 의자에 남동생을 앉히더니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저는 사진관 커텐 뒤쪽에서 남동생이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 보며, 어린 마음에도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습니다. 속으로는 '아버지, 저도 사진 찍어주세요!' 하고 외쳤지만 입 밖으로 차마 그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남동생의 생일사진을 찍고, 읍내에서 짜장면을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던 짜장면도 그날은 맛이 없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이 다음에 크면 부모님과 사진 많이 찍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나와 함께 사진 한장 제대로 못 찍고 야속하게도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하늘 나라로 먼저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사진 찍는 것에 남다는 집착이 있어 결혼 후 아이들에게 백일, 돌은 물론 아무 때나 사진을 많이 찍어 주어 남편으로부터 왜 그렇게 사진에 대한 욕심이 많냐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지금도 어릴적 유일하게 집 앞에서 찍었던 내 생애 최초의 사진만 보면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결혼후 남편의 직장 관계로 지방에서 살 때 백일을 맞은 딸을 안고 서울까지 와서 백일기념 사진을 찍어준 것도 어린 시절 사진에 관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라도 할라치면 가장 먼저 챙겼던 것도 바로 카메라였습니다. 4~50대 분 여자분들 중에서는 저의 가슴 아픈 기억과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아들이 최고였고, 아들만이 대를 잇고 제사도 지내 준다는 남존여비 사상속에서 저는 사진에 관한한 철저하게 외면 당하고 살았지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결혼후 씻은듯이 사라졌습니다. 결혼후에야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직 부모님이 계신 분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찾아뵙고 부모님과 함께 사진 많이 찍어 놓으세요!

이제는 그 무엇보다 소중해진 빛 바랜 사진 한장을 볼 때마다 가슴 시린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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