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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향수

시린손 호호불며 김장배추 씻던 어머니

by 피앙새 2008.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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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저희집은 김장을 했습니다. 아직 서울은 첫눈다운 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겨울다운 을씨년스런 날씨입니다. 옛날 이때 쯤이면 김장과 연탄 등 월동준비가 한창일 때입니다. 요즘은 겨울에도 배추 등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연탄도 모두 기름, 가스보일러로 교체되었기 때문에 월동준비라고 해야 특별한 것이 없으니 세상 참 편해졌습니다.

그래도 월동준비 명맥을 유지하는게 김장인데 중국산 가공김치 등이 나오면서 김치를 집에서 직접 담지 않고 사다 먹는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김장"이란 단어를 잊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한겨울의 식량'이라고 할만큼 우리네 어머니들이 1년중 가장 정성을 들여 만들던 것이 바로 이맘때 담그던 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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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장이라고 해봐야 20~30포기 담그는 것이 전부지만 대가족의 옛날 김장은 300~500포기를 담궈야 했습니다. 정말 어마 어마한 양이었습니다. 배추를 사다가 굵은 소금을 뿌려 큰 고무통에 한나절 넘게 절입니다. 배추가 다 절여지면 아버님은 마당에 있는 펌푸로 연신 물을 퍼대시고, 어머니는 그 물에 절인 배추를 씻습니다. 그 많은 배추를 추운 날에 맨 손으로 씻던 어머니의 손은 얼어서 벌겋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배추를 씻으시며 시린 손을 연신 호호 불며 씻으셨습니다.

저도 어릴 때 어머니 옆에서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배추를 씻던 그때가 눈에 선합니다. 아마 김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배추 씻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배추속이야 그래도 따뜻한 방안에서 양념할 수 있지만 배추 씻는 것이야 어디 그런가요? 밖에서 씻을 수 밖에 없지요.

방안 한쪽 곁에선 삼촌과 큰 고모, 언니, 오빠들이 열심히 무채를 썹니다. 그러면 저는 옆에 지켜보고 있다가 큰 무를 채썰고 난 다음에 남은 무토막 중 가장 맛있는 윗 부분만 골라 먹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아팠던 기억도 납니다. 절인 배추를 다 씻고 김치속이 만들어지면 노란 배추 속잎에다 김치속을 넣어 먹어보는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아버님은 펌푸질을 마치신 후 막걸리 한잔에다 배추속을 싸서 안주로 드시는데 "캬~ 좋다"하시면서 마시던 그 막걸리의 의미를 당신이 떠난 지금에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오늘 김장을 하다가 절인 배추에 김치속을 넣어 먹으며 문득 김장을 하시던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그만 눈물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옆에서 도와주던 남편이 "왜 고춧가루가 매워?" 하고 물었지만, 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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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김장은 1년 대소사중 제사보다 더 큰 일이었습니다. 한겨울의 농사라고 보면 됩니다. 하루 종일 동네 아줌마들이 도와주는 가운데 절인 배추에 배추 속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양념해 넣습니다. 그러면 아버님은 막걸리를 한잔 하시고 난 후 집 뒷켠에 김장독 묻을 구덩이를 파십니다. 이 구덩이에 김장독을 묻고 정성들여 만든 김치를 차곡 차곡 넣으면서 중간 중간에 무를 반으로 쩍쩍 갈라서 넣습니다. 김치 사이에 넣어둔 무는 한 겨울에 시원함과 함께 매콤 새콤해서 그냥 먹어도 과일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마와 같이 먹으면 더 할 나위 없이 궁합이 딱 맞는 음식입니다.

해질 무렵에야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서둘렀던 우리 집의 김장이 끝납니다. 독 하나에 50포기씩 여섯 독이나 묻고도 모자라서 알타리김치, 동치미김치, 무청김치까지 해서 각각 한독씩 묻습니다. 김치를 묻은 구덩이 바로 옆에는 무를 100개 정도 묻습니다. 이 무는 겨울에 무국과 함께 무나물 등 중요한 반찬거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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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한 겨울에 저녁을 물리고 난 후 밤이 깊어지고, 출출하다 싶으면 아버님이 땅 속에 묻어두었던 무를 꺼내와 과일 대용으로 시원하게 깎아 먹기도 했습니다. 땅 밑에서 노란 새 순이 조금 돋아난 것 외에 김장할 때 묻어둔 그대로 얼지도 않았습니다. 한겨울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깎아 먹는 그 무맛은 그 어디에도 비길데가 없는 맛이었습니다. 과일이나 간식거리가 지천인 요즈음 아이들은 무를 먹으라고 하면 "엄마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요?" 할지도 모릅니다.

올해도 저는 직접 제손으로 김장을 담갔습니다. 결혼 이후 한번도 김장을 거른 적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편한 것을 추구하더라도 저는 어머니의 손끝맛에서 우러 나오던 그 김장김치를 담가서 가족들에게 먹게 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내 남편, 내 아이들이 먹을 김치를 다른 사람이 담근 것을 먹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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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담는 날은 어머니가 담그시던 때만큼 하루종일 힘들게 북적대지는 않아도 김장 때마다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하곤 합니다. 또 김장을 하는 날에는 돼지고기 보쌈에 김치속을 싸 먹으며 김장할 때만 맛볼 수 있는 김치의 참 맛을 느끼곤 합니다. 올해도 우리 집 김장은 아주 맛있게 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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