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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향수

조선시대 중산층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by 피앙새 200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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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중산층이 자꾸 즐어들고 있습니다.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쇠약해져 가고 있는듯 하여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중산층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돈이 많은 사람? 아니면 학벌이나 권력이 센 사람?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얼마전에 정부수립 60년에 즈음해서 MBC와 한국 사회학회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생각을 조사했는데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줄어들고 돈이 첫 번째 조건으로 등장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행복하다는 사람은 74.7%,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은 24.1%였습니다. 7년 전에 비해 행복하다는 사람이 줄었고,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은 늘었습니다.
행복의 조건도 7년 전에는 건강과 가족이 우선이었지만, 이번 조사에선 돈이 첫 번째로 꼽혔습니다.

중산층이 점점 몰락하고 있는 이때 조선시대 중산층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전 조선시대 후기 중산층의 생활상을 분당 중앙공원 전통가옥을 통해 한번 들여다 봅니다.

이 전통가옥은 조선시대 평균적 중산층이 살던 집입니다. 오늘날의 중산층과 한번 비교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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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구 수내동 중앙공원 안에 위치한 조선후기 전통초가집입니다. 안채는 10칸 규모의 초가로서 건넛방과 대청, 안방이 일렬로 배열되고, 안방 앞쪽에 꺾어서 1칸씩의 부엌과 광이 있습니다. 낮은 기단 위에 네모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5량의 지붕가구를 짜 올렸는데 부재가 비교적 견실하며 치목(治木)도 반듯하여 19세기 말의 건물로 추정됩니다. 문간채는 6칸 규모의 우진각 초가인데 중앙에 대문이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리고 행복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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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대청마루가 보입니다. 대청마루 좌측이 안방이고, 우측이  건넛방입니다.
대청마루는 방과 방사이를 이어주는 대화의 공간으로 가족간의 사랑과 정이 피어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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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은 부부가 함께 잠자는 곳이죠. 반짓고리와 다리미가 보이고, 위쪽에 오강이 보이는게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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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 맞은편에 자리한 게 바로 건넛방입니다. 보통 며느리가 기거하는 방으로 안방과 방문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새댁들은 시어머니와 자주 부딪히는 집구조라 시어머니 눈치 많이 보며 살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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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과 안방 사이에 작은 창문이 있죠? 이곳을 통해서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받아 안방과 대청으로 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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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어머니들의 한과 눈물이 서린 부엌입니다. 가마솥밑에 풍구가 보이는게 이채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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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잘 산다 하는 집들은 이렇게 부엌게 장작더미를 쌓아 놓고 살았습니다. 지금의 기름이죠. 그리고 부엌에 물독(좌측사진)이 있고, 삼바리(가운데사진)라는게 있네요. 삼바리가 어떤 때 사용하는 거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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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맞은편에 위치한 사랑방입니다. 주로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공부를 가르치거나 손님들이 왔을때 잠을 자는 방입니다. 손자가 공부 못하면 할아버지한테 저 곰방대로 한대 맞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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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옆과 사랑방 옆에 위치한 광과 창고입니다. 뒤주와 쌀독, 함지박 등이 보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사이즈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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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있는 소외양간입니다. 옛날 중산층이면 소 한마리씩은 다 키우고 살았습니다.
소는 농사를 짓는데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고, 재산목록 1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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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양간 안에 있는 소덥석(좌측)과 소망(중앙), 소등글게(우측)가 보입니다.
소덥석은 소가 추울때 덥던 멍석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사이즈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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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외양간 바로 옆에 있는 헛간입니다. 주로 농기계 등을 보관하던 곳인데, 소와 함께 농사지을때 필요한 도구들이라 외양간 바로 옆에 둔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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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에 삼태기(좌측), 가마받이, 모줄, 골타게, 넉가래(중앙), 거상과 제초기(우측) 등을 가지런히 걸어 놓았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사이즈로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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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켵 처마 밑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광주리입니다. 과일이나 곡식을 담던 우리의 전통 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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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전통 초가집 모습입니다. 이런 집을 보면 아득한 고향 생각이 문득 납니다.

여러분은 중산층이라고 생각 하시는지요? 선뜻 대답하기 힙들 겁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중산층의 정의와 추정’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은 지난 10년간 10%나 감소한 반면에 부유층은 약 3%가 늘어났고, 빈곤층은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10년전의 중산층 10가구 중에서 1가구가 빈곤층으로 떨어 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여유가 생겨도 시원찮을 텐데 점점 더 빈부의 격차가 심해 지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닌 듯 싶습니다.

200여년전의 전통초가집을 살펴보면서 얻은 결론으로 조선시대 중산층은 3대가 함께 살면서 소 한마리씩은 키우고 있고, 광, 창고, 헛간 등의 공간에 곡식과 농기계 등을 보관하면서 전통적인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대가족이였습니다. 그리고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도 있었겠지만, 가족 구성원간 사랑과 정이 넘쳐 나는 가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농사를 통해 먹고 사는 문제는 그리 걱정 없이 살았던 것으로 보아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삶의 첫번째 조건을 돈으로 생각하는 오늘의 중산층과 조선시대 중산층은 적어도 삶의 가치관이 달랐습니다.

여러분들도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지금이 더 살기 좋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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