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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편의 결혼 프로포즈

by 피앙새 201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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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결혼 23주년을 맞았습니다. 어제 퇴근 후 남편과 커피 한잔을 하며 결혼 전에 들었던 프로포즈를 얘기했는데, 괜시리 쑥쓰러우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때 당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프로포즈를 기대했던 전  "뭐 이런 프로포즈가 다 있어?" 하며 속으로 내심 서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남편에게 받은 프로포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로포즈였습니다.

대학1학년때 만나 연애만 7년 한 끝에 1988년 결혼했습니다. 당시 386세대 대부분이 그랬지만 남편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고학생이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학비, 용돈 등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그와는 반대로 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하숙을 하며 집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별 어려움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이를 만난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이가 살던 과외집(먹고 자고 하면서 아이들 공부를 돌봐주던 곳)에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이 대학 2학년 겨울이었습니다. 그이는 당장 먹고 잘 곳이 없자 대학 학보사(당시 남편은 학보사 기자)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기거했습니다. 그 추운 사무실에서 고생하는 그이가 정말 안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이를 만나 저녁을 먹고 우린 학보사 사무실에 갔습니다. 한겨울이라 너무 추운 곳에서 지내는 그이가 너무 안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하는 그이 얼굴을 보니 더욱 더 눈물이 났습니다. 한참을 말이 없던 그이가 내게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어렵게 대학에 왔으니 어떻게든 졸업을 해야되는데, 걱정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다음에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말인데, 너 자취하는데서 함께 지내면 안되겠니?"

하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전 놀라서 어떤 대답도 못했습니다. 결혼도 안한 입장에서,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신분에서 어떻게 함께 지낼 수 있단 말입니까? 속으로 말도 안된다며 도리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앞으로 2년만 날 보살펴준다면 내가 50년을 행복하게 해줄께..."

아니 이건 뭐 내 인생을 자기 인생에 투자하라는 거야 뭐야...?? 금새 눈물 흘리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발아래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다가와 날 살포시 껴안으면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2년 투자해서 50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괜찮은 투자 아니니?"


그말을 들으니 좀 전에 긴장하며 놀라웠던 감정을 사라지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날 저는 아무 대답을 못했지만 다음 날 그이 과외집으로 가서 얼마 안되는 짐을 꾸려 제가 자취하는 집으로 왔습니다. 뭐 결혼도 안한 상태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거죠. 지금 생각하니 일종의 계약결혼(?) 형태네요. 그렇게 해서 그인 제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엿한 가장으로 사랑받는 남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결혼 23주년 기념일(7월17일)에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50년 계약 중 이제 20년 지났네. 앞으로 남은 30년도 꼭 약속 지킬께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고마운 생각이 들던지... 남편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맞아요. 남편은 정말 약속을 잘 지켜왔고, 또 앞으로 남은 30년의 약속도 잘 지킬 것입니다.

낭만적이고 멋진 프로포즈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의 프로포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로포즈였고, 내 인생에 대한 가장 소중한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잘 지키는 남편이 오늘따라 더욱 멋져 보입니다. 앞으로 남은 30년은 제가 남편을 더 잘해주며 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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