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친정어머니 얘기를 해볼까 해요. 어머니는 올해 76세로 3년 전부터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큰 올케가 모시고 있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하셔서 어머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지난주 올케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가 70년간 가슴 속에 품어왔던 얘기가 있다는 거에요. 치매때문에 올케가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우연히 의사와 상담하는 얘기를 듣고 제게 알려준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위로 언니가 두 명 있는데, 세번째로 또 어머니가 딸로 태어날 때부터 어릴 때부터 눈총을 참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목수로 일본까지 오가며 일을 할 정도로 돈도 많이 벌어서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데요, 아들 선호 사상 때문에 외할머니는 드디어 네번째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어요.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데, 어린 아들을 돌보는 것은 누나들 몫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어린 남동생을 많이 업어서 키웠는데, 그만 불의의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막내 동생이 두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어머니는 홀로 5남매를 키우셨다.)

어머니가 일곱살 되시던 해에 세 살이던 남동생을 업고 놀다가 그만 물레에 남동생을 떨어뜨렸습니다. 물레에 머리를 부딪혀 크게 다친 남동생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시름 시름 앓다가 네살 때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여덟살이던 어머니가 겪었을 정신적 충격 또한 굉장히 컸을 겁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 죽자, 외할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로부터 남동생을 죽였다는 원망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 때 받았던 충격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학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위로 언니 둘은 대학까지 보냈는데, 어머니는 초등학교만 보내고 집안일만 거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열아홉살 되던 해 이웃동네 청년에게 시집을 보내버렸습니다. 꼴보기 싫으니 빨리 시집이나 보내버린 겁니다. 어릴 때 큰 이모, 작은 이모는 잘 사는데 왜 우리집은 못사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나온 이모들은 좋은 신랑감을 만나 잘 살고 있었고, 초등학교만 나온 어머니는 시골 총각에게 시집을 가서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겁니다.

가난한 시골 청년과 결혼해 어머니는 딸 둘, 아들 셋 5남매를 낳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되던해 아버지가 그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때 막내 남동생 나이가 2살이었는데, 어머니는 남편 없이 혼자 5남매를 키우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시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5남매가 모두 출가했고, 큰 아들 집에서 편히 여생을 사시나 했는데 3년 전부터 치매증세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큰 올케가 병원을 오가며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있는데, 치매는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 올케가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의사선생님과 어머니가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고 하는데요, 여름이라 문이 열려 있어 어머니가 얘기하는 게 다 들렸는데, 어릴 때 동생을 사고로 죽게한 자책감에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이 어릴적 충격 때문인 것 같다는 소견을 보였는데, 70년간 품어왔던 가슴아픈 사연을 이제서야 꺼내신 겁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하늘로 떠난 후 억척같이 혼자 5남매를 키우면서도 마음 한 켠은 늘 남동생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려왔습니다. 이제 자녀들을 다 키워놓고 마음을 놓으실 때가 되니, 70년 전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그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치매까지 얻어 고생하고 계신 겁니다.

올케의 전화를 받고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전화를 받으셨는데, 항상 자식걱정 뿐입니다. 더운데 직장 다니느라 힘들진 않는지, 손자, 손녀들은 잘 크고 있는지 당신 걱정보다 딸 걱정 뿐입니다. 정작 당신은 70년간이나 아파했던 기억도 혼자 숨기며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는데 조금만 힘들어도 어리광 부리던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돌아가실 때까지 남동생을 죽였다는 고통스런 기억을 얘기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작던 크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가슴속에 응어리 하나쯤은 안고 사신다는데, 그 응어리가 한이 되고 병이 되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이젠 그 오랜 고통 편히 내려놓으시고 남은 여생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피앙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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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ㅠ.ㅠ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다 내려놓고 간강하게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2. 에구...저의 가슴이 막 먹먹해 옵니다.
    어머니께서 동생을 죽였다는 그 자책감에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마음 아파하면서 살아 오셨을까요?
    아직은 생존해 계시니
    잘 해드리세요.
    그것이 지금 자녀들이 해들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훗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좋은 방법입니다.
    돌아가신 후에 좋은 상석에 비싼 비석 그런것 다 필요 없습니다.
    평생 가슴에 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머니께 다 해드리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

  3. 있쟎아유, 남아선호사상 치가 떨리는 사람중에 하나에요,
    아들은 공부 아무리 못해도 누나(여동생)가 공부시켜야 한다고 온갖 고생다하고 ,
    아들 못되고 사업망하면 그 빚과 생계까지 떠안게 하는 부모도 있어유,
    그러고서 악담은 다 듣고 두들겨 맞고 ,, 그런 사람들 한 둘인줄 아세요,
    여긴 시골이라 정말 볼꼴 안 볼꼴 다 봐유,
    그냥 여자끼리 여행가서 맛있는 것 먹고 눈물로 꼭 한번 어머니 안아주세요.
    아니 보살핌 받아야 하는 나이에 동생을 맡긴 부모가 잘못이지 절대 어머니 잘못아니라고 ,

  4. 지금도 남아선호사상 멀었네 2011.07.10 15:1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친딸은 뭐하고 생판 남인 올케가 자기어머니를 모시누? 저러니 아직도 아들낳으려고 하지. 남아선호가 왜 생겼가니. 아들내세워 며느리 종부리듯하는 시집살이 문화때문이지. 여자들부터가 바껴야된다.

    • 웃겨 2011.07.10 19:17  수정/삭제 댓글주소

      아니 그럼 꼭 딸이 모셔야된다는 법은 또 어딨누?
      아들은 자식이 아님??
      키울때 아들 더 귀하게 키우고 재산도 더 갖으면 당연히 아들이 모셔야지..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어쨌든 형편이 가장 나은 자식이 모시는게 상식임.

    • 밥팅아 2011.07.11 10:23  수정/삭제 댓글주소

      남의 집 사정 아무도 모르는거지 참 말 쉽게 하네
      ㄷㅊ

  5.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이제라도 맘 편하게 사셨으면 합니다.

  6. 눈물이 나네요...그 아픔과 죄책감으로 평생을 사셨을 어머니 인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7. 가슴이 아프네요. 어머님이 건강하시길 바라네요.

  8. 버너군 2011.07.10 19:0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그러니까 외할아버지라는 분이 나쁘셨네요.
    어머님 대학도 안보내주시고 초등학교만 보내고 집안일 돕게 하셨다니
    대학나와서 결혼하고 잘 살게 해주셨다면 이런 사연은 있지도 않았겠죠.
    사연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9. 밝은날 2011.07.10 19:0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나원참...
    일곱살짜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애를 업고 다니게 한 건지...
    외조부모님 자기 딸한테 귀한 아들 죽였다는 탓하기 전에
    본인들이 그 원인제공 했다는 생각은 안했나 보네요. 나중에
    학교도 안보내고 그렇게 뭐 치우듯 시집보낸 거 보니...
    그런 사람들이 제 부모님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10. 일곱살 아이가 세살 아기를 안거나 업는다는건 굉장히 버거운 일이죠;;
    어른인 저도 세살 조카 안고 있으면 금방 무거워지던데..
    가족들이 다 너무 했네요 ㅠㅠ
    님 어머니께서 가장 큰 피해자인듯..
    자식들이라도 더욱 보살펴드리고 잘해드리셔야 될듯..
    암튼 참 가슴 아픈 얘기예요.

  11. 마음이 2011.07.10 21:5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마음이 아프네요.
    7살때면 어머님도 아직 어리셨네요.
    얼마나 아픈 마음으로 살아오셨을지요.

    옛시절 농촌에서는 어른들은 밖에 나가서 일을해야해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자라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위에 아이가 밑에 아이키우고 그랬죠.
    참 어려운 시절이였던것 같아요. 지금의 우리는 상상하기도 힘든...

  12. 똑같은 자식인데 어찌 저럴수가 있나요...ㅠㅠ
    그 죄책감을 모조리 어머니께서 지니신듯...ㅠㅠ
    빨리 호전되셔서 어머님 남은여생 편안히 사시기를 바래요ㅠㅠ

  13. 정주희 2011.07.11 01:3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너무 안타깝네요ㅠ_ㅠ
    할머니께서 이제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편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14. ㅠㅠ. 너무 안됐어요 ㅠㅠ. 2011.07.11 02:47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어머니 마음이 풀어질 수 있도록
    정신치료를 받으시는게 어떨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치료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데...
    사실 별거 없어요.
    상담사랑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거죠.
    70년이나 지났는데 어머니의 마음의 짐을 덜었으면 합니다.

  15. 어머님, 부디 다 내려놓으시고
    하루라도 평안하시길요.....

  16. 스마일 2011.07.11 09:1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살아가다보니...

    사람의 죽고 사는것이 누구 때문이 아니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동생분도,
    명이 그 만큼밖에 되지않았던 것이지,
    누구때문에 돌아가시지는 않았을겁니다..

    강산이 7번 바뀔만큼이나 세월이 지났는데도
    가슴에 묻어두고 계셨네요.

    상처가 얼마나 깊으셨을까요?

    마음이 저려옵니다.

    남은 여생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하시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17. 그냥 별 생각없이 읽게 됐는데
    댓글까지 남기고 가네요.
    타인인 저조차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어머니께서 받으셨을 상처에 맘 아프고,
    그러면서도 또 아이를 잃은 아픔을 품고 계셨을 블로거님의 외할아버지 마음도 생각하면 맘 아프네요.
    부디 행복한 여생 보내셨음 좋겠어요.

  18. 옛날에는 일골살이 아니라 여섯살 짜리도
    아이 업고 다녔지요.
    저도 누나가 6살때 절 업고 다니다가
    땅에 떨어뜨려서 애가 큰일날뻔 한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애기가 애기를 보던 세상에 지금부터
    50년전 40년전 시절입니다.
    굶기를 밥먹던 시절인데 부모들이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했지요.
    그러니 갓난아기를 5-6-7살된 꼬마가 보아야 했습니다.
    지금 30대 안쪽 분들은 이해를 못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