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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친정엄마가 70년간 품어왔던 가슴아픈 사연

by 피앙새 201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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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친정어머니 얘기를 해볼까 해요. 어머니는 올해 76세로 3년 전부터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큰 올케가 모시고 있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하셔서 어머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지난주 올케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가 70년간 가슴 속에 품어왔던 얘기가 있다는 거에요. 치매때문에 올케가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우연히 의사와 상담하는 얘기를 듣고 제게 알려준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위로 언니가 두 명 있는데, 세번째로 또 어머니가 딸로 태어날 때부터 어릴 때부터 눈총을 참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목수로 일본까지 오가며 일을 할 정도로 돈도 많이 벌어서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는데요, 아들 선호 사상 때문에 외할머니는 드디어 네번째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기뻤겠어요.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데, 어린 아들을 돌보는 것은 누나들 몫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어린 남동생을 많이 업어서 키웠는데, 그만 불의의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막내 동생이 두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어머니는 홀로 5남매를 키우셨다.)

어머니가 일곱살 되시던 해에 세 살이던 남동생을 업고 놀다가 그만 물레에 남동생을 떨어뜨렸습니다. 물레에 머리를 부딪혀 크게 다친 남동생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시름 시름 앓다가 네살 때 죽고 말았습니다. 당시 여덟살이던 어머니가 겪었을 정신적 충격 또한 굉장히 컸을 겁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 죽자, 외할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로부터 남동생을 죽였다는 원망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 때 받았던 충격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학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위로 언니 둘은 대학까지 보냈는데, 어머니는 초등학교만 보내고 집안일만 거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열아홉살 되던 해 이웃동네 청년에게 시집을 보내버렸습니다. 꼴보기 싫으니 빨리 시집이나 보내버린 겁니다. 어릴 때 큰 이모, 작은 이모는 잘 사는데 왜 우리집은 못사나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나온 이모들은 좋은 신랑감을 만나 잘 살고 있었고, 초등학교만 나온 어머니는 시골 총각에게 시집을 가서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겁니다.

가난한 시골 청년과 결혼해 어머니는 딸 둘, 아들 셋 5남매를 낳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되던해 아버지가 그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때 막내 남동생 나이가 2살이었는데, 어머니는 남편 없이 혼자 5남매를 키우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시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5남매가 모두 출가했고, 큰 아들 집에서 편히 여생을 사시나 했는데 3년 전부터 치매증세가 오기 시작한 겁니다. 큰 올케가 병원을 오가며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있는데, 치매는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 올케가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의사선생님과 어머니가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다고 하는데요, 여름이라 문이 열려 있어 어머니가 얘기하는 게 다 들렸는데, 어릴 때 동생을 사고로 죽게한 자책감에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이 어릴적 충격 때문인 것 같다는 소견을 보였는데, 70년간 품어왔던 가슴아픈 사연을 이제서야 꺼내신 겁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하늘로 떠난 후 억척같이 혼자 5남매를 키우면서도 마음 한 켠은 늘 남동생을 죽였다는 자책감에 시달려왔습니다. 이제 자녀들을 다 키워놓고 마음을 놓으실 때가 되니, 70년 전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그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치매까지 얻어 고생하고 계신 겁니다.

올케의 전화를 받고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전화를 받으셨는데, 항상 자식걱정 뿐입니다. 더운데 직장 다니느라 힘들진 않는지, 손자, 손녀들은 잘 크고 있는지 당신 걱정보다 딸 걱정 뿐입니다. 정작 당신은 70년간이나 아파했던 기억도 혼자 숨기며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는데 조금만 힘들어도 어리광 부리던 게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돌아가실 때까지 남동생을 죽였다는 고통스런 기억을 얘기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작던 크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가슴속에 응어리 하나쯤은 안고 사신다는데, 그 응어리가 한이 되고 병이 되나 봅니다. 어머니께서 이젠 그 오랜 고통 편히 내려놓으시고 남은 여생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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