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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남편 지갑을 몰래 열어보고 감동한 이유는?

by 피앙새 201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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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3년차 대학생 딸 둘을 둔 주부입니다. 오늘은 남편 지갑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해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결혼 후 아내들이 남편 지갑을 뒤지는 일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가끔 양복을 드라이크리닝 맡길 때는 어쩔 수 없이 지갑을 꺼내기도 합니다. 지난 일요일, 아파트를 돌며 '세~탁!, 세~탁이요!'하는 소리에 남편 여름 양복을 맡기려고 지갑을 꺼냈는데요,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갑을 한 번 열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큰 맘(?) 먹고 남편의 지갑을 한 번 열어보게 됐어요. 나이가 들다보니 간이 조금씩 커졌나봐요...ㅋㅋㅋ

남편 지갑을 열어보니 빠꼼히 딸들의 사진이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이건 뭐람? 내 사진은 안넣고 다니고 왜 딸들 사진만 갖고 다니지? 혼자 중얼거리며 보는데, 사진을 자세히 보니 두 딸들의 사진이 세로로 나란히 세워져 있더라구요. 아래 지갑 사진에 보듯이 왼쪽에 있는 게 장녀, 오른쪽이 차녀에요. 오른쪽 아래편에는 딸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찍었던 스티커 사진이 붙어 있네요. 아마도 이 지갑이 한 10년은 되었을 거에요. 기억하건데 이 지갑은 제가 결혼기념 선물로 사준 겁니다.


그런데 왜 딸들의 사진이 가로가 아니고 세로로 세워져 있는 걸까요? 이게 참 궁금하더라구요. 보통 남자들은 아내 혹은 자녀 사진을 지갑속에 지폐 넣듯이 쿡~ 넣고 다니는데, 남편은 좀 다르더라구요. 일요일이라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난 남편에게 아점(아침 겸 점심)을 차려주며 퉁명스레 물었어요.

'남들은 지갑에 아내 사진을 갖고 다니는데 왜 당신은 안 갖고 다녀요? 이제 사랑이 식은 거에요?'


뜬금없는 제 말에 남편은 '당신은 매일 보지만 딸들은 한 달에 한 두번 보잖아!' 하는 거에요. 그리고 보니 큰 딸은 대학 4년, 둘째는 2년인데 둘 다 교대를 다녀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요즘 남편과 저는 신혼 아닌 신혼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인데 둘째딸은 유럽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고,
4학년 큰 딸은 임용시험 준비로 방학도 없답니다. 요즘은 선생님 되는 것도 쉬운 게 아니죠.

남편은 '아이들이 선생님이 된다고 하는데, 사진을 눕혀 놓을 수는 없잖아. 임용시험 한 번에 턱 붙어서 좋은 선생님이 되라고 사진을 꼿꼿이 세워가지고 다니는 거야...' 아, 남편이 이렇게 깊은 뜻을 가지고 딸들 사진을 지갑에 세워서 가지고 다니다니... 그 말을 듣는 순간 감동 격하게 먹었답니다.

평소 딸들에게 자상한 아빠인 것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딸들을 생각하는 걸 보니 마음이 짜안해졌습니다. 그래도 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내 사진 한 장 안 갖고 다녀요'라고 했지만, 그 말은 저보다 딸들을 끔찍히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뜻이 담긴 말이었어요. 두 딸들에게 남편은 최고의 아빠였어요.

이런 아빠의 속깊은 사랑을 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어요. 큰 딸은 지난주에 내려오더니 아빠의 흰머리가 늘었다며 장녀다운 모습을 보이던데, 남편은 오히려 임용고시 준비를 하는 큰 딸이 안스럽다며 과년한 큰 딸을 업고 거실을 한 바퀴 돌더라구요. 자식을 향한 남편의 사랑은 끝이 없나봐요. 이런 아빠의 사랑을 먹고 무럭 무럭 자라는 딸들을 보니 저는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에요.

남편자랑, 자식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하는데요, 지갑 속에 갖고 다니는 사진 한 장에도 딸들에 대한 무한 사랑이 풍기는 남편의 지갑을 보면서, 이런 아빠라면 아이들이 절대로 삐뚤어질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아이들 입시 뒷바라지는 저 혼자 다 했다며 남편에게 생색을 냈는데요, 남편은 표현은 안해도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어요. 그 언덕에서 선생님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니,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구요. 오늘도 남편은 지갑을 열 때마다 그 지갑속에 꼿꼿이 서있는 대견한 두 딸들을 보며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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