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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기자하면 반듯하고 바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죠? 그래서 예능 프로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어요. 뉴스 앵커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한다? 좀 쌩뚱맞다고 생각됐는데 선입견이었어요. 어제 MBC 최일구앵커가 '무릎팍'에 출연했는데, 첫 출연도 아니고 이미 지난 2007년도에 한 번 출연한 경험이 있네요. 최앵커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입담에 빠지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웃었어요. 그러다보니 최앵커가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 최앵커가 왜 '무릎팍'에 출연했을까요? 이는 침체된 MBC뉴스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어요. 오는 11월 6일부터 MBC 주말뉴스데스크가 40년의 전통을 깨고 저녁 8시에 방송될 예정인데요. 이 뉴스를 최일구앵커와 배현진아나운서가 진행을 할 예정이에요. 아무리 뉴스라고 해도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사 예능 프로에 홍보차 출연한 거에요. '무릎팍'하면 연예인들이 나와 오해와 해명, 앨범과 영화홍보 자리로 이용하는데 뉴스 홍보를 위해 앵커가 출연한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겠죠.
최앵커는 현재 보도국 부국장이에요. 지난 1985년에 MBC에 입사한 이후 '카메라출동', '시사메거진2580' 등 사회 고발 프로를 주로 하다가 2003년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이 됐어요. 약 2년간 앵커를 하면서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당시 함께 뉴스를 진행하던 김주하아나운서가 최앵커의 톡톡 튀는 진행에 웃음을 터트릴 정도였으니까요. 어디 어록 뿐인가요? 거침없고 소신있는 발언으로 당시 최앵커는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어요. 아나운서지만 끼가 있었다는 거에요.
그의 예능끼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한 '로케트를 녹여라'곡이에요. 고등학교 3학년때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어두운 현실 등을 생각해 쓴 곡이라는데요.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까지 부르는 것을 보니 앵커라기 보다 연예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UV로 활동하는 유세윤과 올밴이 뒤로 넘어갈 만큼 가사와 곡이 너무 재미 있더라구요. 그런데요. 이 노래가 2006년도에 정식으로 음원등록은 물론 컬러링 서비스까지 됐다고 하는데, 다운 받은 사람이 달랑 1명 그것도 최일구라는 말에 빵 터졌어요. 최앵커는 원래 작가, 가수, 기자 3가지 꿈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처럼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개그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예능의 피가 끓고 있어요.
숫기없던 시골학생 최일구는 어떻게 기자가 됐을까요? 그 도전은 쉽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아홉살때 서울로 올라와 단칸 셋방에 살면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장남이셨던 최앵커의 아버지는 효심이 지극해 부모님이 농사일로 힘들어 하시자, 교사직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러 낙향했어요. 어린 일구를 서울에 홀로 남겨둘 수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올라와 최앵커는 조부모손에 자랐어요.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을 하실까봐 매일 아버지에게 신문 편지(신문 광고 여백에 안부글을 써서 보낸 신문띠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는 늘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로 번졌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뜻하지 않게 늑막염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어렵게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 후 언론사에 원서를 냈지만 1차 합격을 시켜준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MBC에 원서를 냈는데 극적으로 합격을 해서 25년간 MBC 보도국에서 일해왔어요. 남들처럼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것도 아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으로 맨몸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싸워 부국장 자리까지 오른 겁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지만, 뉴스 진행만큼은 평범하지 않았어요.
최앵커가 대중들의 인기를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뉴스의 고정관념을 깬 진행이었어요. 그는 기자들이 써준 뉴스 원고를 표정변화 없이 앵무새처럼 읽는 앵커이길 거부했어요. 그래서 별명이 정말 많은데요.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앵커계의 효자손', '앵커계의 어록제조기'라고 불립니다. 엄숙하고 진지한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지만 여느 앵커들에게서 풍기는 세련미는 찾기 힘든 서민적인 기자에요. 그가 남긴 재미있는 뉴스 어록 몇 가지를 볼까요? 만두파동 때 '저희들도 저녁 때 만두 시켜 먹었습니다.', 일본이 정신대 문제를 두고 오리발을 내밀 때 '일본 사람들 말이죠. 우길 걸 우겨야죠!' 등인데요. '어록' 한 방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다고 해서 '어록제조기'라고 불립니다.
당시 그의 거침없이 통쾌한 뉴스는 파격 그 자체였어요. 사람들은 '어 뉴스가 재밌네'하면서 최앵커를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앵커들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진행을 했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어요. 그래서 그를 '앵커계의 콜롬버스'라고도 합니다. 정말 별명이 많죠? 또 한 가지 특이한 별명이 있어요. 바로 '앵커계의 서태지'에요. 이 별명은 유세윤 말에 의하면 최앵커가 가장 뿌듯해하는 별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최앵커의 꿈이었던 가수의 꿈이 아직도 몸 속에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세상이 바뀌었으니 뉴스도 이제 재미있어야 하지 않나요? ㅋㅋㅋ
이번 주말부터 MBC 주말 뉴스데스크가 8시에 방송됩니다. 최앵커가 침체에 빠진 MBC뉴스를 살리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직접 나섰는데, '무릎팍' 출연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어제 '무릎팍'에서 보인 최앵커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는 물론 '깨방정앵커'라고 불릴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예능적 감각까지 갖췄으니 그의 바람대로 MBC뉴스에 새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합니다.
그럼 최앵커가 왜 '무릎팍'에 출연했을까요? 이는 침체된 MBC뉴스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어요. 오는 11월 6일부터 MBC 주말뉴스데스크가 40년의 전통을 깨고 저녁 8시에 방송될 예정인데요. 이 뉴스를 최일구앵커와 배현진아나운서가 진행을 할 예정이에요. 아무리 뉴스라고 해도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사 예능 프로에 홍보차 출연한 거에요. '무릎팍'하면 연예인들이 나와 오해와 해명, 앨범과 영화홍보 자리로 이용하는데 뉴스 홍보를 위해 앵커가 출연한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겠죠.
최앵커는 현재 보도국 부국장이에요. 지난 1985년에 MBC에 입사한 이후 '카메라출동', '시사메거진2580' 등 사회 고발 프로를 주로 하다가 2003년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이 됐어요. 약 2년간 앵커를 하면서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당시 함께 뉴스를 진행하던 김주하아나운서가 최앵커의 톡톡 튀는 진행에 웃음을 터트릴 정도였으니까요. 어디 어록 뿐인가요? 거침없고 소신있는 발언으로 당시 최앵커는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어요. 아나운서지만 끼가 있었다는 거에요.
그의 예능끼를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한 '로케트를 녹여라'곡이에요. 고등학교 3학년때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어두운 현실 등을 생각해 쓴 곡이라는데요.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까지 부르는 것을 보니 앵커라기 보다 연예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UV로 활동하는 유세윤과 올밴이 뒤로 넘어갈 만큼 가사와 곡이 너무 재미 있더라구요. 그런데요. 이 노래가 2006년도에 정식으로 음원등록은 물론 컬러링 서비스까지 됐다고 하는데, 다운 받은 사람이 달랑 1명 그것도 최일구라는 말에 빵 터졌어요. 최앵커는 원래 작가, 가수, 기자 3가지 꿈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처럼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개그맨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예능의 피가 끓고 있어요.
숫기없던 시골학생 최일구는 어떻게 기자가 됐을까요? 그 도전은 쉽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아홉살때 서울로 올라와 단칸 셋방에 살면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장남이셨던 최앵커의 아버지는 효심이 지극해 부모님이 농사일로 힘들어 하시자, 교사직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러 낙향했어요. 어린 일구를 서울에 홀로 남겨둘 수 없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올라와 최앵커는 조부모손에 자랐어요.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할머니 할아버지 걱정을 하실까봐 매일 아버지에게 신문 편지(신문 광고 여백에 안부글을 써서 보낸 신문띠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는 늘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로 번졌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뜻하지 않게 늑막염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어렵게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 후 언론사에 원서를 냈지만 1차 합격을 시켜준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MBC에 원서를 냈는데 극적으로 합격을 해서 25년간 MBC 보도국에서 일해왔어요. 남들처럼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것도 아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으로 맨몸으로 세상의 부조리와 싸워 부국장 자리까지 오른 겁니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지만, 뉴스 진행만큼은 평범하지 않았어요.
최앵커가 대중들의 인기를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뉴스의 고정관념을 깬 진행이었어요. 그는 기자들이 써준 뉴스 원고를 표정변화 없이 앵무새처럼 읽는 앵커이길 거부했어요. 그래서 별명이 정말 많은데요.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앵커계의 효자손', '앵커계의 어록제조기'라고 불립니다. 엄숙하고 진지한 뉴스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지만 여느 앵커들에게서 풍기는 세련미는 찾기 힘든 서민적인 기자에요. 그가 남긴 재미있는 뉴스 어록 몇 가지를 볼까요? 만두파동 때 '저희들도 저녁 때 만두 시켜 먹었습니다.', 일본이 정신대 문제를 두고 오리발을 내밀 때 '일본 사람들 말이죠. 우길 걸 우겨야죠!' 등인데요. '어록' 한 방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다고 해서 '어록제조기'라고 불립니다.
당시 그의 거침없이 통쾌한 뉴스는 파격 그 자체였어요. 사람들은 '어 뉴스가 재밌네'하면서 최앵커를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앵커들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진행을 했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어요. 그래서 그를 '앵커계의 콜롬버스'라고도 합니다. 정말 별명이 많죠? 또 한 가지 특이한 별명이 있어요. 바로 '앵커계의 서태지'에요. 이 별명은 유세윤 말에 의하면 최앵커가 가장 뿌듯해하는 별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최앵커의 꿈이었던 가수의 꿈이 아직도 몸 속에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세상이 바뀌었으니 뉴스도 이제 재미있어야 하지 않나요? ㅋㅋㅋ
이번 주말부터 MBC 주말 뉴스데스크가 8시에 방송됩니다. 최앵커가 침체에 빠진 MBC뉴스를 살리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직접 나섰는데, '무릎팍' 출연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어제 '무릎팍'에서 보인 최앵커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는 물론 '깨방정앵커'라고 불릴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예능적 감각까지 갖췄으니 그의 바람대로 MBC뉴스에 새 바람을 일으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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