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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향수

60년대 어느 초복날의 정겨웠던 기억

by 피앙새 2008.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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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초복입니다.

1년중 가장 더운 세 번의 더위중 첫번째 더위죠. 내 더위 사갈 사람 어디 없나요? ㅎㅎㅎ 아침에 일어나 초복인데 뭘 해먹을까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제 어릴적 초복때의 정겨운 기억들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냉장고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죠. 그 당시 동네에 냉장고 있는 집이 한 집도 없었답니다. 그리고 수박이나 참외 등 과일도 흔하지 않아 쉽게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복날이면 어머니는 수박을 한 통 준비해 마당에 있는 펌푸물(요즘 아이들은 이런 펌푸 모르죠, 아마...)을 퍼서 물에 둥둥~~ 띄워 놓습니다. 그리곤 제게 얼음가게 가서 얼음을 사오라고 합니다.
얼음가게까지는 어린 제가 걸어서 가는데 10여분 걸립니다.
얼음을 사서 걸어오는 동안 얼음이 녹을까봐 그 더운 날에 달음박질 쳐서 뛰어오던 생각이 나네요.
집에 오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그러나 수박화채 먹을 생각에 더위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어머니 심부름을 했던 시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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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담가놓은 수박을 칼로 반쪽을 내면 수박이 시뻘건 속내를 드러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큰 그릇에 수박을 숟가락으로 퍼서 담습니다. 그 사이 큰 오빠는 내가 사온 얼음을 망치와 바늘을 이용해 깹니다. 바늘을 얼음에 대고 망치로 톡톡~~ 치면 신기하게도 얼음이 조그맣게 깨집니다. 수박과 얼음을 넣은 그릇은 말그대로 물 반, 수박 반입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여기에다 귀한 설탕을 몇 숟가락 넣습니다.
그리고는 국자로 휘휘~~ 젖습니다. 그런 다음 마루에 앉아 온 가족이 수박화채 파티를 엽니다.

그릇에 수박화채 세 그릇을 따로 담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오빠들과 전 큰그릇에 둘러앉아 정신없이 수박을 퍼 먹습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수박화채 먹는 모습을 보며, 몇 숟가락 뜨고는 드시질 않습니다. 그때 전 어머니는 수박을 좋아하시지 않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고,  그땐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빠들은 숟가락으로 다 떠낸 수박 껍데기(마치 그릇처럼 생겼죠) 안에 수박화채를 담아 먹기도 합니다. 오빠들이 먹은 수박껍데기는 숟가락으로 하도 긁어대서 나중에는 빨간 부분은 하나도 없고 흰 부분만 남습니다. 그리고 두께도 얇아졌습니다. 수박화채를 다 먹고난 뒤 오빠들은 그 수박껍데기를 머리에 쓰고 "어~~시원하다!" 하면서 밖으로 나갑니다. 동네 친구들에게 "나 오늘 수박 먹었다!" 하고 자랑하려는 거죠...ㅋㅋㅋ

1960년대 제 어릴적 어느 초복날, 수박 하나로 이렇게 온 가족이 삼복더위를 견디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이젠 제가 그 당시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동네 과일가게나 대형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수박... 오늘 그 수박을 한 통 사다가 어릴적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수박화채를 만들까 합니다. 어릴적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가면서 사러가던 얼음은 냉장고에 가득 얼려있고, 마당에 있던 펌푸에서 한참을 틀어야 나오던 시원한 물도 시원한 생수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며 만들던 어머니의 그 초복음식 정성만큼은 잊지 않았기에 오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박화채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복날음식으로 먹으려 합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그 맛이야 나겠어요...?

어머니! 오늘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그 수박화채 맛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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