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행복

40년간 남편을 위해 점심상만 차려온 여자

by 피앙새 2009. 9. 26.
반응형
오늘은 사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조금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오랫동안 공개를 고민해온 작은 고모님 사연을 쓰려고 합니다. 필자의 작은 고모님 이야기지만 이런 분들이 우리 주변 어딘가에는 또 있으시겠지요.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사는 남편 아닌 남편을 위해 점심상만 차려오시던 고모님은 지난해  9월 돌아가셨습니다. 1년이 지나 그분 생각이 나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약 40년전인 1969년 고모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상냥하고 예쁘장해서 회사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총각들 외에도 회사 사장이 고모님을 좋아했나 봅니다. 물론 사장은 결혼을 한 유부남이라 고모님은 그저 동생으로 생각해 좋아하는 것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사장의 생각은 달랐나봅니다. 야근을 하던 어느날 고모님은 사장의 유혹에 넘어가 그만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하룻밤에 그만 덜컥 아이들 갖게돼 고모님은 사장이 마련해준 집에서 살게되었습니다. 사장은 본부인과 이혼을 하지 않은채 고모님과 동거하며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날 이후 고모님은 남편 아닌 남편(고모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남편이라 생각했지만)을 위해 매일 점심상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저녁은 본부인 집으로 가서 먹어야 하는 사장을 배려한 것입니다. 사장 역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저녁은 꼭 집에가서 먹었습니다. 고모님은 그렇게 점심상을 꼬박 꼬박 차리며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엉겁결에 낳은 딸도 아버지의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늦게 고모의 호적에 올렸습니다. 딸은 점심만 먹고 가는 아버지를 어릴적에는 그저 일하느라 바쁘다고 생각했지만 사춘기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알고 그만 가출해버려 그 이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모님은 점심을 준비하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 집 나간 딸을 위해 저녁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다가 딸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습니다. 사장은 처음 몇 년간은 매일 점심을 먹으로 오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점심을 먹으로 오는 날도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근처에 있던 살림집도 회사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서 사장의 발걸음은 더욱 뜸했습니다. 그러나 고모님은 사장이 오던 오지 않던 매일 점심상을 차려놓고 기다렸습니다. 지금이야 전화 한통화로 '나 오늘 못간다'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전화도 여의치 않아 사장이 오던 오지 않던 매일 정성스럽게 점심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세월이 40년 동안 계속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딸이 커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자, 사장의 발걸음도 뜸해지더니 몇 년전부터는 아예 발걸음을 뚝 끊었습니다. 그래도 고모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남편을 위한 점심상을 준비했습니다. 평생을 남편 점심상만 차려오시던 고모님은 지난해 마지막 점심상을 차려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평생의 소원일지 모를 저녁상 한번 차려주지 못하고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고모님은 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거역하지 않은 채 살아오셨습니다. 비록 '불륜'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보통의 가정주부처럼 된장찌게를 끊여놓고 기다리는 행복은 평생 꿈꾸지 못했지만 40년 동안 점심상을 저녁상처럼 차리며 행복을 느꼈습니다.

결혼식도 치루지 못하고 면사포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고모님은 지난해 돌아가셨습니다. 하늘로 간 고모님은 이제 그곳에서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고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을 위해 저녁을 준비할 때마다 돌아가신 고모님 생각이 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