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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노무현대통령 서거, 수녀님께 물었습니다

by 피앙새 200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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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갑작스런 노무현대통령님 서거 이후 필자 역시 적지않은 충격을 받고 오늘은 아침 일찍 천주교 용인 공원묘지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지난 2월 16일 김수환추기경님이 선종하신후 잠들어 계시곳입니다. 시부모님이 이곳에 편히 잠들어 계셔서 한달에 한두번 남편과 함께 방문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지난 2월 16일 이후 김수환추기경님 묘소에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오늘 대구에서 오신 수녀님을 만났습니다. 시부모님 성묘후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수녀님이 어떤 아가씨와 땡볕에 걸어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차를 세워 내려가는 길에 태워다 드리겠다고 하니 수녀님은 너무 고맙다며 우리 차에 타셨습니다. 차를 타고 분당 서현역까지 함께 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화제는 자연스럽게 어제 서거하신 노무현대통령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어제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신후 하루 종일 어수선하게 보냈다며, 제가 노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물었습니다. 수녀님은 한참 동안 생각하시는 듯 하더니 제 말을 받아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속에 뼈가 있었습니다.

"왜 노무현대통령이 돌아가셔야 해요? 그분보다 더 한 분들도 많잖아요. 국민들 따가운 시선을 피해 백담사로 도망가고, 아들의 부정으로 사과까지 하신 대통령들도 멀쩡히 살아았는데, 왜 노대통령님이 돌아가셔야 하는지 몰라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면 한치의 부끄러움도 용납치 않는 노무현대통령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어요. 다른 대통령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노대통령님을 배워야 해요."

저는 수녀님 말씀을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네', '그래요'라는 말로 응대할 뿐이었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온 아가씨 역시 다른 말은 없고 잠자코 듣고만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또 말씀을 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김수환추기경님이 선종후 3개월이 지났어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은 것은 그분이 부끄럽지 않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노무현대통령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의 자존심을 건드린 검찰의 수사는 그분에게는 비수를 꽂은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 비수에 노대통령님은 못견뎌 하셨고, 결국 스스로 삶을 버리셨습니다."

수녀님은 오늘 대구에서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셨습니다. 강남 터미널에서 지하철로 오리역까지 오시고 오리역에서 천주교 용인공원묘지까지 또 버스를 타셨습니다. 더운 날씨에 정말 힘든 길입니다. 천주교 용인공원묘지 입구에서 김수환추기경님이 계신곳까지는 1시간을 넘게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차도 없이 땡볕에 걸어서 김추기경님 묘소까지 가셔서 수녀님은 참배를 마치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도 역시 걸어서 오시다가 함께 타고 내려온 것 입니다. 수녀님이 힘든 길을 마다않고 대구에서 용인까지 오신 것은 김추기경님에 대한 사랑 때문인데, 그 사랑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매년 설날이면 수녀님은 명동 성당으로 와서 세배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1만원을 세뱃돈으로 주셨던 추기경님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녀님이 추기경님을 잊지 못하듯 지금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대통령을 잊지 못해 추모 물결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봉하마을까지 달려가지 못한 사람들은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등 전국 각지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 서거에 대해 오늘 우연히 만난 수녀님께 물었더니 한마디로 명쾌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왜 노무현전대통령이 돌아가셔야 해요? 그 분보다 더 한 사람들도 많잖아요?"

노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과 추모의 물결이 전국 각지에서 끊이지 않은 것은 대통령이실때나 물러나셨을 때나 항상 '낮은 곳으로' 부끄러움 없이 살려던 그분의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낮은 자세를 일부에서는 너무 가볍게 본 나머지 한 나라의 대통령이셨던 분이 돌아가셨어도 '사망'이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붙여가며 보도하던 방송의 행태에, 노대통령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언론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떠나셨습니다. 정작 노무현대통령이 떠나시고 나서야 봉하마을에 몰려든 방송사 중계차량과 신문사 기자들을 보고 지지자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수녀님이 말씀해주신 '그 분보다 더 한 사람들'은 지금 노대통령 서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분보다 더 한 사람들' 때문에 국민들은 더욱 힘들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려던 노무현대통령의 마음을 수녀님이 제게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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