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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지하철에서 교통비 구걸하는 아줌마 보니

by 피앙새 2009.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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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할 때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가장 많이 보는 장면이 폐지 줍는 노인과 물건 파는 사람들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하루 종일 신문지 등을 모아도 기껏해야 3천원 벌기 힘들다고 합니다. 또한 역무원들의 눈치를 봐가며 지하철에서 상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주로 저가 중국산 물건을 떼어다 팔기 때문에 상품 질이 좋지 않지만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사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껌이나 볼펜 등을 돌리며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사람도 자주 봅니다. 예전에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버스에서 ‘조실부모하고 고아원에서 자라오다가 사회로 나와 열심히 살려하니 도와 주십시오’ 라고 적힌 종이를 돌린후 껌을 팔던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지하철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판매장소가 버스에서 지하철로 바뀌고, ‘인생 내력’이 담긴 종이을 돌리지 않을 뿐 옛날과 다를 게 없습니다. 승객들은 껌은 받지 않고 천원짜리 돈만 주는 경우도 있고,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등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껌을 파는 사람들에게 지하철은 생존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1주전쯤 지하철에서 교통비를 구걸하는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여느 때처럼 회사일을 마치고 퇴근하기위해 지하철로 갔는데 말쑥한 차림의 40대 아줌마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길을 묻나보다 하고 지레짐작하고 있는데, “저기요.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차비 3천원만 빌려주시면 안돼요?” 합니다. 깔끔한 옷차림이라서 왜 차비가 없냐고 했더니 지갑과 핸드폰을 다 잃어렸다고 합니다. 저는 아줌마들 특유의 건망증을 알고 있기에 그런가보다 하고 지갑을 열어 1천원권이 없어서 5천원권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고맙다면서 인사를 꾸벅 하고는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을지로쪽으로 직장을 나가기 때문에 제가 주로 이용하는 지하철은 2호선입니다. 그런데 어제 퇴근할 때 지난번에 만났던 그 아줌마가 언뜻 눈에 띄었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아줌마를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제게 차비를 얻은 것처럼 다른 여성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 아줌마가 요즘 말하는 ‘지하철 교통비 걸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70이 다된 노인분들도 폐지를 주워 하루 기껏해야 3천원을 버는데,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지갑을 깜빡했거나 아니면 잃어버렸다 하고 2~3천원을 받는 것은 너무 쉬운 돈벌이였습니다.

요즘 살기가 어렵다지만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시민들은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런 심리를 교묘히 악용해 교통비 구걸을 하며 손쉽게 돈을 버는 그 아줌마는 저를 몰라볼 것입니다. 그러나 을지로 경유 2호선 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지하철을 다 순회하며 저에게 접근한 그 수법으로 차비를 얻는다면 그 돈만도 꽤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는 그 신종 교통비 구걸 아줌마와 폐지 줍는 노인이 극명하게 대비돼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기성 걸인들은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행인들에게 무작정 손을 벌리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솔직하게 돈이 없어 구걸을 하는 것과 거짓말로 지갑을 놓고 왔다며 돈을 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말쑥하게 옷을 차려입고 지갑과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사람들은 일단 의심부터 해야 되는데, 혹시라도 정말 지갑을 두고 온 사람들마저 ‘교통비 걸인’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이용하는 지하철역에서 '교통비'를 구걸하는 아줌마들은 오늘도 사람들을 기웃 기웃 거리며 돈을 얻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지하철에서 하루 종일 노구를 이끌고 폐지를 주우며 하루 3천원의 돈을 벌기위해 힘들게 일하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어렵지만 잔머리 굴려가며 쉽게 돈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기 바랍니다. 한 두번 속아 넘어가 처음에는 몇 천원의 돈을 줄지 모르지만 그 술수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요즘 지하철 풍속도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기 어렵다고 교통비를 구걸하는 ‘사기성 걸인’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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