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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레카차 기사, ‘차 안이 곧 직장이죠’

by 피앙새 200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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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카차기사들은 차 안이 곧 직장입니다. 하루종일, 아니 2~3일씩 차안에 머물며 지루한 기다림과 싸우며 교통사고 현장에 온 신경을 곤두 세우며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매일 매일 전쟁과 같았으며,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얻고 지면 아무런 보상도 없이 헛된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 남의 불행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을 하지만 레카차기사들 역시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레카차끼리의 '경쟁'입니다.

교통사고가 나면 어김없이 달려오는 차가 있습니다. 바로 경찰차와 앰블런스, 레카차, 보험회사 차입니다. 이중 가장 빨리 달려오는 것이 레카차입니다. 사고가 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사고 난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쏜살같이 달려오는 레카차를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차가 보통 경찰차이고, 가장 늦게 도착하는 것이 바로 보험회사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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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시내에 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레카차 신세(?)를 처음 지게 되었습니다. 도로 한가운데 차가 서버려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이옹~ 이옹~' 하며 레카차가 달려옵니다. 저는 레카차기사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데, “가까운 정비업소로 견인해 드립니다. 보험사 약관에 따라 10km까지는 무료이며, 이후 1km마다 추가 요금이 징수됩니다.”라며 마치 옛날 약장수처럼 판에 박힌 견인 비용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저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또 한 대, 또 그 다음에도 또 한 대의 레카차가 왔습니다. 3대의 레카차 기사는 그들만의 법칙에 따라 고객이 지명하지 않는한 먼저 달려온 기사가 사고 차량을 견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처음 도착한 기사의 도움을 받아 가까운 정비업소로 차를 견인했습니다. 교통사고후 꼭 보게되는 레카차기사들에 대해 혹자는 견인비용을 바가지 썼다며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고가 났을 때 바로 와서 처리를 해주어 고마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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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업소로 가는 동안 레카차기사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생각보다 근로환경과 낮은 수입 등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카차기사분들은 한달에 20일 정도 일하고 열흘을 쉽니다. 그러니까 택시기사와 근로일수는 같습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일이 끝나면 집으로 가서 쉬지만 레카차기사들은 차에서 잠자고 쉬고, 기다리는 생활의 연속입니다. 즉, '차숙(車宿)'을 하며 교통사고 다발지역에서 대기하는 것입니다.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48시간 도로위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이러다 보니 끼니를 제때 챙겨먹는 것도 힘들고, 씻는 것과 화장실 가는 문제 등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꼬박 이틀을 근무하고 집에 들어갈 때면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하철역 화장실 등에서 씻고, 차안이 답답하다 싶으면 밖으로 나와 바람도 쏘이며 ‘차 안이 곧 직장’인 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고생해서 손에 쥐는 돈이 기사에 따라 다르지만, 한달에 약 200만원 정도랍니다. 한 달에 20일 일하니 24시간 꼬박 차숙하며 버는 돈이 10만원이면 결코 많은 돈이 아닙니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나누면 시간당 시급이 약 4,160원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겨울철 눈이 많이 오고 미끄러울때나 채울 수 있는 금액이고, 요즘같이 길이 미끄럽지 않을 때는 공치는 날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레카차기사에게 교통사고 현장에 어떻게 알고 빨리 올 수 있냐고 물으니 놀랍게도 시내 곳곳에 사고가 나면 바로 연락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레카차기사는 성남 수정구에 사는 분인데, 주로 복정 사거리와 남한산성역 일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근처 화원, 음식점, 노점상 들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교통사고 목격시 바로 연락을 주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견인을 하게될 경우 신고사례금(약 5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신고를 해주는 사람들이 수정구에 30여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전에는 경찰들의 무전망을 도청하여 사고현장으로 빨리 가곤 했는데, 지금은 불법 도청 문제로 하지 못하고 대신 신고요원들에게 연락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레카차기사들은 교통사고를 쫓는 ‘파파라치’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남의 불행이 곧 자신의 행복인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니 처절하리만치 하루 하루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퇴근하는 날이 많아야 10여일이고, 또 견인 건수가 별로 없을 때는 몇 일씩 집에도 못 들어간 채 차안에서 계속 생활한다고 합니다. 견인차 뒤에는 이불과 옷 등이 있었고, 한평도 안되는 그곳에서 잠을 자며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등을 지키지 않고 현장에 달려가면서 목숨을 담보로 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레카차기사 직업은 3D업종입니다.

레카차기사들은 단순히 견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보다 사람의 생명을 우선하여 차량 화재 또는 인명이 다쳤을 경우에는 현장 구호와 정리, 목격자 진술 등 사고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고 하고 있습니다. 동료들 중 일부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견인요금을 부당 징수하여 레카차운영자들에게 색안경을 끼고 볼때가 힘들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정해진 기준대로 요금을 징수하고 있답니다.

가까운 정비업소까지 간 거리가 8km라 그날 견인비용은 따로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레카차기사는 대신 보험사에서 견인비용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서울, 아니 전국의 교통사고 다발지역 주변에는 어김없이 레카차기사들이 하릴없이 교통사고 희소식(?)을 기다리며 차 안에서 외로운 근무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레카차기사들에게 차 안은 곧 그들의 직장이고, 생활의 터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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