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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아내의 날'요? 아내 생일도 잘 몰라요!

by 피앙새 2009.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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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3월 3일, 보험회사에서 만든 날이지만 ‘아내의 날’이랍니다.

부부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건강한 가족상을 만들어 나가는 취지에서 만든 날이랍니다. 아침에 분주하게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과 함께 각기 직장으로 출근하여 오전에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결혼한지 3년차인 옆자리 동료에게 남편으로부터 달콤한 문자가 날라왔습니다. 그냥 혼자만 보면 되는데, 문자를 받고 사무실 직원들에게 자랑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녀의 핸드폰 문자는 이렇게 왔더군요. “자갸! 오늘이 '아내의 날'이야. 오늘 진눈깨비도 날리고 기분도 꿀꿀한데 저녁에 와인과 삼겹살 어때, 사랑해...♡♡” 그 동료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닭살 멘트를 섞어가며 한참 통화하는 것을 사무실에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로서 은근히 시샘과 질투가 났습니다. 남들은 문자도 보내주고 저녁 약속도 잡는데 우리 남편은 뭐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하긴 뭐, 지금까지 아내의 날은 커녕 화이트데이, 결혼기념일, 아내 생일조차 챙기지 못하는 남편에게 저도 오늘 처음 들어본 ‘아내의 날’을 기념해서 남편에게 축하와 위로 메시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죠. 문자메시지를 기다리는 제가 바보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기념일조차 챙기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남편이 이해가 됩니다. 승진보다 실직과 해고당하고 않고 직장 잘 다녀주는 것만 해도 요즘은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요즘은 사무실 일이 바빠서 그런지 매일 저녁 12시가 다되어 들어오기 일쑤입니다. 술 냄새 풍기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남편의 몸은 파김치라서 '술 좀 그만 마시고 다니라'고 바가지 긁지도 못합니다. 대신 시원한 꿀물 한잔 타서 쇼파에 쓰러진 남편을 일으켜 세워 들이마시게 하고 양말과 옷을 벗겨 억지로 화장실로 들여보냅니다. 간신히 양치질과 발을 씻고 안방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지는 남편이 측은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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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아내의 날이라고 남편에게 문자를 받지만 저는 오늘 점심을 먹고 반대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점심 드셨어요? 진눈깨비가 날리는데 창밖 내다 볼 여유 좀 갖고 사세요. 오늘 저녁 삼겹살 준비하려는데, 일찍 오실 수 있어요?” 문자를 보낸 지 지금 30분이 넘었지만 아직 남편에게 답문은 오지 않습니다. 늘상 우리 남편은 이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들이 좋아하는 살가운 사람은 아닙니다. 좋아도 싫어도 별로 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 초에는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나, 싫어하나 눈치 좀 보며 살았답니다. 지금이야 남편의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정도로 정이 들었지만 남편의 속을 알면 알수록 세상 그 많은 남자 중에서 콕~ 잘 도 찍었구나 생각하며 삽니다. 제가 이젠 팔불출녀인가 봅니다.

부부는 나이가 들 수록 친구가 된다고 합니다. 남편과 제 사이는 신혼초 뾰족하던 관계가 이제 많이 무디어져 반질 반질한 차돌맹이가 된 거 같습니다. 그동안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며 살아온 시간이 꿈만 같지만 그래도 올곧게 자라준 아이들이 있고, 성실한 남편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아내의 날’이 부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고 하는데, 요즘 막장 드라마처럼 세상이 너무 변하고 험해져서 이런 날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년중 하루라도 아내를 생각해달라고 하고 말이죠.

사실 ‘아내의 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매일 가정에서 가사 노동으로 힘든 아내들에게 남편들은 매일 매일 ‘아내의 날’로 생각해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랑의 포옹 한번 해주면 3월 3일을 아내의 날로 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남편부터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부질 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아내의 날이라고 남편에게 축하와 격려 문자를 받지 못해도 저는 거꾸로 '남편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삼겹살과 아껴둔 발렌타인 양주를 준비하려 합니다. 설령 회사일이 바빠서 늦게 퇴근한다 하더라도 오늘이 아내의 날인데 왜 문자도 안하고 늦게 퇴근하느냐며 바가지 절대 긁지 않으렵니다. 남편이 늦게 퇴근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피곤한 남편을 더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모양처 제 1의 원칙 아닐까요? 현모는 아니더라도 양처는 되려고 노력하는 아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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