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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정보

40대 아줌마가 '꽃남'에 빠진 이유

by 피앙새 200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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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 딸과 함께 판타지 드라마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으로 표기)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인 큰 딸, 고등학교 3학년인 작은 딸이 방학이라 월, 화요일이면 유일하게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가 되었습니다. <꽃남>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동시간대 인기드라마인 <에덴의 동쪽>을 시청했었는데, <꽃남>이 시작된 이후 채널 선택권을 두 딸들에게 빼앗겼습니다. 딸들이 보는 <꽃남>을 처음에는 유치한 청춘 드라마쯤으로 생각했는데, 한두 번 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40대 아줌마가 <꽃남> 드라마에 빠진 이유는 솔직히 지금 제 나이를 부정하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저도 드라마 속 여주인공 금잔디(구혜선 분)가 되어 백마탄 왕자 구준표 같은 멋진 남자에게 프러포즈를 다시 받고 싶은 꿈을 꾸게 됩니다. '40대 아줌마가 주책이야~' 할지 몰라도 모든 여자들의 가슴 속 한구석에는 이런 꿈이 다 있답니다. 아줌마들도 멋진 남자들 보면 끌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꽃남>을 보기 전에 두 딸들은 이미 일본 만화 원작을 본 터라 친구들끼리 <꽃남>에 대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등 F4(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F4 중에서도 큰 딸은 김현중(윤지후 역)을 좋아하고, 작은 딸은 이민호(구준표 역)를 좋아해 같은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도 남자 취향은 서로 달랐습니다. 물론 저와 남편도 <꽃남>을 보며 서로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저는 배용준 이미지가 풍기는 김현중을 좋아하고, 남편은 깜찍하고 귀여운 김소은(추가을 역)을 좋아합니다. 같은 드라마를 보지만 온 가족이 이렇게 좋아하는 연기자는 서로 다릅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꽃남> 신드롬은 예외가 아닙니다. 사무실에 일하는 여성 직원이 모두 다섯 명인데 이중 나이가 든 직원들은 주로 김현중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배로 배용준의 연기 포스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배용준은 2004년 <겨울연가>에서 강준상으로 나와 창백한 얼굴로 첫사랑 정유진(최지우 분)을 바라보면서 우수에 젖은 듯하면서도 차갑게 일렁이는 연기로 수많은 한국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더니 급기야 일본 여성들까지도 설레게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여자는 장동건에 죽고, 일본 여자는 배용준에 죽는다'는 말까지 나오며 '욘사마' 존칭까지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용준의 모습이 <꽃남> 김현중에게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F4중 30~40대 여성들이 좋아하는 연기자는 단연 김현중입니다.

저 역시 배용준을 좋아해서 김현중에게 더 끌립니다. 20대 아가씨들은 이민호(구준표 분)를 더 좋아합니다. 돈 많은 재벌이고, 터프하고 잘 생긴 드라마 속의 구준표를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준표는 극중 재벌 2세로서 안하무인격으로 나오지만 금잔디를 향한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는 약한 남자입니다. 이런 모습은 여성들 특유의 모성애를 자극해 극중 이민호를 더욱 더 좋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꽃남> 신드롬은 곧 구준표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가 막장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유혹>, <에덴의 동쪽> 등 인기 있는 드라마들은 모두 '막장'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꽃남>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서민들의 비굴한 모습을 그리면서 천박한 재벌이 나오고, 왕따, 폭력, 성폭행 등 드라마 속의 모습이 막장 판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성인군자 같은 모습만으로는 재미도 없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막장 드라마로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방송사의 제작 행태를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 <꽃남>이 막장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막장 속에 10대들이 꿈꾸고 싶은 판타지와 대리 만족, 화려한 비주얼 등이 함께 버무려져 이런 막장을 그마나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40대 아줌마가 딸들과 요즘 <꽃남>에 빠진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살기도 힘든데, 동시간대 드라마인 <에덴의 동쪽>을 보면 복수, 폭력, 낙태, 출생의 비밀 등 어둡고 침울한 얘기로 점철돼 보고 나면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화가 원작이라 그런지 <꽃남>을 보고나면 뒤끝도 없고, 10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이번주 구준표와 윤지후가 금잔디를 두고 서로 사랑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그 주인공이 된 듯 흥분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저 뿐만 아니라 딸들이 매일 밤 꿈꾸는 것일지 모르지만, 현실 속엔 그런 멋진 세상이 없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대리만족을 하니 <꽃남>을 보는 내내 딸들의 기분은 좋은가 봅니다. <꽃남> 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10대에는 누구나 백마 탄 왕자가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딸들과 함께 40대 주부가 요즘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판타지는 나이를 떠나 누구나 갖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남사스럽다고 그 기분을 표출하지 못하고 자제할 뿐입니다. 그러나 딸과 함께, 그리고 남편과 함께 보는 <꽃남> 속에서는 F4 중 "내 이상형은 김현중이야" 하면서 드라마 속에 편하게 빠질 수 있으니 <꽃남>은 가족간의 대화를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꽃남> 드라마의 막장 요소는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막장요소를 걸러내고 보는 것은 시청자들의 몫입니다. <꽃남>을 통해 잠시나마 판타지 여행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적어도 <꽃남>을 보는 동안은 40대 아줌마라는 것을 잠시 잊습니다. 이것이 <꽃남>신드롬의 가장 큰 이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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