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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새해 소띠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

by 피앙새 2009.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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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소망을 안고 새해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는 남편의 띠인 소띠해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미친소'가 등장하여 본의 아니게 우직한 소가 폄하되기도 했습니다. 옛날에 농가에서 소가 미쳤다면 그해 농사는 다 지었겠죠. 소는 식용으로 뿐만 아니라 농가에서는 재산목록 1호로 가족처럼 지내던 소중한 동물이었습니다.

소 팔아서 대학을 보낼 정도로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은 소의 은혜(?)를 입고 힘들게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상아탑이라고 부르는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영향으로 소 한마리 팔아도 대학 등록금을 대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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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거대 기업 현대를 일으켜 세운 故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몰고 1996년 방북을 할때 소는 남북 화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때 보낸 소들은 지금은 다 죽고 그 소의 새끼들이 대를 잇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남북 화해의 물꼬를 텄던 그 소들은 다 없어지고 지금은 미국에서 오히려 미국에서 미친소가 들어오고 수입산 쇠고기가 대형 할인마트에서 팔리고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요상한 세상입니다.

이렇게 소는 작년 한해동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올해 소띠해를 맞았습니다. '소 뒷걸음 치다가 쥐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그 뒷걸음질에 잡힌 쥐입니다. 남편은 소띠이고 저는 쥐띠이기 때문입니다. 저 어릴적에 할머니께서 소띠와 쥐띠가 만나면 잘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을 믿고 살아서 그런지 소띠 남편과 결혼 이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았으니 할머니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결혼 이후 남편은 소처럼 우직하게 가족을 위해 힘든 내색 안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제 밤 11시 58분 쯤에 남편에게 "소띠해 축하하고, 무엇보다 올해도 늘 건강하세요?" 하니 남편은,

"이제 소가 늙었다는 소리로 들리네. 아직은 한창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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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2006년 지리산에 갔을 때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황봉 일출을 보았다.)

사오정 고개를 넘어 남편은 이제 오륙도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직 지천명도 넘지 않았지만 벌써 오륙도를 걱정하는 남편이 안스럽습니다. 작년에 경기가 안좋아 남편의 회사에서도 명퇴와 감원태풍이 휘몰아쳤고, 올해 역시 그 태풍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편 세대는 흔히 하는 말로 우리 나라 산업화를 이끌어온 세대지만, 요즘 감원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불쌍한 세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어깨가 가끔씩 힘이 없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지 모릅니다.

올해 소띠해를 맞아 아내로서 남편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사실 건강입니다. 결혼 이후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밤 낮으로 일해온 남편이 늙은 소 취급을 받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늘 나이는 먹었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하지만, 지난해 다르고 올해 다른 남편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어제 밤 12시가 넘어 남편과 함께 포도주 한 잔을 마시며 새해 소망을 빌었습니다. 저는 남편의 건강을 빌었는데, 남편은 어떤 소망을 빌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명퇴, 감원 태풍이 휘몰아치지 않도록 해주고, 올해도 회사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진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남편의 새해 소망은 이 시대 모든 가장들의 소망이기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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