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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어느 카드회사의 생색내기 초대장

by 피앙새 2008.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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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무렵 잠실에 있는 L놀이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나이 들어 이런 놀이공원에 갈 일이 별로 없는데, 언니에게 받은 초대장 때문에 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가서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언니가 준 초대권은 L카드사가 고객들에게 보내준 놀이공원 초대장입니다. 언니도 L카드사 회원이기 때문에 초대장을 받았지만 시간이 없어 내게 주었던 것입니다. 초대장을 받고 기분좋게 놀이동산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고객 입장에서 한번 따져 보았습니다.

첫째는 수백만 고객들에게 보낸 초대장 날짜가 모두 같은 날인 12월 19일 단 하루입니다. L카드사는 1년에 한번씩 고객 사은행사 차원에서 이벤트를 엽니다. 이벤트 장소는 그룹 계열사인 L놀이동산입니다. 경쟁사에 비해 창립한지 4년밖에 안됐지만 고객수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하루, 그것도 고정된 날짜인 12월 19일로 초대장을 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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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카드사가 고객들에게 준 입장권

L놀이동산에 들어갔을 때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인파에 놀랐는데 아마도 대학도 방학을 했고 중고등학교 기말고사도 끝난 금요일이라 사람들이 많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장고객의 90% 이상이 가슴에 단 입장권 목걸이가 똑같았습니다. 바로 L카드사가 보내준 초대장 입장손님입니다. 초대장을 받은 입장객은 3층 전용 입구에 마련된 안내센터에서 입장권을 교환하여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확인차 놀이동산 안에 있는 L카드 고객센터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카드고객에게 보낸 초대장 날짜가 오늘 말고 다른 날 또 있냐고 물었더니 "오늘 단 하루"라고 합니다. 그럼 초대장을 보낸 많은 카드사 고객이 오늘 다 입장하려면 놀이동산 터지겠다고 말했더니 그 직원은 그냥 웃었습니다. 이왕 초대장을 줄 것이라면 자유이용권 형태로 고객들이 편한 날짜에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면 좋은데 왜 단 하루로 제한해서 인파에 눌려 제대로 어드밴처 놀이기구 하나 못타게 하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놀이기구 입구는 초대장 받은 입장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작게는 30분에서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번 탈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김아중 팬사인회때 노골적인 카드사 홍보로 눈살을 찌뿌리게 했습니다. 김아중은 L카드사 전속모델입니다. 팬사인회를 한다고 해서 가봤는데 우선 시간부터 지키지 않았습니다. 계획된 시간이 오후 6시 40분부터 8시까지 였는데 김아중이 지연도착해서 7시가 넘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최측은 팬사인회가 늦게 시작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 한마디 없었고, 김아중이 나오자 사회자는 L카드 홍보에 열을 올립니다. "김아중씨가 사용하는 카드가 무슨 카드죠?" 당연히 김아중은 "예, 저는 L카드만 써요!"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자사 카드 홍보로 가뜩이나 늦은 팬사인회 시간을 5분 또 허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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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진행된 팬사인회도 관객들을 기분나쁘게 했습니다. 저야 김아중 얼굴 한번 보려고 갔지만 김아중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녀가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길게 서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사회자는 김아중씨에게 사인을 받을 때 주의 사항을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 중에서도 사인을 받으러 올라와서 "김아중씨 예쁘네요.", "저 김아중씨 정말 좋아해요." 이런 말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김아중과 팬들의 소중한 만남 그 자체보다 L카드 홍보 목적으로 온 만큼 사인만 받고 그냥 바로 내려가라는 겁니다. 김아중씨 팬이라도 저 같으면 기분 나빠 사인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셋째는 초대장으로 입장한 수많은 고객때문에 일반 고객이 피해를 본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어제 비싼 자유이용권을 구입해 들어온 일반 입장객은 평일인데도 수많은 인파가 몰린 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아마도 L카드사 초대권 입장객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놀이기구도 많이 못타고 인파속에서 고생만 하다가 갔을 것입니다. 놀이공원 홈페이지를 보니12월 19일 L카드사 고객 이벤트에 대한 안내 공지는 없습니다. 이런 대형 이벤트로 무료 손님들이 폭주할 것이라는 것을 놀이동산측이 모를리 없었을 텐데 공지를 안한 것은 일반손님들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입니다. 놀이동산 입장료는 35,000원(오후 5시 이후는 26,000원)으로 일반 서민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제 모처럼 마음 먹고 온 일반 고객들의 보이지 않는 피해에 대해서는 누가 보상해줘야 하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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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 초대고객들 때문에 일반고객들은 인파에 밀려 놀이기구 등을 제대로 즐길수가 없었다.)

카드사가 자사 고객들을 생각해 1년에 한번 사은 이벤트를 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왕 이벤트를 연다면 고객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객들이 편하게 놀이동산을 이용할 수 있도록 초대권 이용날짜를 하루로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하루로 제한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됩니다. 카드사 고객이 적어도 수백만명일텐데, 이 많은 고객들이 어떻게 하루에 다 입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초대권을 받은 L카드사 고객중 어제 놀이동산 이벤트에 참가한 고객은 극소수일 것입니다. 나머지 초대권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카드사가 고객들에게 생색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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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카드사 고객들을 위한 연말 이벤트 행사 내용인데, 저녁 6시부터 시작되어 인파가 더 많이 몰렸다.)

초대장을 받을 때만 해도 L카드사가 그래도 고객들을 생각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놀이동산에 갔다가 돌아오면서는 "역시나~"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어제 초대장을 갖고 놀이동산에 갔던 많은 사람들이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이런 고객 사은 이벤트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저는 안갔을 겁니다. 사람 구경하러 갔다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친구와 함께 기분 좋게 갔다가 고생만 하고 씁쓸한 기분만 남은 카드사 초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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