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인근에 천주교 박해 역사가 있는 북수동 성당이 있습니다. 이곳은 수원 성지 본당(옛날 포도청 자리)으로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대박해가 시작되면서 수원화성으로 체포되어 온 천주교인들이 심문을 당하고 처형을 당하기도 한 곳이죠. 수원화성 천주교 순교지의 중심지로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성당입니다.
천주교 박해가 있었던 곳이라 성당 경내에 돌 형구가 있습니다. 구멍이 크게 뚫린 앞쪽에 천주교인들의 목을 놓고 밧줄을 목에 건 다음 구멍이 작게 뚫린 뒤쪽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목을 조이는 형구라고 하는데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오늘은 북수동성당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 박해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뽈리화랑을 소개하려 합니다. 뽈리화랑 앞에 안내판이 있는데요, 이곳은 구 소화초등학교였습니다. 소화초등학교는 1934년에 설립된 ‘소화강습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목조로 지어진 건물이었는데요,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이 되었고요, 1952년 돌로 다시 지어 소화초등학교로 사용되었습니다. 2002년 1월 소화초등학교는 원천동으로 이사했고요, 그 역사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죠. 돌로 만들어서 그런지 외관이 아주 튼튼하면서도 고풍스럽습니다.
왜 뽈리화랑일까요? 북수동성당 제4대 신부 심 데시데라도 뽈리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기 때문이죠. 뽈리화랑 오른쪽에 뽈리 신부 동상과 북수동성당의 역사를 담은 안내판이 있습니다. 석조(화강석)건물은 오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뽈리화랑 건물은 2층 건물인데요, 현재는 1층만 전시실로 사용 중입니다. 3개의 전시실에 소화초등학교의 역사는 물론 북수동 교회사, 천주교 박해 시대 그림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근대 역사를 이해하기에 좋은 전시입니다.
1층에 들어서니 기다란 복도가 맞아줍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만큼 오래되고 낡았다는 거죠. 저는 7080세대인데요, 초등학교 다닐 때 복도에 쓰다 남은 초를 가져다 마루에 칠하고 걸레로 닦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창문은 헌 신문지로 닦기도 했죠. 그때의 추억이 담긴 복도가 뽈리화랑 복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복도에는 소화초등학교 역사가 담긴 패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보듬으며 우리의 말과 얼울 지켜낸 작은 학교가 있었는데요, 앞서 언급했던 ‘소화강습회’입니다.
전시 패널은 오래된 흑백 사진이 있습니다. 그중 성당 앞 성모상과 신축 석조 교사 사진이 눈길을 끕니다. 1954년 소화초등학교 모습으로 진귀한 사진이죠. 지금의 뽈리화랑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일부 변형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당시 학교 건축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수동성당 옆은 조선 시대 부호들이 모여 살던 팔부자 거리입니다. 지금은 ‘문구 거리’로 더 유명하죠. 1980년대 후반부터 문구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인근의 참고서 대리점과 제휴하여 지방 소매상과 문구와 참고서를 일괄 공급하면서 크게 번성했다고 합니다. 과거 시전 상인의 명맥이 문구점으로 이어졌던 것이죠. 그러나 한때 30여 개에 달했던 점포가 많이 줄어 현재는 한적한 골목이 됐습니다.
전시실은 교실을 활용했는데요, 교실 문을 보니 아주 낮습니다. 옛날에는 아이들 키가 작아서 이렇게 낮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키가 큰 사람은 머리를 숙여 들어가야 합니다. 교실 앞에 서니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첫 번째 전시실로 들어가니 벽면에 뽈리 신부 이야기, 수원화성 권역 내 성당 건립, 화성 내 천주교 박해 성지와 수원의 순교자들, 북수동 교회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옛날 소화초등학교는 어떻게 지어졌을까요? 그 모습을 원형으로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본체를 드러나게 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이들의 함성은 들리지 않지만, 소화 배움터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박해 모습이 담긴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남편, 아버지가 포도청에 붙들려 가서 형틀을 매고 있는 그림이 보이는데요, 밖에서 아이와 아내가 이 모습을 슬프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죠.
두 번째 전시실로 들어가니 다양한 나무 십자가를 가운데 전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하면 고난이 연상되는데요, 그 고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화성의 옛 모습 패널 뒷벽에 지도첩 내 화성도가 붙어있습니다. 조선 후기(1831년 전후)에 만들어진 지도입니다. 지도에 화성 내 천주교 박해 위치가 붉게 표시돼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화성행궁, 동남각루, 북암문, 화서문 등이 보입니다. 천주교 박해 시대에 화성 내에 성당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본은 수원 박물관에 있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은 1980년대 다방 분위기입니다. 오래된 탁자와 의자가 있습니다. 레트로 느낌을 주는 이 방은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성가입니다.
전시실 창가에 의자가 놓여 있고요, 창밖으로 북수동성당 경내가 보입니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입니다.
전시실마다 천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34년 소화강습회 당시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합니다. 지금은 낡고 오래됐지만요, 옛날에는 이 학교가 수원에서 이름난 학교였습니다. 가톨릭계에서 설립한 수원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였으니까요.
뽈리화랑 2층은 관리상의 문제로 출입금지입니다. 계단도 나무로 옛날 그대로인데요, 너무 낡아서 위험하므로 출입을 금지 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북수동성당은 주차장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수원시와 천주교 수원교구가 ‘왕의 골목 특화사업’ 협약으로 성당 부지 일부를 개방했습니다. 북수동성당은 왕의 골목 2코스 경유지죠. 낮에는 성당에 주차할 수 있습니다. 정문으로만 출입할 수 있고 후문은 닫혀 있습니다. 저녁 5시가 넘으면 성당 문을 닫으니 그 전에 차를 빼야 합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북수동성당 순교 성지에도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잔디는 누렇게 변했고요, 대형 십자가 앞에 기도하는 작은 책상이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 평일이었는데요, 순례객들이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수원화성 옆에 있는 북수동성당은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방문할 수 있습니다. 방문할 때 소화초등학교와 천주교 박해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뽈리화랑도 한번 둘러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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