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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좋아

을사늑약에 항거한 죽음, 민영환 선생 묘소

by 피앙새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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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충정공 민영환 선생을 아시나요? 충정공 민영환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학생 시절 한국사를 좋아하거나 잘하지는 못했지만요,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후 자결한 민영환 선생의 이야기는 아주 가슴 아프게 느껴져서 교과서에 실렸던 사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지난 3월에 서울 종로구에 갔다가 태화빌딩 앞에서 민영환 자결 터를 봤습니다. 이곳은 민영환의 자택이 있던 곳입니다. 칼로 자결했기 때문에 칼과 그의 주검을 형상화한 조각이 있습니다.

민영환 자결 터에는 한문으로 쓴 유서가 있는데요, 유서 내용을 보니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영환의 유언을 읽으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민영환 자결 터를 본 후 그의 무덤이 경기도 용인시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민영환 선생 묘소는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습니다. 묘소 입구에 작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묘소 입구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민영환 선생 생애와 그가 을사늑약에 죽음으로 항거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민영환 선생 묘소는 왕릉처럼 웅장합니다. 묘소에 올라가기 전에 신도비가 있습니다. 신도비에 민영환 선생이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보낸 유서를 새겨놓았습니다. 4면 가득 적혀진 그의 유서는 한자가 혼용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면에는 한글로 적혀 있습니다.

민영환 선생 묘 앞에 용인 독립운동유적 안내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기념물 제18호 표지석도 있습니다. 유적지 안내문을 읽어보니 민영환 선생 묘가 처음에 있었던 장소는 수지구 풍덕천동 토월마을이라고 합니다. 1942년 후손들이 구성초등학교 뒤편 산기슭의 마북 근린공원 바로 아래에 모시면서 부인과 합창하게 되었습니다.

민영환 선생의 묘소 우측에 있는 묘비는 1959년에 건립된 묘비입니다. 앞면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으며, 옆과 뒷면에는 추모하는 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묘소는 햇볕이 잘 들고 시원하고 전망이 좋은 자리였습니다.

무덤 뒤에서 보면, 봉분 앞에 석물(石物,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로는 상석(床石,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해 널찍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과 향로석(香爐石, 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등이 있습니다.

보통 왕릉에는 바깥쪽으로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있는데요, 여기도 비슷한 게 있습니다. 일반 묘소 ​뒤로 돌을 언덕처럼 쌓은 것을 사성(莎城)이라고 하는데요. 높은 둔덕을 쌓고 그 뒤에 담을 쌓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담장 위로는 병풍처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듯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묘소 위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앞으로 탁 트인 전경으로 용인 도심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선생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발전된 나라를 내려다보고 있을까요?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한 번쯤 묘소 위에서 탁 트인 풍경을 내려다보면 좋겠습니다.

민영환 선생이 을사늑약에 죽음으로 항거한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저 같으면 하지 못했을 거 같네요. 더 많은 일을 해내실 수도 있었을 터라 참으로 안타까운 인재의 죽음이지만, 그의 죽음은 국민의 항일 의식을 북돋웠으며 의병 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독립운동가 민영환 선생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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