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전설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3대 기타리스트들이 '놀러와'를 통해 25년만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김태원, 신대철, 김도균입니다. 지금 세대야 잘 모르겠지만요, 음악을 좋아하는 386세들에게 이들은 '기신'(기타의 신)으로 불렸습니다. 이 세 사람을 한 자리에 초대한 '놀러와' 제작진의 기획력이 대단했는데요, '쎄시봉' 특집과 비교할 때 1부로 끝난 게 좀 아쉽네요. 아이돌 음악에 치여 방송에 자주 못나오다가 예능에 처음 나왔다는 신대철의 카리스마는 아직도 여전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세 사람의 연주와 노래를 들려줬는데, 중간에 편집으로 짤리고 멘트까지 넣은 건 좀 아쉬웠습니다. 어렵게 3대 기타리스트들을 초대해놓고 그 멋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렸으니까요.

세 사람의 얘기를 다하고 싶지만요, 김태원 얘기가 짠하더군요. 그중 신대철 얘기를 들어보니까 김태원이 왜 '국민멘토' 소리를 듣게 됐는지 알겠더라구요. 김태원이 국민멘토가 된 이유는 뭘까요?

첫째, 연예인으로서 단맛, 쓴맛을 다 본 인생 선배다.
신대철은 김태원이 힘들었을 때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 동네에서 김태원이 무거운 기타 하드케이스(가방)를 들고 오는 걸 봤는데요, 그날은 무척 추웠는데 장갑도 끼지 않고 있었답니다. 그때 신대철이 본 김태원의 모습은 너무 어둡고 힘이 없어보였는데, 서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 받은 뒤 신대철이 김태원의 뒷모습을 보고 울컥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태원은 '부활'의 전성기가 지난 후 가장 힘들때 였다며, '나를 싫어하고 미워한 시기였다'며 그 아픈 기억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 햇습니다.


김태원은 그때의 어려움을 떠올리면서 '위탄'에서 멘티들에게 해줬던 말들은 힘들었을 때 겪은 시간속에서 나온 말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기가 아니라 죽고 싶을 만큼 고생하던 때의 얘기를 해주기 때문에 멘티 3명 중 2명을 1,2위에 올려놓은 겁니다.
멘티들에게 단순히 음악적인 경험과 지식만 전해주는 게 아니었죠. 즉, 연예인이기 전에 인생의 선배로서 단맛, 쓴맛을 다 경험한 말이 멘티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서면서 '국민멘토' 소릴 듣게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둘째,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고 그 장점을 배운다.
'놀러와' 방송 뒤 김태원의 중학교 졸업사진이 화제가 됐었죠.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큰 뿔테 안경을 쓴 모습은 촌티가 팍팍 나죠. 그런데 경쟁자였던 시나위 신대철은 원조 꽃미남이었습니다. 시나위 보컬이었던 김종서에 의하면 시나위팬 반 이상이 신대철 팬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김태원은 안그래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신대철을 보고 상대적으로 위축됐고, 자괴감마저 느꼈다고 고백하더군요. 비록 외모는 떨어졌지만요, 김태원은 신대철의 기타 실력에 대해 '뭔가 달라도 다르다'며 인정을 했습니다. 그 후 김태원은 신대철의 천재적 연주를 몰래 지켜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우치는 계기로 삼아 오늘의 김태원이 된 계기가 됐습니다. 20대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 록커의 자존심을 버리고 남의 장점을 배우는 김태원의 자세는 '위탄'에서 그의 멘티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경험담이 됐을 겁니다.


셋째, 한 우물을 계속 파야 물을 얻을 수 있다.
대중음악은 유행따라 변합니다. 80년대 전성기를 누리던 록은 시나위, 부활, 백두산 맴버들이 솔로로 전향하며 침체기를 겪습니다. 부활은
1985년 결성된 후 보컬 김종서가 나간 뒤 이승철을 영입해 '희야'로 대박을 터뜨리며 크게 성공했는데요, 김태원은 대마초 사건으로 나락으로 빠지게 됩니다. 당시 대마초 사건에 대해 김태원은 '무릎팍'에서 '부활의 성공에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이승철이 탈퇴하고 보컬 김재기, 박완규가 들어와서 부침을 거듭하다가 1997년 또 다시 힘든 시간을 맞게됩니다. 이때부터 약 4년간에 대해 김태원은 자기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암흑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얘기하더군요. 그래도 김태원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한 우물만 파왔습니다.

록음악이 다시 재조명을 받으며 록커리스트들이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있지만요, 김도균은 이태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울컥하며 눈물을 쏟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신대철은 '백두산이라는 그룹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동네 뒷산에서 연주를 하는 심경'이었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김태원도 그만큼 어렵고 힘들었지만 한 우물을 쭉 팠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봅니다.
김태원은 데뷔 후 이제야 인기를 실감하는 거에 대해 그동안 받지 못했던 인기를 한꺼번에 다 보상받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젊은 연예인들이 김태원의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에서 바람만 불어도 훅 날라갈 것 같은'국민할매' 소리를 들었는데요, 국민할매는 그의 껍데기만 보여준 것이라면 '위대한 탄생'에서 듣게된 '국민멘토'는 그의 진면모를 보여준 호칭입니다. 이는 유재석의 국민MC 못지 않게 아무나 붙일 수 없는 이름이죠. 요즘은 '남자의 자격'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국민합창단 지휘자 '할마에'로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는 27년간 '부활'을 이끌어 오면서 많은 좌절도 했지만, 한 번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속된 말로 음악에 미쳤기 때문인데요, 그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김태원이 있었을까요? 김태원이 한우물을 파다가 예능에 나온 것은 록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수로서 음악을 살리기 위해 예능에 나온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는 '남격' 출연 초기에 예능을 팔아서 음악을 살리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말대로
지금 록음악이 다시 뜨고 있습니다. '놀러와'에서 전설의 기타리스트 3명이 초대된 것도 따지고 보면 김태원의 힘이었습니다. 김태원의 한 우물을 파는 음악적 열정과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등으로 '위탄'에서 그는 '국민멘토'로 등극하게 된 게 아닐까 싶네요.

Posted by 피앙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