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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리뷰

욕망의 불꽃 신은경, 미워할 수 없는 악녀

by 피앙새 201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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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드라마 '욕망의 불꽃'의 신은경을 두고 역사상 최고 악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서 보면 가장 불쌍한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가 악녀가 된 이유는 남부럽지 않게 보란듯이 잘 살기 위한 일념에서 시작되었잖아요. 왜 그럴까요? 태생적으로 가난한 부모밑에서 살다보니 부자에 대한 동경심이 가득했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언니 윤정숙(김희정)을 밀치고 재벌가 며느리 자리까지 올랐지만 막상 오르고 보니 그녀가 바라던 평안한 행복은 없었어요. 극중 윤나영은 마치 신기루를 보고 그것을 잡기 위해 매일 욕망을 불태우지만 그럴수록 욕망의 신기루는 멀리 달아나고 있어요.

윤나영이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죽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죠. 병원에서 죽을 힘을 다해 낳은 아이가 '죽었다'고 했을 때 나영은 안심했어요. 자칫하면 그 아이가 인생의 혹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 혹이 평생 그녀를 죄책감 속에서 살게 했어요. 언니 정숙이 아이가 죽었다고 했을 때 철썩같이 믿고 살았지만 한편으론 왠지 살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숙에게 죽은 아이에 대해 슬쩍 떠봤는데, 죽지 않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숙이 다시 바닷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하자 다시 안심을 하는 등 나영은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아이가 죽었다는 말에 울부짖었지만 악어의 눈물같았고, 다시 살았다는 말에는 행여 대서양 그룹 며느리 자리가 위태로울까 불안한 마음을 보였어요. 나영의 딸 백인기는 그녀의 삶에 큰 장애로 다가오고 있어요.


나영을 옥죄오는 또 하나의 공포가 바로 남편 김영민(조민기)의 정부 양인숙(엄수정)과 그녀의 남편 송진호(박찬환)이에요. 나영은 생모 양인숙이 미국에 살 때 아들 민재(유승호)를 자주 만나자, 자동차로 양인숙을 치어 죽였어요.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사고현장에서 바로 119에 실려간 인숙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어요. 그리고 인숙은 조용히 귀국해 커피숍을 하면서 여전히 아들 민재를 만나고 있어요. 그런데 인숙의 남편 송진호가 감옥에서 나와 한국을 다시 찾았어요. 송진호는 나영이 인숙을 자동차로 치여 죽게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영민에게 전하며 그를 겁박해 돈을 뜯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민재는 나영이 재벌가 며느리 자리를 유지하는 끈이죠. 이 끈이 자기 끈이 아니라 남의 끈이라는 것이 알려진다면 나영이 쌓아온 욕망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릴 수 있어요. 그래서 민재를 지키기 위해 병적으로 집착을 하고 있어요. 민재가 착하기 때문에 나영의 말을 고분 고분 듣고 있지만 백인기(서우)를 만나면서도 부터 나영의 눈을 벗어나려 하고 있어요. 백인기를 만나 절대 민재를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어느새 인기와 민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끌리고 있으니 나영에겐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백인기는 나영이 낳은 딸이고, 민재는 조민기가 낳은 아들이니 엄밀히 말하면 핏줄이 같은 남매는 아니에요. 사실 남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나 나영과 영민이 부부기 때문에 남매가 되는 거죠. 첫 회에서 윤나영이 인기를 향해 '절대 민재만은 안된다'며 울부짖을 때 백인기는 '아줌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으로 봐서 인기는 나영이 생모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재의 생모가 살아 돌아오고, 백인기의 생부 박덕성(이세창)이 다시 나타나는 등 극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듯 하지만, 모든 게 나영에게 귀결되고 있어요. 즉, 민재나 백인기 모두 나영의 인생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폭풍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서양 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형제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나영은 둘째 형님 남애리(성현아)의 속셈을 알아채고 그녀와 대항하고 있는데, 바로 남편과 민재를 대서양 그룹 회장 자리에 앉히기 위한 거죠. 남편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경영권 다툼을 바라보고 있지만 나영은 남애리에 대항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나 여자로서 나영이 가장 불쌍하게 느껴진 것은 여자로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거에요. 결혼 후 지금까지 각방을 쓰면서 매일 밤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외롭게 살아왔어요. 여자의 행복은 돈, 명예, 권력보다 남편의 사랑인데 가장 중요한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거죠. 8회에서 뒤늦게 나영에게 '다시 시작해보자'며 접근하는 남편 영민의 품에 안긴 것이 임신을 한 듯 한데, 이것이 나영에게는 또 다른 욕망의 끈으로 작용할 지 모릅니다. 지금 민재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지만 뱃속의 아이는 틀림없이 자기가 낳은 아이기 때문에 든든한 백이 될 수 있지요. 그런데 첫 아이를 낳을 때 다시는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상상임신, 혹은 유산이 될 수도 있겠지요.


윤나영은 지금 허상만을 쫓아온 결과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되지만 정작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나영은 죽은 아버지의 허상을 보며, 정신적으로 아주 피폐해져 있어요. 남편에게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온 세월을 얘기하자, 영민은 다시 시작해보자고 하지만 싸늘하게 남편의 제의를 뿌리칩니다. 남편의 품속에 기대어 살 수 있을만큼 나영은 지금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아니에요.

언니 정숙의 자리를 빼앗아 나영은 대서양그룹 며느리가 됐지만, 그 댓가는 너무 가혹합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최고의 악녀가 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없는 악녀가 되고 있어요. 그녀는 지금 현실 앞에 욕망의 불꽃만이 보이고 앞으로 닥쳐올 파멸의 불꽃은 보지 못하고 있지요. 시시각각으로 그녀의 목을 옥죄어 오는 파멸의 그림자가 앞으로 그녀를 더욱 불쌍하게 만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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