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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좋아

고려 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신 충렬서원

by 피앙새 2026.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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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원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입니다. 저는 여행을 할 때마다 그 지역에 서원(書院)이 있다면 꼭 보는 편이죠. 서원은 명현을 제사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워진 사설 교육기관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도 아주 오래된 충렬서원(忠烈書院)이 있습니다.

충렬서원은 고려 후기 충신이었던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중기(선조 9, 1576)에 만든 것입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 정몽주뿐만 아니라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충렬로로 들어서면 연립주택 뒤쪽에 홍살문이 있던 흔적이 보입니다. 홍살문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있었다면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돌 받침만 남아 있습니다. 홍살문은 왕릉이나 서원 앞에 액운을 쫓기 위해 세웁니다.

보통 서원은 관리상의 문제로 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충렬서원은 월~금요일 항상 개방합니다. 만약 문이 잠겨 있다면 왼쪽에 교육관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상시 근무하는 분이 계십니다. 이곳에 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면 개방합니다.

외삼문 오른쪽에 한문으로 進士金公學祖遺績不忘碑(진시금공학조유적불망비'松石鄭公德和公績碑(송석정공덕화공적비'라고 쓴 비석이 있습니다. 한문으로 불망(不忘), 공적(功積)이라고 적은 것으로 봐서 이 서원을 건립하는 데 공을 세원 분들을 기리는 공덕비로 보입니다.

충렬서원 안내도를 보니 일직선으로 건물이 3개가 있네요. 앞쪽에 강당이 있고요, 사당을 뒤쪽에 배치한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양식입니다. 여기서 전학후묘(前學後廟)는 앞쪽에 강학(講學) 구역이, 신실(神室) 구역은 뒤쪽에 배치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외삼문 앞에 충렬서원 안내 팸플릿이 놓여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와 충렬서원의 관계 등을 자세히 적혀 있어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외삼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건물이 강당입니다. 서당처럼 공부하는 곳이죠. 전면 4, 측면 2, 전체 8칸으로 지어졌습니다. 건물에 한문으로 강당(講堂)이라고 쓴 현판이 보입니다.

강당 뒤에 있는 내삼문은 닫혀 있습니다. 내삼문 안에 사우(祠宇)가 있는데요, 관리상의 문제로 문은 잠겨 있습니다. 하지만 담장이 낮아서 안을 볼 수 있습니다.

충렬서원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충렬로 9-19

사우는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신 곳입니다. 이곳에 정몽주 위패가 모셔져 있죠. 전면 3, 측면 2칸 등 전체 6칸 사우에는 정몽주를 주벽으로 좌우에 정보와 이시직 위패가 배향되어 있다고 합니다.

충렬서원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기도 용인을 대표하는 서원이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다른 서원에는 필수로 있는 재실, 장서각 등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육 목적이 아니라 제사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충렬서원은 처음에 정몽주와 조광조 묘소 중간 지역인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세웠습니다. 서원 이름도 죽전서원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서원 건물이 불타서 선조 38(1605)에 이정구가 경기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현감 정종선·이시윤 등과 함께 논의하여 정몽주 묘소 아래에 중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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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8(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11년에 유림에서 사우를 중건하였고, 1956년에 강당을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서원 전체를 보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안내 팸플릿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충렬서원 좌측에 한옥이 한 채 있는데 교육관입니다. 제가 갔던 날 이곳에서 한문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교육관 옆에 포은 정몽주 동상이 있습니다. 충렬서원에서 멀지 않은 정몽주 묘소 입구에도 동상이 있는데,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충렬서원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호입니다. 외삼문 우측에 표석이 있고요, 강당 기둥에도 경기도 지방문화재 지정서가 붙어 있습니다. 지정서를 보니 1973711일 지정되었네요.

사우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보니 모현면이 한눈에 보입니다. 충렬서원이 있는 마을 이름이 왜 모현면(慕賢面)인지 아시나요? 충신(정몽주)을 사모한다고 해서 '모현면'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모현면의 한자 모()가 사모할 모죠. 모현면이 포은 정몽주와 관계가 있는 마을이라는 것을 모현면에 사는 사람들은 알까요?

충렬서원과 아주 가까운 곳에 정몽주 묘소가 있습니다. 묘소까지 1km도 안 됩니다. 정몽주는 1392년 선죽교에서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충렬서원 들를 때 정몽주 묘도 들러보세요.

정몽주는 경기도 용인 명당 터에 부인 경주 이씨와 함께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내가 정몽주였다면, 끝까지 고려를 위해 충절을 지켰을까요? 여러분도 이런 고민을 하면서 정몽주 위패가 모셔진 충렬서원과 묘소를 방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정몽주를 모신 충렬서원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용인 충렬서원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충렬로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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