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했던 정성 가득한 잔치, ‘혜경궁홍씨의 봉수당 진찬연’입니다. 왕실의 권위와 효심이 어우러진 당시의 수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수원전통문화관으로 가서 그 생생한 현장을 직접 구경하고 왔습니다.

수원전통문화관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고즈넉한 한옥 건물이 늘어선 이곳은 전통 식생활 체험관과 예절 교육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이 우리의 맛과 멋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으로, 장안문 인근에 있어 접근성 또한 뛰어납니다.

<혜경궁홍씨 봉수당 진찬연>은 전통식생활체험관 상설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상설전시실은 1795년 을묘원 행사 당시 혜경궁홍씨의 봉수당 진찬연의 반과상을 재현한 공간으로 2026년 12월 31일까지 전시가 계속됩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려한 색감의 ‘전통 궁중 떡’입니다. 잔치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떡은 그 종류와 모양이 매우 다양합니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만들어서 입보다 눈이 먼저 호강하는 음식입니다.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부터 붉은 꽃잎 모양의 화전, 정교한 문양이 찍힌 다식까지 전시된 모형들은 금방이라도 달콤한 향기가 전해질 듯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잔치가 얼마나 성대하고 정성스럽게 준비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전시실 왼쪽에 8일간의 기록, 정조의 화성 행차 등이 안내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1795년(을묘년), 정조는 어머니의 회갑과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인 현륭원 참배를 위해 대규모 행차를 단행합니다. ‘원행정례의궤도’에 따르면 이 행차는 무려 8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백성들과 소통하고 왕실의 효심을 널리 알리는 축제의 장이었죠. 전시된 판넬을 통해 당시의 웅장했던 행렬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정조의 정치적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진찬연’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기서 ‘진찬연’이란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올리는 잔치를 말합니다. 정조는 화성행궁의 봉수당에서 어머니를 위한 회갑 잔치를 이례적으로 성대하게 거행했습니다. 2년이라는 긴 준비 기간을 거쳐 체계적으로 기획된 이 잔치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화려하고 감동적인 회갑연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봉수당 진찬도’는 당시 잔치의 풍경을 사진처럼 상세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혜경궁홍씨와 내외명부들이 자리한 봉수당의 모습, 정조가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는 장면, 그리고 마당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춤과 음악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의 복식과 궁중 의례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음식 문화의 정수, 궁중 음식을 보겠습니다.

궁중 음식은 전국 각지에서 진상된 최고의 식재료를 바탕으로 숙련된 조리사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우리 식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정치는 물론 문화와 경제가 집중되었던 궁중의 음식은 그 형식과 품질에서 당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합니다. 전시된 다양한 요리들은 우리 음식이 가진 심미성과 영양학적 우수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다소반상’입니다. 밥상 위에 차려진 메뉴를 보니 생치탕(꿩고기탕), 면, 생복회(전복회)를 비롯해 신선로인 ‘열구자탕’까지 포함된 실로 화려한 구성입니다. 각종 떡(각색 병), 정과, 다식 등을 높게 쌓아 올린 ‘고임’은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조의 효심은 자기 부모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화성 행차 기간 중인 윤 2월 14일, 정조는 화성 지역의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바로 ‘양로연’입니다. 양로연 상에는 흑태증(검은콩찜), 두포탕, 편육, 그리고 배와 곶감, 밤 등이 포함된 실과가 차려졌습니다. 소박하지만 영양가 높은 검은콩과 부드러운 편육 등 노인들의 건강을 배려한 메뉴 구성은 정조가 백성을 어버이처럼 섬겼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혜경궁홍씨가 받았던 ‘아침 수라상’입니다. 흰 쌀밥과 탕을 기본으로 각종 찜, 조림, 구이, 전유화 등 13기(29품)에 달하는 산해진미가 놋그릇과 자기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있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정조가 세심하게 신경 썼을 메뉴 구성에서 왕의 지극한 효심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기록과 모형뿐만 아니라 전시장 한편에는 당시 회갑연의 화려한 무용과 의례를 생생하게 재현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고 꽃을 든 채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우아한 춤은 230년 전 잔치 현장에 와 있는 듯합니다. 정적인 전시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이 영상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멈추게 합니다.

전시실 가장 안쪽에 관람객이 직접 왕실의 상차림을 재현해 볼 수 있는 ‘상차림 체험존’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체험 내용은 '내가 차리는 왕실 수라상'이라는 주제로, 준비된 음식 판을 활용해 비어있는 자리를 직접 채워볼 수 있습니다.

혜경궁홍씨의 아침 수라(조수라)부터 주다소반과(다과상), 정조대왕 양로연 상까지 총 세 가지 종류의 상차림을 아이들이 직접 구성해 보며 당시 궁중 식문화의 구성을 흥미롭게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할 만한 체험입니다.

수원전통문화관 자체에는 별도의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실 때 바로 옆 ‘장안동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합니다. 주차요금은 최초 60분 무료, 이후 10분당 500원. 1일 주차요금 1만 원입니다.
※ 주말에는 이용객이 많아 공영주차장 이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장안동 공영주차장 만차 시 화홍문 공영주차장, 수원화성박물관 주차장 이용

‘혜경궁홍씨의 봉수당 진찬연’ 전시는 우리 음식 문화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효(孝)’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화려한 궁중의 맛과 멋이 살아 숨 쉬는 이곳에서, 올봄 가족들과 함께 조선 시대로의 특별한 미식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혜경궁홍씨의 진찬연 모형은 화성행궁 봉수당 옆에도 있습니다. 화성행궁이나 수원전통문화관에서 진찬연을 보신다면,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차려냈던 그 따뜻한 밥상처럼, 관람객 여러분의 마음에도 훈훈한 감동이 전달될 것입니다.
☞ 수원전통문화관 봉수당 진찬연 전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93
전시 기간 : 2024-12-24(화)~2026-12-31(목)
운영 시간 : 화~토요일 09:00~18:00
(점심시간 12:00~13:00 미운영)
전시회 참고 자료 : https://vo.la/nevAwbO
☞ 장안동 공영주차장(24시간 개방)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51
최초 60분 무료, 이후 10분당 500원. 1일 주차요금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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