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는 계절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으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천주교 성지나 사찰에 들어서면 왠지 모를 평온함이 우리를 감싸곤 하죠? 오늘은 수원의 역사와 신앙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북수동 성당(수원 성지)'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함께 가보실까요.

북수동 성당은 수원의 중심부인 화성행궁 인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당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이곳은 단순히 성당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당시 신자들이 고초를 겪었던 '옛 포도청' 부지에 세워진 의미 깊은 성지입니다. 200년 전의 아픈 역사와 현대의 평화가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죠.

성당 정문으로 들어서면 방문객들을 위한 '순례자의 집'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야외 데크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성당 마당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죠. 방문객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순례의 집 옆에 카페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쉼터도 있습니다. 창가 바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성지 마당을 조망하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저도 이곳에서 잠시 추위를 녹였습니다.

정조대왕 사후,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인이 심문당하고 순교했다는 기록이 역사서에 있죠. 지금은 평화로운 이곳이 사실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뜨거운 현장이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순교자 현양비가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외관의 대성당입니다. 붉은 벽돌과 둥근 아치형 지붕이 인상적인데, 성당 위를 유심히 보세요. 칼을 들고 악을 물리치는 '미카엘 대천사' 상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미카엘 대천사 상 아래에는 조선시대 화성행궁 주변의 고지도가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대성당 내부는 그야말로 경건함 그 자체입니다. 높은 천장과 양옆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나무 의자 위에 내려앉아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미사포를 쓰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그 뒷모습만으로도 숭고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대성당 앞에 구멍이 뚫린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는데, 무슨 돌인지 아시나요? 바로 ‘돌 형구’입니다. 천주교 박해 시절 신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데 사용되었던 잔인한 도구였는데요, 이 돌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무거운 돌이 전하는 침묵의 메시지가 신앙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교육관 앞 넓은 잔디밭에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십자가와 그 아래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을 품에 안고 슬퍼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피에타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위로받는 듯한 뭉클함을 줍니다.

잔디광장 주변으로는 묵주기도의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둥근 돌들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기도를 바치는 길이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음속 엉킨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지 내부에는 현대적인 교육관 건물(4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순례객과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요. 1층에는 식사와 주방 시설,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내부는 넓은 창과 함께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는 깔끔한 식당 겸 회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네요.

2층~3층은 '순교자 박선진', '순교자 심원경' 등 순교자들의 이름을 딴 방들이 있어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4층은 대규모 행사가 가능한 강당이 있습니다.

교육관 외벽을 따라서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돌 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고난의 길 끝에 희망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당 마당 안쪽에 석조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등록문화재 제697호로 지정된 '수원 구 소화초등학교' 건물입니다. 1954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거친 질감의 석재 외벽이 세월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진 찍기에도 정말 좋은 명소입니다.

안내판을 보니 소화초등학교를 세운 분은 북수동 본당 4대 주임이었던 심데시레라또(Desideratus Polly, 한국명 심응영) 신부님입니다. '애주애인(愛主愛人)'을 교훈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교육의 장을 열어주셨던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 이 건물의 돌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듯합니다.


옛 소화초등학교 건물은 '뽈리화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2층 상설전시실에는 성화와 성물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판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나무 계단을 밟을 때 나는 '삐걱' 소리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소리처럼 들린답니다.


전시실은 총 3개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성물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 소개하진 못하고 하나만 소개할게요. 박해 시대 ‘우차’인데요, 설명을 보니 끔찍합니다. 이 우차는 정조대왕 사후 시작된 박해 당시, 수원화성 안팎에서 처형당한 순교자들의 시신을 가까운 야산에 매장하기 위해 실어 나르던 수레입니다. 시신을 마치 거적 쌓듯이 올려 옮겼다는 설명이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상설전시실에는 고풍스러운 창문을 따라 작은 창가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성지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은,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잠시 '쉼'을 얻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가끔 일상이 너무 소란스럽게 느껴질 때, 저는 성지를 찾곤 합니다. 물론 봉녕사 등 사찰도 자주 찾습니다. 어디를 가든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성지나 사찰 특유의 정적 속에 머물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수원의 심장부인 화성행궁 근처에 이런 평화로운 공간이 있다는 건 우리 시민들에게 참 큰 선물인 것 같습니다.

북수동성당 내부 마당에는 방문객과 순례자들을 위한 전용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바닥이 깔끔하게 포장된 야외 주차장으로, 여러 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구획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휴일 종교 행사가 있을 때 만차일 경우에는 인근의 화성행궁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수원 화성을 방문하신다면 인근에 있는 북수동성당을 꼭 한 번 들러보세요. 해 질 녘에 방문하면 노을과 성당 건물이 어우러져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이 공간이 주는 고요함만으로도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 천주교 수원성지(북수동 성당)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
미사 시간
월요일 09:30, 화~금요일 11:00
토요일 11:00, 19:30, 일요일 17:00
수원화성순교성지 북수동성당
천주교수원교구 수원화성순교성지 북수동성당 홈페이지
suwons.net
문의 : 031)246-8844
※ 성당 안에 무료 주차장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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