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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가정보

비운의 한 품고 살았던 환향녀, 입양아, 정신대

by 피앙새 2008.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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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전설의 고향> 마지막편은 비운의 역사를 안고 살아 갔던 '환향녀(還鄕女)'편이 방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끝난 KBS <인간극장>에서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명희(미국명 캘리)씨 이야기가 5부작으로 방영되었습니다. 방송에 나왔던 환향녀와 입양아 외에도 우리의 아픈 역사에는 정신대도 있습니다. 환향녀와 정신대, 입양아! 언뜻 생각해 보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단지 시대가 다를뿐 조국을 떠나 낯선 타국 땅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달래며 비극적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다시 돌아온 환향녀들, 조롱과 멸시로 목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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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향녀는 1627년(인조 5)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조공으로 강제로 끌려갔던 여인들입니다. 주로 북쪽지방에 사는 여인들의 피해가 컸다고 하는데, 벼슬아치나 양반의 처자까지도 끌려 갔습니다. 그러나 끌려간 여자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때 조선사회는 냉정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화냥년'(비하해서 부르는 말)으로 불렀습니다. 이런 멸시와 조롱을 못이겨 목을 메고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무려 2만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전설의 고향> 마지막편 '환향녀'에서도  청나라에 끌려 갔던 양반댁 며느리(이진 분)가 결국 자결을 하고 맙니다. 또 그렇게 수많은 환향녀가 죽었습니다. 강제로 끌려가 모진 성적 고통을 받으며 죽지 못해 살아온 그녀들에게 체면을 중시했던 조선사회는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가난때문에 37년만에 헤어졌다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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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역사의 아픔 입양아가 있습니다. 다섯살 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입양 간 딸이 두 아이를 둔 중년 여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37년전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산을 탕진하고 몸져 누운 남편, 그리고 올망졸망한 다섯 아이를 홀로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막내딸 명희를 입양 보내기로 마음 먹습니다. 어제 <인간극장> 마지막 5부작에서 명희씨는 37년간 떨어져 지냈던 어머니와 가족들을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 주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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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해외입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입양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국내입양이 외국으로 보내는 입양보다 많아지고 있습니다. 입양아는 6.25 한국전쟁후 먹고 살기 힘들어 눈물을 머금고 자식을 외국에 보낸 우리 근대사의 또 다른 비극이자 아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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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부터 국내입양률이 해외입양률을 처음으로 앞질렀습니다. 자료 출처 : 보건복지부)
 
아직도 비극적 아픔이 가시지 않은 정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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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위안소'로 끌려가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며 살았던 여성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이들을 정신대라고 불러왔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그 역사적 아픔을 증언해 줄 분들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들 역시 강제로 끌려갔지만 다시 국내에 돌아왔을 때 따뜻한 환대를 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꺼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정신대문제도 아직 완전히 해결이 되지 않았고 그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았건만, 일본은 4년 동안 계속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규정하며 다시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환향녀, 정신대, 입양아! 우리가 힘이 없을때 타의에 의해 비극적인 한을 품고 살았던 가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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