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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딸의 공부수첩을 보니 눈물이 쏟아지다

by 피앙새 201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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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철과 졸업 시즌이 끝나가고 이제 입학시즌이네요. 2년전 큰 딸의 대학 입시때와는 달리 지난해 둘째딸의 대학 입시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딸은 수시로 대학에 합격해 겨울방학 기간을 편하게 보냈는데, 둘째는 수시에 실패한 후 정시로 원서를 넣어 2월까지 마음 졸이며 지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대학에 합격한 후 딸은 '수능 시험 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93일이 고3 전체 기간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모의 마음은 딸의 심정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딸은 어제 지방 교대에 합격에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딸이 떠난 후 방을 정리하다가 지옥같다는 고3 기간을 보내며 적은 딸의 공부수첩을 발견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수첩에는 딸의 눈물과 땀, 그리고 마음 고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고3 입시생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1월부터 수능이 끝나던 11월까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적어나간 공부수첩은 딸의 분신과도 같았습니다.

딸의 공부수첩은 2009년 1월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겨울방학에는 부족한 언어, 수학, 영어 과목에 대한 공부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앞으로 닥칠 고3 수험생으로서의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3월이 되면서 딸은 일반대가 아닌 교대로 목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교대! 갈꺼야 꼭'이라며 의지를 다지는 글도 보입니다. 3월 모의고사에서 언수외 등급이 올 2등급이 나왔는데, '분발하자!'는 글도 보입니다. 고3 수험생의 3월은 어느 대학도 갈 수 있는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4월이 되면서 딸은 조급했는지 공부수첩이 더욱 빼곡합니다. 그런데 공부수첩을 보다가 '엄마를 생각하자'는 글을 보고 눈시울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생각해보니 매일 밤 12시가 넘을 때까지 학원으로 딸을 태우러 가는 엄마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새벽 1시까지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엄마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딸은 엄마를 생각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5월은 딸이 수학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마음 고생이 많았던 달이었습니다. 언어적 능력에 비해 수리적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딸은 학원공부와 인터넷 강의로 부족한 수학과목을 보충하고 있었습니다.


7월은 수험생이 가장 힘들어 하는 달입니다. 휴가철이라고 산과 바다로 여행을 떠날 때 딸은 방학도 없이 매일 학교 도서실을 갔습니다. 더위와 입시에 대한 중압감으로 7,8월이 입시생들에겐 지옥의 달이라고 합니다. 7,8월을 잘 견디면 9월부터 공부에 가속도가 붙어 11월 수능때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갈 수 있는데, 공부를 조금 게을리하면 리듬이 깨져 수능때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2년전 먼저 입시를 경험한 큰 딸이 작은 딸에게 틈만 나면 엄마 대신 잔소리를 해줘서 그런지 7월 달력에 '이제 정신 차려야 할 때'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7월에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공부를 했는데, 더위 때문인가요? 계획에 비해 못한 것도 많네요. 빨간펜으로 줄이 그어지지 않은 것이 많이 보입니다.

수험생에게 수능 D-100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해는 8월 4일이 수능 D-100일이었습니다. 큰 딸이 고생하는 동생을 위해 조그마한 케익을 사와서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조촐한 수능대박 기원행사를 가졌습니다. 딸은 실감이 가지 않는 듯 좋아하는 케익 한 조각을 간신히 먹고 자기방으로 들어가는데, 왜 그리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지요? 부모 심정으로는 그 어깨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 안타깝기만 했던 8월이었습니다. 딸의 입시 뒷바라지 때문에 지난해 여름휴가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가까운 계곡에 가서 발 한번 담그지 못하고 그 해 여름을 훌쩍 보냈습니다.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10월입니다. 딸의 공부수첩에 'Only 교대'라고 써놓은 것을 보니 아직 교대에 대한 목표가 확고합니다. 그리고 10월은 수능 전에 마지막 모의고사를 보는데, 3월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제 남은 한 달 동안 사탐과목도 해야하니 1분 1초가 귀한 시간입니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수능때문인지 '교대생
○ 홧팅!' 이라고 써놓은 뒤 '헐... 떨려'라고 써 있습니다. 딸도 이렇게 떨리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이제 딸의 긴장감도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드디어 수능시험이 있는 11월입니다. 딸의 공부수첩을 보니 11월 12일에 '승리하는 날'이라고 써 있네요. 그리고 '
○교대 10학번 이●'이라고 써 있습니다. 3월부터 교대를 목표로 초지일관 해왔는데, 11월까지 그 목표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월부터 써온 공부수첩을 어쩜 그리도 한결같이 꼼꼼하게 정리를 해왔는지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딸은 고3 수험생으로 하루 하루를 전쟁처럼 보냈던 것입니다. 옆에서 뒷바라지 하는 고3 학부모가 힘들다, 힘들다 해도 어찌  수험생 딸만 하겠습니까? 2009년 딸의 공부수첩에는 딸의 19년 인생 전체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수능 다음날인 2009년 11월 12일에는 '수고했습니다'라는 말이 써 있습니다. 이 말처럼 딸은 지난해 1년을 어디 수고 뿐이겠습니까? 그 악몽같은 1년을 보낸 후 딸은 목표대로 교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어릴적부터 선생님에 대한 꿈을 갖고 있던 두 딸들은 모두 교대에 입학해 참스승의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길 또한 만만치 않은 길입니다. 그리고 교대에 입학한 것 자체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시작인지 모릅니다. 딸은 어제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4년간 '도를 닦는 기분으로 살께'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원서를 넣어놓고 마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딸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부모 품에 안겨 푸드득 푸드득 날개짓을 연습하다가 이제는 홀로 날개짓을 하겠다며 떠난 딸의 빈 방을 보니 갑자기 밀려드는 허전함에 어제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래도 '품안의 자식'이라고 눈에 보여야 안심이 되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 가슴에 멍이 드는 기분입니다. 잘 하겠다고 기숙사로 떠난 딸이 보고 싶을 때마다 딸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부수첩을 보며 마음을 달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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