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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철이 든 대학생 딸의 문자를 받아보니

by 피앙새 201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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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 사는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올해 지방 교대에 들어간 둘째 딸 얘기입니다. 딸에 대한 얘기는 한 번 했었는데, 이번에는 기숙사 얘기입니다. 딸은 19년 동안 한번도 부모 품을 떠나지 않다가 지난 2월말에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작년에 고3 수험생 기간 뿐만 아니라 집에서 지낼 때 딸이 가장 불평이 많았던 것이 '반찬' 투정입니다. 그래도 정성을 다해 준비해 준 음식에 딸은 '맛이 없다'며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부하느라 입맛이 깔깔해서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를 보고 알게 모르게 요리공부도 많이 했는데, 천성적으로  제가 요리에는 잼병인가 봅니다. 그래도 정성 하나만큼은 최고인데, 왜 딸은 그리도 맛이 없다고 했을까요?

그런데 딸은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엄마에게 반찬 투정할 때가 행복했다고 합니다. 기숙사 밥이란 게 아무리 맛있게 한다고 해도 집에서 먹는 밥과 어디 같나요? 3월 한달을 보낸 후 4월 초에 집에 온 딸을 위해 딸이 좋아하는 동그랑땡, 감자탕, 계란말이, 잡채 등을 준비했습니다. 딸은 동그랑땡만 해도 명절 때 외할머니집에 가서 먹는 것은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은데, 엄마가 만든 것은 모양도 안 이쁘고 맛도 별로 없다고 늘 투정이었는데, 한 달 만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기숙사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해준 반찬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주 엄마 반찬이 먹고 싶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엄마 입맛에 길들여진 것일까요?


딸의 문자를 받고 기숙사에서 밥을 먹을 때 밑반찬이라도 해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김, 장조림, 멸치볶음, 콩장, 계란말이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얘기를 들어보니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이 모두 집에서 보내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기숙사 밥 값이 워낙 싸기 때문에(1끼 3,000원) 그 가격으로 요즘 아이들 입맛을 맞추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은 엄마가 해준 밑반찬을 들고 기숙사로 갔지만 밥 먹을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딸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밑반찬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서 어제 아침 일찍 당일 택배로 보냈습니다. 딸이 서울에 오면 밑반찬을 가져갈 수 있는데, 신입생이라 모임도 많고 레포트 등 해야할 일도 많아 주말마다 서울에 오기기 쉽지 않아서 입니다. 딸은 엄마가 해준 밑반찬을 저녁 무렵에 받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문자에는 엄마의 정성에 고마워하고 철이 부쩍 든 딸의 마음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게 반찬 투정을 하더니 엄마가 해준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니요. 퇴근 길 지하철에서 문자를 보는데,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딸은 이제야 엄마가 해준 반찬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나 봅니다.


아들이 있는 집은 대학생때 보통 군대에 보내는데, 글쓴이는 딸만 둘인데 둘째 딸을 지방교대에 보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군대 보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잠을 잘 때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하는데, 제가 요즘 그렇습니다. 기숙사 밥이라도 배가 고프면 '시장이 반찬'이기 때문에 잘 먹었으면 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어디 그런가요? 기숙사 내에서 햇반이나 컵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으로 떼우는 경우도 많아 건강도 염려가 됩니다.


딸을 키우면서 다른 집처럼 군대 안보내 생이별은 하지 않겠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가족과 떨어져 씩씩하게(?) 잘 보내는 것이 기특하기만 합니다.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잠자고 생활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먹는 것은 그리 만족하지 않는 듯 합니다. 아직은 기숙사 밥보다 엄마가 해준 반찬에 더 익숙한데, 시간이 지나면 기숙사 밥도 적응이 되겠죠? 아직 혼자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혼자 푸드득 푸드득 날개짓을 하는 것을 보면 여간 대견한게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딸에게 보내는 밑반찬을 만들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락을 싸는 마음으로 준비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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