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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연변에서 온 가사도우미 할머니 만나보니

by 피앙새 200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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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신도시의 중앙공원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따뜻한 봄을 맞아 할머니들이 중앙공원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봄볕을 즐기며 정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들이 중국 동포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3세 미만의 아이들을 돌보거나 환자 간병인을 하면서 가사일까지 하느라 주인집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합니다.

맞벌이부부가 많은 신도시 젊은 부부들은 요즘 친정이나 시댁 부모들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연변 등 중국동포 할머니들에게 맡깁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북한 사투리 비슷한 말투를 쓰거나 친할머니보다 중국할머니를 더 따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연변 등지에서 온 육아(가사)도우미 할머니 세 분을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분들의 이름은 신분 보호상 가명을 쓰겠습니다.


김미자 할머니(58세, 연변)
제가 만난 할머니중 가장 나이가 젊습니다. 3살 정도된 남자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지 7년되었으며, 3년만 더 하고 중국으로 들어가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예분 할머니( 65세, 흑룡강성)
나이가 지긋하신 분인데, 나이보다 젊어 보입니다. 이분은 70세 되어보이는 할머니를 간병하고 있습니다. 한국 생활은 2년이 되었고, 신도시 환자도우미로 일한지 5개월째입니다.

김말려 할머니(62세, 연변)
19개월된 남자 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손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계속 울어댔습니다. 한국에 온지 4년되었고, 남편은 인천에서 살며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 어떻게 이곳 신도시까지 와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게 되셨나요?
김미자할머니 : 연변에서 처음 오면서 인천의 한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왔지요. 그런데 여기서 일하는 대부분의 도우미아줌마들은 서로 서로 소개로 온 경우가 많습니다. 도우미로 일할 집에서도 소개로 오는 연변 아줌마들은 믿음이 간다며 좋아합니다.

Q : 하루종일 환자와 지내면서 가사일까지 하려면 힘들겠어요?
김예분할머니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휴일에는 찜질방가서 지냅니다. 주인집에서 아무리 잘해줘도 눈치를 봐야 하는 '바늘 방석' 생활입니다. 휴일에 연변 아주머니와 할머니들끼리 찜질방에서 만나 피로를 풀 때가 가장 좋습니다. 방값을 아끼기 위해 방을 따로 얻지 않고 휴일에 찜질방을가서 잡니다. 물론 인천 등지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갑니다.

Q : 보살피는 아이가 너무 울어서 힘드시겠어요?
김말려할머니 : 네, 울기도 많이 울지만 아직 말을 못합니다. 말을 시켜도 입을 떼지 않네요. 주인집에서 북한 사투리 배운다고 한국말을 사용하라고 하는데, 제가 말을 잘 안해서 그런가 말 배우기가 더딥니다. 지금 나이면 옹알이 하면서 한창 말을 배울 때인데, 이 아이는 좀 느린 편입니다.

Q :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김미자할머니 :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하며 가사일 하는게 힘들죠. 그래도 가끔 이렇게 공원에 나와 동포들끼리 이야기할 때가 그나마 유일한 낙이지요. 여기 사람들은 중국 동포 사람들이라고 차별하지는 않지만 가까이하기 힘들죠. 그래서 연변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거에요. 여기는 모르겠어요. 겉으로는 차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식당, 공장에서는 차별이 심하다고 합니다.

Q : 여기 올 때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김말려할머니 : 아니요. 인천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왔는데, 제가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까 연변에서 같이 온 사람들이 자리가 나면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데 아직 없네요. 연변에서 다음주에 또 두 사람이 오는데, 일할 집이 없어 걱정입니다.

Q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달에 받는 보수는 얼마나 되는지요?
김예분할머니 : 첫 달에 130만원 받았아요. 매 6개월째마다 10만원씩 올려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5개월째라 다음달부터 10만원이 올라 140만원 받네요. 이중 입국시 소개 브로커에게 주는 돈을 떼고 나머지는 다 중국 가족들에게 송금해요. 일하는 곳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생활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습니다. 식당 등에서 일하는 동포들은 쪽방 등에서 자기 때문에 힘들죠.

Q : 이곳에서 일하는 가사(육아)도우미들은 대부분 나이가 60이 넘은 것 같은데요?
김예분할머니 : 예, 보통 젊은 경우는 55세에서 65세까지 있습니다. 40대 연변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식당이나 노래방 등에 가서 일하고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은 직업소개소나 알음알음으로 이곳으로 옵니다. 일하고 싶은 연변 아주머니들은 많으니 혹시 도우미아주머니가 필요하면 소개해주세요.

Q : 한국에 혹시 같이 온 사람이 있나요?
김말려할머니 : 네, 남편과 같이 왔어요. 남편은 인천에서 살며 공사장에서 일해요. 토요일 저녁에 가서 일요일 밤에 오는 주말부부에요. 빨리 돈을 모아 중국으로 가야죠.

일명 '연변 아줌마'로 통하는 중국 동포 여성들은 불법체류자거나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식당, 모텔, 목욕탕 등에서 설겆이나 서빙 등 힘든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3D업종 근무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동포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중국 동포 여성들은 조금 고생하고 참으면 다시 돌아가서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중국 동포 여성들의 가사 및 육아도우미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도 많습니다. 한국과의 문화차이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청결하지 못하고, 청소 등 가사를 대충 대충 해서 집주인과 마찰 끝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특히 중국 연변족 동포들은 겉으로만 친절한척 하고 속은 이기적이고 돈만 밝힌다는 선입견 때문에 가사도우미로 취직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싹싹하고 부지런한 동포 여성들이 많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동포 여성들은 저임금과 불법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차별대우를 받으며 오늘도 식당, 노래방, 가정집 등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역만리 동포의 땅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사는 중국 동포 여성들에게 따뜻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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