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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난곡만큼 성남도 달동네였습니다.

by 피앙새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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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과 더불어 달동네의 상징이었던 경기도 성남!
서울 무허가 판잣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산등성이 여기 저기에 집을 짓고 물을 길어다 먹으며 고단한 삶의 끈을 이어 오던 곳이 바로 35여전의 성남이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서울시에서 무허가 건물 정비에 따라 성남에 철거민 주택단지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판자촌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울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다 성남으로 온 철거민수만 해도 약 12만명에 달했습니다.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살기 시작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서울 위성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1973년 시(市)로 승격되었고 1991년에는 당시 노태우대통령이 주택보급과 집값 안정을 목표로 분당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강남을 대체할 만한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습니다. 현재는 37만여세대, 95만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 도시로 변했지만 아직 분당신도시와 구도시(수정구, 중원구)간 빈부 격차가 심해 균형발전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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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구도시인 수정구 중원구를 합친 인원이 분당보다 많지만 자가용은 분당이 더 많다. 자료 : 성남시청)

30여전 달동네의 모습을 보니 낡은 흙백사진의 추억과 함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남시 가을축제 현장에 전시된 35년전 성남 사진전입니다. 사진을 보니 난곡만큼 달동네였던 성남의 어제가 마치 영화속 필름처럼 낡고 오래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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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 재래시장의 옛날 모습인데, 장을 보러 아이를 업고 온 아줌마들이 모습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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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종합시장 앞인데,사진속에 보이는 이 하천은 다 복개되어 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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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초 신흥동 주변 모습. 산등성이에 다닥 다닥 집을 지어 놓은 모습이 달동네의 상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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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시청 기공식모습. 관용 검은 짚차가 인상적이며 에덴의 동쪽에 보면 신태환이 타고 다니던 차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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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말 은행동 주변 모습. 마치 난민촌 같은 모습이다. 이 산들위에 지금은 주공아파트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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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단대천 하상 정비 모습인데, 포크레인 등 장비보다 인력에 의존해서 공사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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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대동 법원 주변의 모습인데, 산 아래 벽돌로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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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 태평동 주변 수로 정비 장면인데 가마니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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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동 모란시장 주변. 4일 9일날이면 이곳에 그 유명한 모란장이 지금도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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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성호시장 주변. 드라마나 영화속에 나오는 저자거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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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동 성남시청 기공식. 옛날에는 기공식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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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초 수정구청 주변인데, 길 옆에 가재도구가 고단한 살림살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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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진리 고갯길인데 송파에서 성남쪽 경원대로 가는 길. 지금은 10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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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보건소 주변인데, 마을별 체육대회나 구민행사 모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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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대오거리 주변의 공단지역. 옛날에는 언니, 오빠들이 학교보다 공장에 더 많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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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대천 복구작업후 발전된 성남의 모습. 불과 30여년전 일인데, 이렇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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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신도시 건설과 지하철 분당선 개통으로 성남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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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신도시는 강남을 대체할 주거지역으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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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열병합발전소쪽에서 바라본 분당의 야경. 35년전 사진과 비교해보니 감회가 새롭다.

난곡만큼 달동네였던 성남의 어제와 오늘을 사진으로 보니 고단하고 힘들었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이 마치 오래된 필름을 파노라마식으로 보는 듯 합니다. 아직 구시가지와의 빈부격차 문제가 있지만, 구시가지 재개발이 이루어지면 달동네의 모습과 가난했지만 정이 있었던 서민들의 따뜻함도 같이 사라질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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