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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사극 <추노>를 보면서 조선시대 노비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면서 요즘 세상에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답니다. 태어나자 마자 노비 자식이라 해서 평생 노비로 살고, 양반댁 도령이라 해서 귀한 대접을 받고 사는 세상이라면 노비들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평생 노비로 살바에야 죽는 한이 있더라고 도망을 치는 노비들을 백번, 천번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쌍한 노비를 잡아다가 다시 양반댁으로 데려다주는 추노꾼이 있었으니 이들이야말로 인간사냥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 '추노꾼'은 없었다고 하지만, <추노> 사극에 나오는 노비 표식을 보면 신분으로 등급을 매긴 것 같아 보기가 안스럽습니다. 소나 돼지를 도살한 후 파란 도장으로 등급을 매길 때 찍어놓은 표식처럼 노비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노비표식을 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마에 한 사람, 얼굴(뺨부분)에 한 사람, 그리고 가슴 부분에 한 사람 등 표식 위치가 다릅니다. 언년이(김혜원)와 그 오라버니 큰놈이(김성환)이는 가슴에, 초복이와 업복이는 얼굴(뺨 부분)에, 그리고 송태하와 훈련원 무관들은 모두 이마에 노비표식이 되어 있는데, 왜 노비표식 위치가 다 다를까요?
'추노꾼'이 실제로는 없었기 때문에 노비 표식도 꾸민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노비 표식은 <추노> 제작진이 만들어 낸 드라마 각본일 뿐입니다. 작가가 노비 표식을 할 때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 좀 한 것 같습니다. 노비도 노비 나름이잖아요. 노비는 크게 관노와 사노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노비 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추노'에 노비 표식을 한 사람을 관노, 사노로 구분해서 표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관노는 송태하와 훈련원 무관들인데 이들은 이마에, 그리고 초복이 업복이는 얼굴에 표시돼 표식이 '노출' 됐다는 것이고, 사노인 언년이와 큰놈이는 보이지 않는 몸속에 표시돼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노비 표식을 노출을 시키느냐, 시키지 않느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노비 표식이 노출된 송태하, 업복이, 초복이의 공통점은 뭔가요? 이들은 도망을 쳤거나 도망 칠 우려가 있는 노비라는 겁니다. 그래서 노비 주인들은 이들이 도망을 치더라고 노비임을 알아보기 위해 신체상 가장 잘 보이는 얼굴에 노비 표식을 한 것입니다. <추노> 초반에 업복이가 도망을 쳤다가 이대길패에 다시 붙잡혀와서 얼굴에 노비 표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한번 도망을 친 업복이는 다음에 또 도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얼굴에 큼지막하게 한문으로 '奴'라고 표시한 것입니다. 여자인 초복이의 경우에는 '婢'(계집종 비)라고 써 있고, 왼쪽에 있는 반면에 업복이는 오른쪽 표시돼 있습니다.
<추노> 11회에서 송태하가 훈련원 판관시절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 운주사 미륵불로 왔는데, 모두 하나같이 이마에 '奴'자 표시가 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송태하와 함께 훈련원 관노 신분이었다가 도망친 노비들입니다. 관청에서 이들에게 '奴'자 표시를 한 이유는 도망칠 우려가 매우 높은 노비이기 때문에 얼굴에 노비 표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 나실지 모르겠지만 1회부터 3회까지 나온 훈련원 관노 복동(이원종)은 다리를 저는 척 했던 송태하를 괜히 못살게 굴다가 관노 몇몇과 모의해 도망을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대길에 의해 붙잡히고 마는데 이들도 이마에 '奴'자가 표시된 것을 보면 '도망' 노비들은 다시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얼굴 부분에 '奴' 표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송태하는 '奴' 자 표시를 가리기 위해 머리끈을 하고 다녔는데, 명나라 자객 윤지(윤지민)의 칼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젖히다가 머리띠가 그만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언년이는 송태하의 머리에 표시된 '奴'자 표식을 보고 자신도 노비 신세였지만, 무척 실망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언년이와 그 오라버니 큰놈이가 가슴에 있던 노비표식을 인두로 지져 없애고, 이름까지 개명해 양반 행세를 하며 살았지만 이대길에 의해 큰놈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언년이는 노비표식을 지우고 이름을 김혜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언년이는 송태하의 노비 표식을 보고 자신이 가슴에 있던 문신을 지우기 위해 인두로 지져야 했던 아픔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옷고름을 뜯어 송태하의 문신을 가리도록 했습니다.
그럼 언년이와 큰놈이는 왜 보이지 않는 가슴 부분에 했을까요? 이들은 관노가 아니고 사노 신분인데, 양반집 노비들의 경우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물론 종들끼리 결혼도 시켜주기 때문에 양반집 더부살이지만 그냥 저냥 먹고 살 수 있어 도망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추노>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조선 인조시대는 민심이 흉흉하고 양반의 착취와 부정부패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종들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도망노비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도망노비를 잡아다 주고 구전을 챙기는 '추노꾼'이 생겼겠습니까? 양반들은 노비들이 자꾸 도망을 치자, 다시는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표시를 할 궁리를 생각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얼굴에 '奴'자 표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업복이와 초복이는 도망을 쳤다가 붙잡혀와서 언년이와 큰놈이와는 달리 얼굴에 노비 표식이 돼 있는 것입니다.
어제 업복이는 먼저 죽은 박참판의 수족이나 다름 없던 양반 2명을 관동포수 시절의 백발백중 사격솜씨로 죽였습니다. 업복이가 양반을 쏘는 사이 뒤에서 초복이는 망을 보고 있다가 업복이가 안전하게 도망치도록 해줍니다. 노비당 당원으로 양반들을 죽여야 노비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온다며 한 명씩 한 명씩 죽여가는 업복이의 양반 사냥은 추노꾼을 부려 노비사냥을 하는 양반들에 대한 복수입니다. 업복이로서는 이미 한번 도망을 쳤다가 붙잡혀 더 이상 떨어질 데라고는 없습니다. 평생 노비로 살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데, 죽을 각오라면 양반을 죽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퓨전 사극 <추노>는 조선시대 노비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합니다. 그 시절 노비를 붙잡아다주고 구전을 챙기는 '추노꾼'도 없었으니 노비에게 '奴' 자 표시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추노> 드라마 작가가 노비에 따라 표식을 어떻게 구분할까 고민하다가 '도망'을 두고 얼굴이냐, 보이지 않는 몸속이냐로 구분한 것 같은데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작가가 아무렇게나 노비 표식을 하진 않았을테니까요.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 '추노꾼'은 없었다고 하지만, <추노> 사극에 나오는 노비 표식을 보면 신분으로 등급을 매긴 것 같아 보기가 안스럽습니다. 소나 돼지를 도살한 후 파란 도장으로 등급을 매길 때 찍어놓은 표식처럼 노비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노비표식을 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마에 한 사람, 얼굴(뺨부분)에 한 사람, 그리고 가슴 부분에 한 사람 등 표식 위치가 다릅니다. 언년이(김혜원)와 그 오라버니 큰놈이(김성환)이는 가슴에, 초복이와 업복이는 얼굴(뺨 부분)에, 그리고 송태하와 훈련원 무관들은 모두 이마에 노비표식이 되어 있는데, 왜 노비표식 위치가 다 다를까요?
'추노꾼'이 실제로는 없었기 때문에 노비 표식도 꾸민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노비 표식은 <추노> 제작진이 만들어 낸 드라마 각본일 뿐입니다. 작가가 노비 표식을 할 때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 좀 한 것 같습니다. 노비도 노비 나름이잖아요. 노비는 크게 관노와 사노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노비 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추노'에 노비 표식을 한 사람을 관노, 사노로 구분해서 표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관노는 송태하와 훈련원 무관들인데 이들은 이마에, 그리고 초복이 업복이는 얼굴에 표시돼 표식이 '노출' 됐다는 것이고, 사노인 언년이와 큰놈이는 보이지 않는 몸속에 표시돼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노비 표식을 노출을 시키느냐, 시키지 않느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노비 표식이 노출된 송태하, 업복이, 초복이의 공통점은 뭔가요? 이들은 도망을 쳤거나 도망 칠 우려가 있는 노비라는 겁니다. 그래서 노비 주인들은 이들이 도망을 치더라고 노비임을 알아보기 위해 신체상 가장 잘 보이는 얼굴에 노비 표식을 한 것입니다. <추노> 초반에 업복이가 도망을 쳤다가 이대길패에 다시 붙잡혀와서 얼굴에 노비 표식을 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한번 도망을 친 업복이는 다음에 또 도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얼굴에 큼지막하게 한문으로 '奴'라고 표시한 것입니다. 여자인 초복이의 경우에는 '婢'(계집종 비)라고 써 있고, 왼쪽에 있는 반면에 업복이는 오른쪽 표시돼 있습니다.
<추노> 11회에서 송태하가 훈련원 판관시절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 운주사 미륵불로 왔는데, 모두 하나같이 이마에 '奴'자 표시가 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송태하와 함께 훈련원 관노 신분이었다가 도망친 노비들입니다. 관청에서 이들에게 '奴'자 표시를 한 이유는 도망칠 우려가 매우 높은 노비이기 때문에 얼굴에 노비 표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 나실지 모르겠지만 1회부터 3회까지 나온 훈련원 관노 복동(이원종)은 다리를 저는 척 했던 송태하를 괜히 못살게 굴다가 관노 몇몇과 모의해 도망을 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대길에 의해 붙잡히고 마는데 이들도 이마에 '奴'자가 표시된 것을 보면 '도망' 노비들은 다시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얼굴 부분에 '奴' 표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송태하는 '奴' 자 표시를 가리기 위해 머리끈을 하고 다녔는데, 명나라 자객 윤지(윤지민)의 칼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젖히다가 머리띠가 그만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언년이는 송태하의 머리에 표시된 '奴'자 표식을 보고 자신도 노비 신세였지만, 무척 실망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언년이와 그 오라버니 큰놈이가 가슴에 있던 노비표식을 인두로 지져 없애고, 이름까지 개명해 양반 행세를 하며 살았지만 이대길에 의해 큰놈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언년이는 노비표식을 지우고 이름을 김혜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언년이는 송태하의 노비 표식을 보고 자신이 가슴에 있던 문신을 지우기 위해 인두로 지져야 했던 아픔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옷고름을 뜯어 송태하의 문신을 가리도록 했습니다.
그럼 언년이와 큰놈이는 왜 보이지 않는 가슴 부분에 했을까요? 이들은 관노가 아니고 사노 신분인데, 양반집 노비들의 경우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은 물론 종들끼리 결혼도 시켜주기 때문에 양반집 더부살이지만 그냥 저냥 먹고 살 수 있어 도망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추노>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조선 인조시대는 민심이 흉흉하고 양반의 착취와 부정부패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종들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도망노비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도망노비를 잡아다 주고 구전을 챙기는 '추노꾼'이 생겼겠습니까? 양반들은 노비들이 자꾸 도망을 치자, 다시는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표시를 할 궁리를 생각해냈는데, 그것이 바로 얼굴에 '奴'자 표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업복이와 초복이는 도망을 쳤다가 붙잡혀와서 언년이와 큰놈이와는 달리 얼굴에 노비 표식이 돼 있는 것입니다.
어제 업복이는 먼저 죽은 박참판의 수족이나 다름 없던 양반 2명을 관동포수 시절의 백발백중 사격솜씨로 죽였습니다. 업복이가 양반을 쏘는 사이 뒤에서 초복이는 망을 보고 있다가 업복이가 안전하게 도망치도록 해줍니다. 노비당 당원으로 양반들을 죽여야 노비들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온다며 한 명씩 한 명씩 죽여가는 업복이의 양반 사냥은 추노꾼을 부려 노비사냥을 하는 양반들에 대한 복수입니다. 업복이로서는 이미 한번 도망을 쳤다가 붙잡혀 더 이상 떨어질 데라고는 없습니다. 평생 노비로 살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은데, 죽을 각오라면 양반을 죽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퓨전 사극 <추노>는 조선시대 노비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합니다. 그 시절 노비를 붙잡아다주고 구전을 챙기는 '추노꾼'도 없었으니 노비에게 '奴' 자 표시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추노> 드라마 작가가 노비에 따라 표식을 어떻게 구분할까 고민하다가 '도망'을 두고 얼굴이냐, 보이지 않는 몸속이냐로 구분한 것 같은데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작가가 아무렇게나 노비 표식을 하진 않았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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