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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5

추노, '민폐' 잠재운 장혁의 미친 연기 흔히 '미쳤다'는 표현을 쓸 때는 정신 세계가 보통사람과 다른 경우나 어떤 일에 몰두해 빙의가 됐다고 할 정도로 빠진 상태를 말합니다. 첩보 액션 드라마 에서 북한 공작원 팀장 김승우의 '미친 존재감'도 이병헌을 잡기위해 360도를 커버하는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집중력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에게 '미친'이란 표현을 쓸 때는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난 경우를 말합니다. 어제 13회에서 장혁이 10년 동안 찾아 헤매던 언년이를 발견한 후 오열하는 장면은 이다해의 눈물연기와는 차원이 달랐고, 말 그대로 장혁이 극중 이대길이란 배역에 완전히 '미친' 연기였습니다. 13회 방송 후 연예뉴스나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니 이다해가 보인 엔딩신 눈물 연기가 소위 '민폐언년'에서 벗어난 연기라고 호평가를 했지만.. 2010. 2. 18.
추노, 쌩뚱맞은 오지호-이다해 키스신 어제 10회는 전반부의 긴장감을 후반부 엔딩 부분에 나온 오지호와 이다해의 쌩뚱맞은 키스신으로 맥빠지게 만들었습니다. 9회에서 백호, 윤지, 만득이 등 비중 있는 조연들의 죽음에 이어 어제도 한섬이가 좋아하던 궁녀까지 죽어 지루하게 느껴지던 극 전개에 큰 반전이 있겠구나 기대를 하고 봤습니다. 대길이(장혁)가 언년이(김혜원) 오라버니 큰놈이(김성환)를 죽이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승부도 나지 않는 송태하와 황철웅의 바닷가 대결신 후 송태하가 언년이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뭥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손마마를 모시고 한시가 급하게 제주도를 탈출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파른 돌산을 다시 올라가 키스라니요? 송태하와 언년이는 지금 황철웅과 관군에게 쫓기는 입장입.. 2010. 2. 5.
추노, 여자 '꽃그지' 초복이의 매력 비담을 '꽃그지'라 한 말 기억나세요? 비담의 ‘꽃그지’ 포스는 김남길이 비밀병기로 처음(21회) 등장할 때 나왔던 모습입니다. 덕만이가 설원공 군사들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하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비담에 의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비담은 자신의 닭백숙을 뭉개버린 군사들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단 칼에 베어버리고는 묶여있던 덕만을 구해주는데, 이때 보이던 모습이 일명 꽃그지 비담입니다. '꽃그지'란 말은 비루한 옷차림과 달리 꽃미남을 능가하는 외모에 무예가 뛰어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후 여자 꽃그지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에 나오는 여종 초복이(민지아)인데 보통 여종이 아니에요. 비록 종년 신세지만 글을 읽을 줄 알아 노비당의 브레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어제 7회에서 업복이(공형진).. 2010. 1. 28.
조강지처클럽이 찌질이클럽인 이유 주말드라마로 인기를 얻고 있는 조강지처 클럽이 10월 5일 종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극이 전개될때는 불륜과 이혼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드마마였지만, 출연배우들의 다양한 캐릭터로 이런 무거움을 없애고 코믹하게, 때론 슬프게 전개되면서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게 만들었습니다. 주말 심야시간대에 볼만한 드라마가 없어 첫 회부터 꾸준히 시청해 왔지만, 최근 상식을 뒤엎는 극 전개 방향과 연장 방송으로 인한 지루감 등으로 드라마 특유의 통쾌한 반전과 카타르시스를 보고 싶은 시청자로서 적잖이 짜증이 났습니다. 시청률을 볼모로 삼아 초등학생이 각본을 써도 그토록 무지막지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진 않았을 듯 합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이건 도대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드라마니까요. 드라마의 반전이 흥미와 재미를 주는.. 2008. 9. 28.
서울에 있는 100년전 조선시대 간판 서울 한복판에서 100년전 간판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쓰던 간판인데, 참 특이합니다. 아래 간판은 무슨 간판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고어를 생각해 보면 아시듯한데...? 요즘 도심지 간판을 보면 국적도 없는 간판이 여기 저기 보여 세종대왕이 노여워 하실텐데, 북촌 한옥마을(서울 가회동)을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 간판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바로 이 간판은 치과간판이네요. "이 해박는 집"... ㅎㅎㅎ 1926년 6월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인산(왕실의 장례)일에 우연히 찍힌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간판이며, 1907년 종로에서 잇방을 개설한 최승용이란 사람이 실제 사진속의 간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한말 고종의 시의였던 독일인 의사 분쉬가 1903년에 .. 200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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