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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리뷰

'지붕킥', 청년실신 황정음의 눈물

by 피앙새 2010.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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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청년실신'이란 말을 아시는지요? 청년 신용불량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대학 졸업생들의 실상을 그대로 표현해 준 말입니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쓰고, 한 달에 몇 십만원 받고 주유소나 편의점에 가서 알바를 하는 대학졸업생들의 현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붕킥'에서 황정음이 요즘 보여주는 캐릭터가 떡실신을 넘어 이제 '청년실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정음은 서운대를 졸업했습니다. 정음이가 서운대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준혁의 과외도 더 이상 못하게 되었지요. 서울대라고 일부러 속인 것은 아니지만 어찌 어찌 하다보니 6개월간 서울대생으로 살아온 정음을 보니 우리 사회 뿌리깊이 박힌 학벌사회의 폐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음이는 서운대를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하고 그야말로 '날백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준혁의 과외까지 끊겨 용돈 마련이 어려워서인지 부모님께 용돈 보내달라고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지훈이가 실망도 할 만 한데, 여전히 정음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는 정음이를 보니 조금 답답한 느낌도 듭니다. 제작진이 일부러 정음 캐릭터를 '청년실신'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붕킥' 출연자중 정보석과 함께 정음은 불쌍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음은 용돈은 물론 생활비, 방세, 현경에게 돌려줄 과외비까지 모든 것을 부모님께 의지합니다. 게다가 카드값 결제일도 코앞입니다. 그래서 인나와 줄리엔에게 돈을 빌려 '거지황'이란 답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한 푼만 빌려줍쇼, 딱 일주일만'하는 정음을 보면 해리의 말대로 꾸질꾸질합니다. 인나에게 5만원, 줄리엔에게 15만원, 합이 20만원을 빌려도 카드값 결제하고 나니 딱 4천원이 남습니다. 돈을 빌리고도 거지황은 여전합니다. 지훈과 데이트할 때도 지갑이 비어 지훈이가 한턱 얻어먹는다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 않습니다. 정음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지훈이 정음의 지갑속에 돈과 편지를 넣어주는 센스를 보여주었지만, 이것으로 정음의 생활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용돈을 부쳐주지 않자, 집으로 간 정음은 차압 딱지가 붙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정음이가 명품 구구와 브랜드 옷으로 치장하며 된장녀 생활을 할 때 정음의 부모들은 안 먹고 안 쓰며 정음에게 학비와 용돈을 보내준 것입니다. 집에서 용돈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정음은 그동안 샀던 명품구두와 옷들을 모두 팔았습니다. 그리고 인나와 광수에게 빌린 돈을 갚고, 애견까지 팔려 했으나 아픔을 함께 하려면 애견이라도 있어야 하겠기에 차마 애견까지는 팔지 않습니다. 정음의 외출복은 명품옷과 구두 대신 츄리닝(운동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생활비와 용돈을 벌겠다고 눈물을 뚝 뚝 흘리는데, 이것이 바로 '청년실신'의 눈물이었습니다.


황정음의 '떡실신' 연기는 재미와 웃음을 주었지만 그 웃음 뒤에 감춰진 철 없는 대학생의 행동은 시청자들이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서운대생 입장에서 남들보다 눈에 쌍심지 키고 공부해도 취직이 될까 말까 한데, 허구헌날 커피숍에서 비싼 커피 쪽쪽 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취직이 되나요? 준혁의 과외가 중단됐으면 알바 자리라도 구해 부모님께 더 이상 손을 벌리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부모님이 은행인줄 알았습니다. 이런 정음의 모습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제 앞가림도 못하는 바보로 보였습니다.

서운대는 준혁이도 입학을 거부한 대학입니다. 현실 속에서 보면 서운대는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대학)도 아니고 서울상대(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진 대학)에 속할 것 같습니다. 이런 대학을 다니면서도 황정음은 '된장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 때 명품 중독에 빠졌습니다. 정음이가 준혁이 과외를 하게된 계기도 사실은 명품 구두 때문이었잖아요. 키우던 개가 명품 구두를 물어 뜯는 바람에 그 구두값 갚으려고 과외 전단지를 붙였는데, 진짜 서울대생이 정음의 전단지 위에 전화번호만 가리지 않고 또 전단지를 붙이는 바람에 졸지에 정음이가 서울대생이 된 것입니다.


'지붕킥' 제작진은 지금까지 황정음 캐릭터를 시트콤 본래의 목적에 맞게 재미와 웃음을 줄 수 있게 그려왔습니다. 떡실신녀, 팜프파탈 블랙홀, 만취 팬더곰, 황정남, 할매 정음 등 모두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종방을 앞두고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이 바로 황정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서운대 재학중인 황정음과 졸업생 황정음은 다릅니다. 여대생 신분일 때는 어떤 짓을 해도 밉지 않았는데, 이제 백수 정음은 조금만 이상한 짓을 해도 밉보이기 쉽상입니다. '거지황'도 황정음이 보여왔던 캐릭터에 비하면 꾸질꾸질한 밉상 캐릭터입니다.

'황정음=서운대 졸업생'이란 메가톤급 팩트가 이미 순재네 가족 모두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솔직히 지정커플(지훈-정음)의 결말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깐깐한 현경이는 물론 순재까지 서운대생 정음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최근 지훈이가 정음이보다 세경이의 검정고시 준비를 도와준답시고 세경이에게 자꾸 접근하는 것을 보니 지정커플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솔직히 글쓴이 생각은 지정, 지세, 준세, 준정 커플 모두 다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봅니다. 세경이가 시간이 지나면 지훈에 대한 짝사랑을 한 때의 추억으로 간직한다고 했듯이 네 사람 모두 그저 추억으로 끝날 듯 합니다.


그러면 남은 기간 황정음 캐릭터를 어떻게 그릴까요? 아마도 서운대 졸업생으로 혹독한 사회 체험을 하며 눈물을 쏙 빼게 하지 않을까요? 황정음에게 남아 있는 캐릭터가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이 바로 '청년실신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제 선보인 '거지황'은 '청년실신녀'의 전단계라고 생각됩니다. 서운대를 졸업한 황정음이 더 이상 집에서 도움도 못받고 이제 혼자의 힘으로 거친 세상과 싸워 나가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바로 이 시대 대학 졸업생들의 모습, '청년실신'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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