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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남친에게 꽃다발 받아온 딸, 아빠의 반응은?

by 피앙새 2009.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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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큰 딸이 어제 장미꽃 150송이 꽃다발을 들고 왔습니다. 부모 결혼기념일도 아닌데 왠 꽃다발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딸을 좋아해서 쫓아다닌다는 남자에게 받은 장미꽃다발이었습니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아빠에게 꽃을 들고 오는 것을 들킨 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습니다. 정성 가득한 장미꽃다발을 보고 여자친구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을 리가 만무한지라 아빠는 금방 눈치 채고 누구에게 받은 거냐며 물었습니다. 딸은 얼굴만 빨개질 뿐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학교 다닐 때 여자친구 없었어요?" 하며 넌지시 딸을 변호하는 말을 했습니다. 남편과 딸의 충돌을 막아보려는 생각에서 말이죠. 남편은 요즘 부모들과는 달리 딸들에게 조금은 엄격하고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딸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아빠는 딸에게 "공부하는 학생 신분에서 남녀간 친구관계는 안돼. 지금은 공부할 때야. 공부는 때를 놓치면 안돼!"는 말을 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안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 딸은 아빠가 자기 마음도 몰라주는 것이 못내 서운해 하는 눈치입니다. 이 와중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작은 딸은 연신 장미꽃을 만지작 거리며 "야~ 좋겠다!"를 연발 하며 내심 부러운 표정입니다. 눈치 코치도 없이...

밤 12시가 넘어 아빠는 큰 딸 방으로 건너가 한참 이야기를 하는 눈치입니다. 들어 보니 한창 공부할 나이에 남자친구는 도움이 되느니, 안되느니... 뭐 이런 얘기들입니다. 큰 딸은 아빠 얘기를 다 듣더니, 자기 의사와는 상관 없이 고등학교 동창이 꽃다발 선물을 준 것이고, 안받겠다고 해도 집 앞까지 찾아와 할 수 없이 받았다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랍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 절대 안사귈 것이니 아빠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네요. 아빠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딸 방에서 나옵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조하던 조선시대도 아닌데 남편이 좀 유난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딸은 고등학교때 남녀공학을 다닌지라 남자, 여자 구분없이 동창생들을 친구관계로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386세대라 그런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남자면서 '남자는 다 도둑*, 늑대'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딸이 밤늦게 들어오기라도 하면 좌불안석입니다. 남자친구에게 꽃다발을 받아오는 딸을 보며 '야, 향기 좋고... 예쁘다'라고 심플하게 받아주기 힘든 남편입니다.

그나 저나 큰 딸이 벌써 남자친구에게 장미꽃다발 선물을 받는 것을 보니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보네요. 그리고 이제부터 딸의 남자친구까지 감독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일이 추가된 것 같아 조금은 기분이 묘하게 느껴집니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남자친구까지 신경쓰는 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아무리 건전한 이성교제라 하다라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게 저와 애들 아빠의 생각입니다. 딸 자식을 둔 부모의 원죄(?)라면 그 죄값을 이제부터 치러야 하는 걸까요? 요즘은 딸 자식을 두어야 비행기 탄다는데 저도 우리 딸들 덕분에
이 다음에 비행기 좀 탈 수 있을까요?


거실에 놓여진 장미꽃다발을 보니 한편으로는 솔직히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결혼전 연애할 때나 결혼후 결혼기념일, 생일 때 등 한번도 남편에게 꽃다발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은 연애편지는 자주 써주어도 1회성 꽃다발 등으로 돈 낭비 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꽃다발 줄 돈이면 차라리 돈으로 달라는 주부들의 심리를 너무 잘 알아서 일까요? 그러나 시장에서 콩나물값 몇백원을 깎아도 가끔은 저도 꽃다발도 받고 싶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낭만도 찾고 싶어집니다.

어제 딸이 받아온 장미꽃다발을 보며 남편에게 "당신도 이제 제게 꽃다발 선물도 좀 하고 그래요. 나이들수록 낭만도 좀 찾으며 살아야지요?' 했더니 남편은 "하루 지나면 쓰레기될텐데, 뭐하러 사. 그냥 돈으로 줄께' 합니다. 참 재미없습니다. 우리 남편 같으면 꽃가게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어쨌든 항상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던 큰 딸이 이제 남자친구에게 꽃다발까지 받아오는 것을 보니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듯 합니다. 아직 푸득 푸득 잘 날지 못하지만 조금 있으면 힘찬 날개짓을 하며 부모의 둥지를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켠이 허전하게 느껴집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딸이 받아온 장미꽃다발은 안방에 놓았습니다. 마음은 남편이 제게 준 꽃이라 여기며 어젯밤은 장미꽃 향기에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딸이 받아온 장미꽃다발로 원님 덕분에 나발 분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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