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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고3 딸이 스스로 핸드폰을 정지시킨 이유

by 피앙새 200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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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요즘처럼 가정마다 전화기가 없어서 마을에 한두대 뿐인 이장님댁이나 동네 슈퍼전화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당시 쓰던 전화기는 백색, 흑색전화기로 나뉘어 빈부차에 따라 쓰는 전화기도 달랐습니다. 불과 30~40전 일인데, 요즘 전화기 사정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초등학생들도 핸드폰을 들고다니며 쓰는 세상이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그래서 '학생이 무슨 핸드폰이냐' 할지 모르지만 호신용, 비상연락용 등 그 용도도 다양하니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을 뭐라할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핸드폰은 사치가 아닌 생활필수품이 된 것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핸드폰을 떠나 한시도 살 수 없을 만큼 핸드폰을 '분신'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다 핸드폰이 고장나 하루 정도 수리를 맡기게되면 불안해 하기도 합니다. 어른들이야 통화를 하는데 사용하지만 학생들은 주로 문자를 주고 받는데 사용합니다. 문자를 많이 보내다보니 학생들을 요즘 '엄지족'이라고 부릅니다. 어른들과 학생들의 핸드폰의 가장 큰 차이는 키판의 차이입니다. 학생들은 문자를 하도 많이 보내 키판이 많이 닳은 편이고, 어른들의 키판은 깨끗합니다.

올해 고3이 된 딸이 분신이라 할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는 핸드폰을 지난 5월에 정지시켰습니다. 중학교 입학기념으로 사준 핸드폰을 5년 넘게 사용해오다가 한번도 정지시킨 일이 없는데 갑자기 정지시킨 것입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매일 밤 12시까지 공부를 하고 오기 때문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차로 태우러가려면 문자나 전화로 연락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핸드폰을 정지시키면 어떻게 하냐?'며 물었습니다.

"엄마, 수능 끝날때까지 핸드폰 안쓰려고 정지시켰어. 학원 끝나면 친구 핸드폰으로 연락할게"


올 초 딸이 고 3이 되자 아빠가 핸드폰도 끊고 이제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라고 하자, "아빠, 핸드폰 있다고 공부못하는 거 아니잖아요. 걱정마세요"라고 하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핸드폰을 정지시키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딸이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항상 강조하는 것이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과정이 좋지 않은 결과는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 가르쳤습니다. 딸은 일단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과정이 좋으면 통상 결과도 좋기 때문에 딸의 핸드폰 정지가 그렇게 미더울 수가 없었습니다. 핸드폰을 정지시켰다고 해서 딸이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면 결과에 관계없이 엄마, 아빠는 만족한다"는 말을 딸이 받아들인 듯 합니다. 딸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이란 1분 1초를 아껴 공부하는 것이고, 그 공부에 방해가 되고 장애가 되는 핸드폰마저 정지시키고 과정에 충실하겠다는 것입니다.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엄마 끝났어, 델러와~요" 하는 문자 메시지가 요즘은 딸의 친구 핸드폰을 통해 오고 있습니다. 그 번호도 매일 매일 바뀌고 있습니다. 학원이 끝난후 친구들 핸드폰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핸드폰을 빌릴 때마다 "야, 너 핸드폰 가지고 다녀도 공부되거든...' 하면서 눈총을 준다고 하는데,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능때까지 정지된 핸드폰을 풀지 않으려나 봅니다. 딸이 엄마손에 정지된 핸드폰을 넘겨줄 때는 '1~2주 지나면 다시 풀어달라고 엄마에게 조르겠지' 생각했습니다. 정지된 핸드폰을 풀려면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딸이 핸드폰을 정지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습니다. 방학을 했어도 매일 아침 학교에 가서 밤 12시가 넘어서 오는 딸은 여름이라 그런지 부쩍 힘들어 합니다. 고3 수험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시기가 바로 7~8월입니다. 날은 덥고 학업 능률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딸도 힘에 겨워합니다. 딸이 힘들 때마다 정지된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합니다. "핸드폰마저 정지시키고 열심히 해주는 딸이 엄마는 자랑스럽다. 최선을 다하는 네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단다"

제 핸드백에는 핸드폰이 2개입니다. 하나는 제 것이고, 또 하나는 정지된 딸의 핸드폰입니다. 저 역시 직장을 다니며 힘들 때마 정지된 딸의 핸드폰을 보며 힘을 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딸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지된 딸의 핸드폰은 곧 제 딸입니다.

전국의 60만 수험생 학부모, 수험생들이 힘겹게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휴가철이 되면 모두 산과 바다로 여름 피서를 떠날 것입니다. 고3 수험생을 둔 집에서는 휴가나 피서는 엄두를 못낼 것입니다. 마음이라도 한데 모아야 수험생들이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딸의 정지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방학에도 학교 도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딸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사랑스런
○야! 엄마는 너를 믿는다. 아니 네가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자꾸나. 바로 저 앞에 네가 원하는 대학이 보이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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