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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30년전 남편 성적표와 딸을 비교해 보니

by 피앙새 2009.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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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제 나이 또래(386세대) 사람들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학에 다니는 큰 딸에게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죽으면 죽었지 다시 못 돌아가요!’ 합니다. 그만큼 요즘 학생들은 입시위주의 공부에 눌려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30년전 남편의 중학교 성적표와 딸의 성적표를 비교해보니 시공의 차이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공부방법에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남편은 30여년전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닌 386세대입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과외가 있었다 해도 극소수 부잣집 자제들만 했었고, 대부분 학교 공부에 충실하며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가정적으로 넉넉치 않아도 열심히만 하면 학급 석차는 물론 전교 석차도 상위권에 들 수 있었고, 일류대도 갈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게 가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편은 학창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원이나 과외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따라 충실히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한 결과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남편은 이른바 노력파였습니다.

그런데 둘째딸의 성적표를 보니 남편보다 훨씬 못합니다. 딸은 학원과 과외를 하면서도 우수 과목이 별로 없습니다. 잘하는 과목이 기술가정, 음악, 한문, 도덕입니다. 정말 잘해야 하는 수학, 과학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습량을 비교해봐도 딸이 훨씬 많습니다. 주말에도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딸에 비해 남편 세대는 주말이면 문학과 음악 등 낭만도 쫓았습니다.

그래서 딸의 성적을 보고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빠 학교 다닐 때는 과외 안받고도 공부 잘했는데, 요즘 애들은 왜 그렇지?"

물론 남편도 그 원인을 알면서도 답답하기에 한 말입니다. 옛날이야 지금처럼 대형 학원도 없고 입시 경쟁이 치열하진 않았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누가 더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었습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친구들과 밤을 새워 문학을 이야기 하고 인생을 논하던 소중한 추억이 있었습니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문학의 밤’에 가서 토론을 하라고 하면 ‘시간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상한 부모라고 할지 모릅니다. 친구들과 때로는 다른 길로 새서 영화도 몰래 보고,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연애편지도 쓰고 받아보며 사춘기 시절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보며 자랐지만, 대학을 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 학창은 이제는 전설속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된 듯 합니다.

남편은 까까머리 중학교 졸업사진을 보며,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가끔 사진속의 동창생들을 만나며 배 나오고 머리도 듬성 듬성 빠지고 흰머리마저 많아진 친구들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편 세대와 지금 딸 세대는 같은 대학입학을 목표로 두고 있지만 공부방법은 물론 학창시절을 보내는 방법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딸 세대는 대학입시를 인생 최대의 승부처라 생각하고 올인하고 있지만 남편 세대는 낭만을 즐기며 대학은 인생의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딸의 성적표 공통점 한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돈 없으면 대학에 가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남편 세대는 소팔아 대학보내던 시절이고, 딸 세대는 은행에서 학자금 융자받아 대학에 보내는 시대입니다. 소팔아 대학에 보내면 졸업후 취직을 해서 소를 다시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바로 취직이 안돼 학자금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 세대입니다.

남편과 딸의 중학교 성적표를 비교해보니 학원비 등 돈을 더 많이 투자해도 딸이 훨씬 어렵게 공부하고 성적은 남편보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입시정책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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