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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행복

상인, '마수걸이도 안했는데 재수 없게'

by 피앙새 2009.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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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마수걸이라는 말을 들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수걸이’란 장사꾼들이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또는 거기서 얻는 이익을 말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상인들이 ‘오늘 마수걸이 잘했다.’고 하면 첫 손님을 잘 받아 그날 장사운(運)이 좋을 것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장사를 하거나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첫 개시 손님인 마수걸이를 참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 첫 손님이 그날 하루 매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딱히 이 말이 맞는지 안맞는지 모르지만 마수걸이 때문에 호되게 상점 주인에게 된소리 한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도 안되는데, 아침에 첫 손님으로 가게에 들어가 물건만 만지작거리다 나오면 그날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 때문에 잘못하면 봉변도 당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상점에 들어가기가 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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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부근에 있는 출판사로 일을 하러 다니면서 사무실에 출근하기 전에 필요한 지하 매장을 지나면서 아이쇼핑을 합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것 같으면 매장에 들어가 요모조모 살펴보기도 합니다. 어제 출근하며 지하매장을 지나다 봄 신상품이 걸려있는 옷가게에 눈이 가서 워킹맘이니 옷도 한 벌 사야겠구나 하고 매장을 들어갔습니다. 매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은 오늘 첫 손님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싸게 줄테니 좋은 옷 한번 골라보라며 부담감을 줍니다. 사실 옷을 사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그냥 한번 둘러보려 한 건데, 이렇게 판매 강요를 하니 기분은 불쾌했습니다.

내가 맘에 들었던 옷을 가게 안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옷은 어떤가 하고 이 옷 저 옷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웬지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0여분 살펴보다 그냥 다음에 오겠다고 말하고 나오는데 뒷통수가 따가운 느낌이었습니다. 주인이 뒤에서 하는 말, “마수걸이도 안했는데 재수 없게시리...” 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은 나빴지만 경기가 안 좋아 오죽 장사가 안되면 저럴까 하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말 싸움 하기도 서로 피곤하고 하루의 시작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어떤 가게는 “아직 개시도 안했는데, 물건만 만지고 사지도 않고 간다.”며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짓습니다. 불황의 그늘이 깊게 드리운 상인의 얼굴에서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는 듯 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마수걸이란 것을 왜 믿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사라는 것이 하루 하루 불확실하고 잘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등 변동이 심해 상인들로서는 무엇인가에 기대어 하루의 매출을 예상해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은 상인들이 이런 기대심리가 더욱 클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가능한 첫 손님을 중요하게 여기고, 첫손님에게 물건을 팔아야 그날 하루 매상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제가 들어갔던 그 옷가게 주인은 듣기 싫은 말도 했을 것입니다. 만약 경기가 좋아 물건이 잘 팔린다면 아마도 마수걸이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별로 갖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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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장사하는 사람들은 ‘일리(一厘)를 보고 오리(五里)를 간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무리 작은 이익을 얻더라도 그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려움도 흔쾌히 치른다는 말입니다. 손님에 대한 상냥한 미소와 친절은 차치하고라도 마수걸이 때문에 첫 손님으로 물건을 사지 않았다고 손님을 홀대하는 상인들의 나쁜 관행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제는 이른 아침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가 겁납니다.

동대문과 남대문 등의 상인들이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죽을 맛이라는 뉴스가 방송에서 자주 나옵니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가 안되는 것을 재수 없는 마수걸이 첫 손님 때문에 오늘 장사가 안됐다고 하는 생각은 이제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상점을 운영하며 장사하시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첫 손님은 물건을 사던, 사지 않던 가장 반가운 손님이라 여기고 앞으로 친절하게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불황은 상인이나 손님이나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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