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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봉사 의미 못살리고 있는 학생 봉사활동

by 피앙새 2009.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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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때문에 방학때만 되면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봉사활동 할 곳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아야 합니다. 1년에 정해진 시간을 꼭 채워야 하고 봉사활동 시간이 학생부에 기록이 되고, 대학입학 때 점수로 들어가기 때문에 학기중에는 힘들고 주로 방학기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곳은 방학 때만 되면 동사무소나 우체국 등에 봉사활동을 하기 위한 어머니들의 접수경쟁이 벌어집니다. 아무때나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무소에 접수기간이 있고, 이 기간에 접수를 해야 그나마 자녀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방학중에도 학생들은 학원을 다니고, 딸아이의 경우 고등학생 이라 그런지 보충학습 때문에 매일 학교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봉사활동을 대신 접수해주고 있습니다. 동사무소 봉사활동은 지역내 쓰레기줍기와 도서관 사서정리 두가지입니다. 이중 쓰레기줍기는 요즘같은 겨울철은 선호하지 않지만, 이마저도 못하면 시간 채우기가 여의치 않아 접수경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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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채 방학때만 하는 시간때우기식 봉사활동은 오히려 꼼수만 배우게 할 뿐이다.)


교육당국의 봉사활동 취지야 물론 좋지만 문제는 학생들의 봉사활동 태도입니다. 봉사의 의미는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 남을 돕거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육체적 노동을 통해 봉사하는 것인데, 막상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은 "귀찮은데 왜 이런 걸 만들어서 힘들게 하나?" 하는 태도입니다. 어제 동사무소에서 쓰레기줍기 봉사활동을 나온 학생들을 보게 되었는데, 봉사활동이란 말을 붙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냥 동네 한바퀴 도는 수준입니다. 큰 쓰레기 봉투 2개를 들고 10여명 내외의 학생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쓰레기를 줍는 일보다 노는데 더 정신없습니다. 이렇게 아파트 주변을 돌고 이 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받는 시간은 4시간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 학원 보내고 대신 봉사활동 나왔다고 하며 동사무소에서 확인서에 도장만 받아가는 일도 있습니다. 이게 동사무소 봉사활동의 실상입니다.

물론 정상적으로 잘 하는 동사무소도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동사무소에서 봉사활동 나온 학생들을 감독하거나 4시간을 꼬박 시켰다가는 학부모들에게 항의 받기 쉽습니다. 다른 동사무소는 대충 해도 시간 주는데, 왜 여기만 유별나게 하느냐고 따질 것입니다.

봉사활동을 비교적 객관적이고 원칙적으로 하는 곳이 지하철역 청소봉사입니다. 지하철에서 용역직으로 일하는 아저씨나 아줌마들을 도와 청소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은 지하철 청소 봉사활동을 하기 싫어합니다. 창피하다는 겁니다. 그래도 동사무소 봉사활동은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동네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끄럼 없이 할 수 있지만, 지하철은 사람 왕래도 많고 또 정해진 시간만큼 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충 해도 시간을 끊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딸아이가 마을 도서관에 가서 장서정리 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딸에게 "봉사활동 하니까 기분 좋지?" 하며 물었습니다. 뻔한 대답이 나올줄 예상했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기분은 무슨... 시키니까 할 수 없이 하지." 딸은 아직 봉사활동을 할 준비가 안돼 있는 겁니다. 그리고 봉사활동보다 고등학생이라 당장 공부가 더 급한 모양입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 고등학생 대부분은 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채, 학교에서 시간 채우라니까 할 수 없이 채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시전쟁을 하는 우리 나라 교육현실에 볼 때 고등학생들은 봉사활동할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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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은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되어 대학입학 점수에 포함이 되기 때문에 방학때 주로 하게 된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 딸도 고등학교 3년 내내 방학 때만 되면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1개학년에 20시간씩 통상 3년동안 60시간을 채웁니다. 이 봉사활동 시간표가 학생생활기록부에 그대로 기록이 됩니다. 대학 입시때 학생부가 꼭 첨부되는데, 학생부에 기록된 봉사활동 시간이 점수로 반영됩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에도 학생들은 동사무소, 지하철, 우체국,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학입시때 점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한다는 겁니다.

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채 그냥 소팔러 가는데 개따라 가듯 하는 봉사활동은 이제 재고해야 합니다. 물론 인성교육 차원에서 강제로라도 시켜서 봉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교육당국의 의도는 알겠지만, 학생들에게 봉사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보다 대충 시간 때워서 봉사활동 시간만 채우면 된다는 세상의 "꼼수"를 먼저 배우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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