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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나가수' 정엽, 얼마나 힘들었으면 만세 부를까?

by 피앙새 201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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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7위로 탈락이 됐지만, 원칙과 룰을 깬 재도전 파문으로 지난 한 주간은 정말 시끄러웠습니다. 결국 재도전 파문에 대한 책임으로 김영희PD가 교체되고 김건모마저 사퇴의사를 밝혀 어제 '나가수'는 파행 방송이 불가피했어요. 김건모가 사퇴했다고 해도 재도전 녹화가 끝난 마당에 그를 빼고 방송하긴 어려웠어요. MBC 예능국은 '나가수' 4회를 165분으로 특별 편성했는데, 두번째 미션으로 '노래바꿔 부르기'로 진행됐습니다. 관심의 촛점은 김건모가 또 한 번 꼴찌를 차지하느냐였어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장감 속에 경연을 마친 중간평가 결과를 보니 1위는 이소라의 '제발'을 불러 25%의 지지율을 보인 김범수였고, 7위는 9%의 지지율에 그친 정엽이었어요.

다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정엽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화면에 나왔던 방청객들의 편안한 얼굴과 미소는 정엽의 무대가 결코 나쁘지 않았음을 나타내준 반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결과가 7위로 나오자, 정엽의 얼굴엔 순간 폭풍같은 아쉬움의 그늘이 잡혔어요. 그러나 금방 '괜찮다'며 웃음을 보였는데, 그 웃음속에 왜 씁쓸함이 없겠어요. 정엽은 '이제 편안히 앨범 준비할 수 있겠다'며 쟁쟁한 선배들의 무대를 보면서 마치 예술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난주 김건모의 재도전 폭풍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었는지 어젠 7위가 발표된 후 소란은 없었어요. 이소라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았고, 김제동이 '재도전' 언급도 없었어요. 경연을 펼쳤던 가수나 매니저들 모두 다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이었어요. 정엽은 7위로 발표되자, 침울할 줄 알았는데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었어요. 게다기 마치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표정으로 '만세!'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정엽이 왜 저러지? 혹시 7위로 너무 충격을 먹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동안 선후배 가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7위를 했는데도 '만세'를 부를까요?

그 심정 이해하고도 남아요. '나가수'는 처음 기획단계부터 7명의 가수 중 정엽이 들어간 것 자체가 좀 의도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정엽은 방송에서 자주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30대 이상에겐 조금 생소한 가수입니다. 즉 대중성이 가장 약한 가수죠. 정엽 스스로도 7명 가운데 자신이 가장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늘 최선을 다하지만 바늘방석에서 노래하는 듯 측은해 보였거든요. 제작진이 정엽을 첫 탈락자로 예상하고 섭외했다면, 20년차 국민가수 김건모가 탈락에 당연히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거에요.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7명의 가수 중 정엽은 처음부터 가장 약해보였습니다.


3회 방송에서 김건모가 아니라 정엽이 7위가 되었다면 똑같이 '재도전' 파문이 있었을까요? 이미 지난 얘기기 때문에 다시 꺼내고 싶지 않지만, 탈락으로 끝났을 겁니다. 물론 정엽이 탈락됐다고 해서 노래 실력이 꼴찌란 얘기는 아니겠지만요. 노래 바꿔부르기 미션에서 정엽은 윤도현의 '잊을게'를 불렀는데, 500명의 청중평가단에게 어필을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정엽은 7위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고 제작진과 선후배 가수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만세!'로 모든 소감을 대신했습니다.

'만세!'란 원래 좋은 일이나 기쁜 일, 감동적일 때 하는 거 아닌가요? 4회까지 진행된 서바이벌 중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7위로 탈락됐는데 만세를 부를까요? 만세로 경연 압박감을 시원하게 털어버리는 정엽을 보고 마음이 짜안 했어요. 김건모가 지난주에 정엽처럼 쿨하게 떠났더라면 '나가수'는 정말 멋진 프로가 됐겠지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비난을 퍼부은 건 원칙을 무너뜨린 재도전 결정이었지 7명의 가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열창의 감동마저 부정한 건 아닙니다. 7위로 하차한 정엽의 노래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1위 김범수의 노래보다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였으니까요. '나가수'를 보면 7명의 가수들이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7명의 가수 콘서트 티켓을 모두 쥐고 있는 기분이니까요.


어제 김건모는 가수 인생 전부를 걸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지난주 7위로 탈락을 했기에 또 한 번 탈락을 하면 가수 인생에 치명적인 생채기를 낼 수 있기에 그만큼 긴장감도 컸겠지요. 그는 정엽의 '유어 마이 레이디'를 불렀는데, 명색이 20년차 국민가수가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손을 다 떨었을까요? 원래 김건모의 무대는 노래를 즐기면서 쉽게 쉽게 부르는 타입인데, 마치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최종 오디션에 나온 것처럼 초심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에 코끝마저 찡하더라구요. 진행자로 감정 조절을 못했다고 비난을 받은 이소라 역시 이마에 난 피부 트러블이 클로즈업된 화면을 보니 그동안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많은 고생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가수'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기를 반영하듯 '재도전' 파문으로 비판이 아닌 비난도 많았는데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제안을 하나 해볼까 해요. 한 달 정도 재정비를 한 후 다시 방송을 재개한다고 하는데, 다음 포맷은 서바이벌이 아닐 '통과(Pass)' 개념으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꼴찌를 탈락자로 선정하는 방식인데, 명색이 최고 가수인데 꼴찌라는 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죠. 그래서 꼴찌를 선정하는 것보다 1등을 한 명 선정해서 명예롭게 탈락(패스) 시키는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1등을 한 사람은 기분좋게 '나가수'를 졸업하는 것이고, 1등을 못한 사람도 계속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다 보면 시간이 지난 후 패스를 할 게 아닙니까? 이런 방식이라면 꼴찌 굴욕도, 재도전 파문도 없을 거에요.

서바이벌 포맷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잘만하면 대박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이면에 최고의 가수들에게 '꼴찌', '탈락'의 이미지를 덧 씌워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어요. 포맷을 '1등 패스'로  바꾸는 것도 서바이벌 방식과 다를 바 없지만 그 기분은 분명 달라요. 조금만 깊게 생각하고 최고의 가수들을 최고로 대우해준다는 생각을 했다면 '나가수'는 달라졌을 거에요.


'나가수' 4회를 보니 비록 원칙이 깨진 예능 프로였지만 그래도 7명이 혼신의 힘을 다해 쏟아낸 열창의 무대가 오랜 여운을 남겨주네요. 7위를 해서 다음 무대에서 보지 못하게된 정엽씨, 절대 기죽지 말기 바랍니다. '아메리카 아이돌'처럼 마지막 탈락자 노래를 들려주는 거 아주 좋았습니다. 정엽이 마지막 클로징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 다시 보니 다른 가수들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 멋진 무대였어요. 정엽은 '나가수'의 꼴찌 가수가 아니라 1등으로 '나가수' 스쿨을 패스한 가수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소름끼치는 가창력과 전율로 눈물을 흘리면서 공감할 수 있는 '나가수' 무대를 다시 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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